<처먹을 것도 주지말라>

종교개혁 원년을 1517년 10월 31일로 기산하지만(95개조 반박문 게시일), 루터파 교회가 제대로 골격을 갖춘 것은 1529년 이후부터나 시작했다.

1517년, 부패한 교회에 개혁을 외치며, ‘교회가 교회다워야 한다’, ‘사제가 사제다워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일 때 독일 사회는 환호했다. 속에 있던 응어리가 물꼬 터진 것처럼 거칠 것이 없었다. 여기저기서 자유와 해방의 노래가 터졌다.

그런데 그게 문제가 되었다. 로마교회의 반응이 격해진 만큼, 내부인 개신교 진영에선 밑도 끝도 없는 방종과 무식함이 난무했다. 개혁이 시작된 지 10년도 되지 않았는데 말이다. 교회를 개혁하자고 나선 교회 내부의 부패는 그리도 빨리 찾아왔다. 오죽했으면, 선제후가 루터에게 ‘얼마나 상태가 심각한지, (개신교 진영) 교회와 목사들이 얼마나 형편없는지 네 눈으로 직접 돌아보라’고 간청했을까?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1524-28년까지 일종의 암행시찰이었는데, 현장을 돌아본 루터는 큰 충격을 받게 된다. 이 당시 루터의 편지를 보면, 일반신자들이 목사들을 얼마나 불신하고 우습게 여기고 있었는지 잘 드러난다. 복음의 자유를 빌미로 목사가 목사로서의 기본적인 직무조차 ‘자유롭게 무시’하며 사는 모습, 아니면 정반대로, 로마교회 당시와 별로 달라진 것 없이 여전히 성직의 권위를 계급처럼 생각하며 일반신자들의 머리 꼭대기에 올라가서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는 목사 등등. 한 마디로 가관이었던 것이다. 개혁의 이론은 거창했는데 현장은 참담했다. 

루터는 자신이 직접 현장을 시찰한 이후 동료들과 함께 강력한 내부 징계를 시작하였다. 목사답지 않은 목사들은 잘라버리고 영지 밖으로 내쫓았다. 그리고 빈 교회와 수도원들의 재산은 몰수했다. 그 재산으로 고아와 아이들 부녀자 교육을 위한 학교를 세우고, 은퇴 목사들을 위한 자산으로 사용하게 된다.

이런 강력한 내부 징계를 통해 확연히 달라진 건 다름 아니라 일반 신자들이 목사세계를 바라보는 눈빛이었다. 일반 신자들의 불신이 이젠 신뢰로 바뀌기 시작했다. 목사가 목사 세계를 스스로 자정할 때 생기는 자연스런 귀결이다. 그러면서 신자들은 목사들과 함께 새로운 교회 건설에 힘을 자발적으로 보태기 시작했다.

이게 1529년 어간에 일어난 일이다. 개신교 진영이 실제적인 골격과 틀을 갖추기 시작한 것이다. 다시 말해, 종교개혁의 발화는 1517년이지만, 교단으로서 명색을 갖추기 시작한 것은 1529년 어간이고, 1530년 아우구스부르크 제국의회에서 정식 교회로 인정받기에 이른다. 이게 개신교의 시작이다.

시찰단 감찰(1520년대 후반) 이후 고민거리가 생겼다. 잘라내거나 징계하기는 그렇고, 조금만 도와주면 될 성 싶은 목사들에 대한 문제였다.

이것을 루터는 교육을 통해 바로잡기 시작했다. 그 교육의 도구가 바로 <대교리문답>였다. 그러다 보니 1530년 ‘서문’엔 당시 개신교 진영 목사와 설교자들에 대한 ‘통렬한 비수’가 곳곳에 숨어있다. 좋게 말해 ‘통렬한 비수’다. 솔직히 말하면, ‘욕지거리’다.

16세기 당시 수사법이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확실히 강도가 세다. 게으르고 나태하며 직무에 열정이 없는 목사를 ‘뚱땡이’라고 대 놓고 말하기도 하고, 아예 사람 취급하지 않으면서 동물에게나 사용하는 용어를 감정 섞어 직설적으로 뱉어내기도 한다.

오죽하면 토마스 만(Thomas Mann)같은 사람은 “성급하고 무지막지하고 욕하고 침 뱉고 화를 내고 소름 끼칠 정도로 강한 루터”를 “나는 좋아하지 않는다.”, “혐오스럽다”며 자신은 ‘루터의 손님이 되고 싶지 않다’고 했을까?(1945년 워싱턴 연설)

여하튼 루터는 말이 세다. 참고로 당시 수사법의 영향도 어느 정도 있겠지만 그렇다해도 세다. 그런데 시원하다.(나만 그런가?^^)

대교리문답 서문에서 발췌 해 본다.

“지금 우린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오는 능력과 힘, 그 열매를 너무 우습게 여깁니다. 특히 목사와 설교자인 우린 더욱 심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이런 놈들에겐 처먹을 것도 내어주면 안 됩니다(nichts zu fressen geben). 개 떼를 풀어서 내쫓아버리든지, 아니면 단단히 창피를 당하게 해서 아예 발도 붙이지 못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일용할 양식과 같아서 우리에게 매일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매일 끊임없이 닥치는 시련과, 천의 얼굴을 가진 악마의 술수에 대항할 수 있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덧) 독일어에서 ‘먹는다’는 동사는 두 종류다. essen/fressen. 사람이 먹는 것을 보고 fressen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는다. 동물 사료 먹일 때나 사용하는 용어다. 그런데 루터는 본문에서 게으르고 나태한 목사를 향해 “fressen”을 거침없이 사용한다.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 유럽영성투어 잘다녀오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