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 올린 시간 : 2019년 07월 03일 13시 56분 00초

아프리카(6) 또 하나의 싸움 (2019.3.1)

민족의 명절인 3.1절을 이국땅에서 보내면서 자유를 위한 또 하나의 싸움이 있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것이 영적 싸움입니다.

이곳의 아침은 매일 치열한 싸움으로 시작됩니다. 이슬람 사원에서 매일 외쳐대는 아잔의 코란 소리와 펜티코스탈 교회의 따발총 같은 통성기도의 소리입니다. 그 두 소리가 얼마나 큰지 잠을 깰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이슬람교는 남자가, 펜티코스탈은 여자가 소리 지릅니다. 둘 다 다 마이크에 대고 소리 지르기 때문에 그 소리는 아침의 정적을 깨트리고도 거의 한나절까지 계속됩니다. 기독교의 입장으로 볼 때 그래도 거대한 이슬람의 무차별 공격을 온 막아주는 열심 있는 교회가 있다는 것이 다행이지만 문득 내가 지금 거대한, 영적 전쟁의 한복판에 있다는 생각에 깜짝 놀라곤 합니다

문제는 그 싸움의 한복판이 우간다라는 사실입니다. 아프리카 지도를 펴놓고 보면 우간다는 이슬람의 남진을 막고 있는 최후의 방어선입니다. 이미 치열한 종교전쟁은 우간다 위에 있는 수단(이슬람)과 남수단(기독교)의 비극적인 전쟁 이후 계속 남하하고 있습니다. 이슬람은 막대한 오일머니로 도시마다 유치원, 초중고등학교를 세워 어린 영혼들을 이슬람의 제자로 삼고 신학교를 세워 그들 종교의 지도자로 양성하고 있습니다. 제가 일하는 쿠미 근처의 음발레에는 아프리카에서 제일 큰 이슬람신학교가 우뚝 서 있습니다.

아프리카(7) 한 사람을 찾아서

어제 아침 일찍 '아쥬마니'를 향해 출발했다. 남수단 학생들을 만나려고 우간다 북쪽 국경 지역에 있는 남수단 난민촌을 향해 길을 떠난 것이다. 지난 2.15(금) 남수단 A.I.C(아프리카의 내지 교단) 알칸젤로 비숍을 만나 남수단 학생들을 면접한 후 신학생으로 받아주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아침 8시에 음발레를 떠나 쿠미, 소로티를 지날 때만 해도 길은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곧 본색이 드러났다. 구루(Gulu)를 지나자 비포장도로가 나타났다. 날씨는 더워 이미 창문을 내린 상태에 차 안은 소금을 치듯 무더웠고 게다가 흙먼지까지 들어 오기 시작했다. 한국의 미세먼지는 그칠 때라도 있는데 이 나라의 흙먼지는 7시간 동안 그치지를 않았다. 온몸은 먼지로 뒤집어쓰고 목은 먼지 때문에 콜록거리기 시작했다. 맞은 편에서 차라도 한 대 지나가면 시야가 가려 앞을 보지 못할 정도였다. 어쩌다 밖을 내다보면 짚으로 만든 작은 움막집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 집에 선풍기, 냉장고도 없이 적어도 7-8 명 이상의 대가족이 모여 함께 웅크리고 살 터였다.

문득 100여 년 전에 선교사들이 한국에 와서 초가집을 보고 '무슨 동물이 사는 집이냐'고 물었다는 이야기가 생각났다. 동물이 사는 것이 아니고 사람이 사는 집이었다. 여기도 그랬다. 동물이 사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사는 집에서 사람들은 매일 운명처럼 흙먼지를 마시고 살고 있었다.

그때 짐차가 한 대 확 지나가면서 흙먼지가 쏟아져 들어왔다. 그 순간 눈에서 눈물이 나왔다. 한참 동안 눈을 비벼도 눈물은 그치지 않았다. 옆에 있던 이사장이 '목사님, 괜찮아요?'하고 물었지만 괜찮지 않았다. 눈에 들어간 것은 흙먼지였으나 나오는 것은 벌건 눈물이었다.

갑자기 이런 생각이 나자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너는 목회하면서 이렇게 멀리 교인 한 사람을 찾아온 적이 있느냐?' '너는 교인 한 사람을 만나기 위해 7시간 이상 흙먼지를 마시며 달려본 적이 있느냐?' 없었다. 분명히 없었다. 나는 아산병원은 가고 서울대병원은 자주 갔으나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7시간을 달려본 적은 없었다. 그나마 교회가 바빠지면서 그 일은 대부분 부목사가 했다. 그 시간에 나는 편안한 당회장실에 있었고 툭하면 기도원에 있었다. 교인들이 오면 반갑게 맞이하고 심방 하고 교육한 적은 있지만 그들의 삶의 깊은 곳까지 7시간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달려가 보지는 못했다. 주일날 많이 모여 예배드릴 때 우리 교회가 많이 성장했구나 하고 뿌듯하게 생각한 적은 있었으나 그 한 사람 한 사람을 찾아 7시간 동안 달려보지는 못했다. 한국을 떠나기 전 몇 사람의 중한 환자들을 심방을 하긴 했으나 그것은 차라리 심방이 아니라 이벤트였다.

먼지는 계속 들어오고 눈물은 마르지 않았다. '내가 다시 목회한다면 그렇게 할 수 있을까?' 그러나 이제는 틀린 일이었다. 지금이라도 한국교회가 그 많은 정치 행사, 그 많은 소비적 논쟁, 쓸데없는 시간 낭비를 줄이고 한 사람을 찾아 7시간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길을 간다면 다시 초대교회로 회복되지 않을까? 지금이라도 내가 이 낯선 땅에서 오늘처럼 7시간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한 사람을 찾아 나선다면 주님은 그동안의 나의 모든 게으름과 안일을 용서하지 않을까?

온종일 나는 흙먼지 때문에 눈물이 났다.

<2019.3.6.> 행복이 소유의 넉넉함에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도 부탁드립니다. 저는 내일부터 토요일까지 여기서 10시간 올라가 남수단 캠프에 올라갑니다. 수단 내전으로 흩어진 수백만의 난민 중 100만여 명이 우간다 북부에 내려와 있습니다. 이중 '아추마니'라는 캠프에서 수단 난민 학생 20명가량을 면접하려고 합니다. 이들 중 좋은 학생들이 선발되어 장차 전쟁 없는 자기 조국의 지도자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저와 이사장, 대학 학생처장, 운전사가 갑니다. 가는 길에 우간다의 생생한 모습과 수단난민촌의 모습을 보내드리겠습니다. 안전하게 다녀올 수 있도록 기도해주시고 관심 있는 분은 남수단 난민을 인터넷에 찾아보시면 도움이 되겠습니다.

아프리카(8) 아프리카에서 ‘우리도 난민인 것이다!’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들어온 '아츄마니'는 글자 그대로 고요한 분위기였다. 사진으로 낯이 익은 다닥다닥 모여 있는 난민촌은 아직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오전 10시가 지나 면접이 시작되자 그들의 오랜 아픔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비숍의 추천으로 20여 명이 면접을 시작하였으나 정작 자격을 갖춘 사람은 많지 않았다. 입학을 다루는 학생처장이 없었다면 나는 그들 모두를 받을뻔했다.

문제는 학제와 학력의 문제였다. 남수단은 6-3-3-4의 미국식 학제를 따르고 우간다는 7-2-4-3의 영국식 학제를 따른다. 그래서 남수단 학생이 우간다의 대학에 진학할 경우 1년의 학력을 보충해야 하는 문제가 생긴다. 20여 명의 학생 중에서 이 조건에서 면제된 사람은 6명뿐이었다. 나머지는 중졸이거나 초등학교 졸업이었다.

A는 29살의 남자로 전쟁 중에 아버지를 잃고 7형제를 부양하느라 초등학교밖에 나오지 못했다. B는 중학교 때 전쟁이 일어났고 군인이던 아버지가 불구가 된 후 낡은 오토바이로 ('보다'라고 일종의 택시 운전이다) 힘들게 일하는 바람에 중학교밖에 졸업하지 못했다. C는 난민 캠프에 사는 45세의 중년 남자로 무려 10자녀(한 아내에게서)가 있고 매달 U.N이 주는 12kg의 옥수수(12×12=144kg)가 모든 수입인 것이다. D는 전쟁으로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어머니만 남고 형제들은 어디로 갔는지 생사조차 모른다.

어디서 많이 들은 이야기가 아닌가? 이들의 공통점은 그래도 공부는 하고 싶다는 것이다. 그것이 신학이고 더구나 장학금을 준다면 얼마나 좋은 기회인가? 그런데 자격이 안 되어서 발걸음을 옮겨야 하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누가 이들을 가난하게 하고 공부하지 못하게 했는가? 그래도 공부를 하고 싶어 바쁜 걸음을 멈추고 한국 선교사 앞에 나왔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쓸쓸히 돌아가는 그들이 한결같이 한 말은 하나였다. We are refugees. (우리는 난민이에요). 그 말속에 모든 체념과 낙심이 담겨 있었다.

그들이 돌아간 뒤 조용히 생각했다. 그들은 refugee이고 우리는 누구인가? 모세도 다윗도 refugee가 아닌가? 이스라엘은 400년 동안 에굽에서, 70년 동안 바벨론의 refugee가 아니었던가? 예레미아도 에스겔도 느헤미이아도 예수님도 사실은 refugee의 후손이 아니었는가? 우리도 한때 일제 때문에 전쟁 때문에 refugee가 아니었는가? 그리고 지금도 영적으로는 여전히 refugee가 아닌가?

가난한 그들에게 모두 교육의 기회가 주어지고 예수님을 배우고자 하는 모든 사람에게 혜택을 줄 수 있는 때가 오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다행히도 이번에 산고의 노력 끝에 8명의 보석 같은 인재를 얻었다. 이들은 앞으로 하나님의 사람으로 훈련되어 자기 민족과 세계 복음화에 크게 쓰임 받게 될 것이다.

주여, 우리로 더 많이 헌신하고 기도하여 필요한 사람들을 더 많이 돕게 하소서! 그리고 그렇게 많이 배우고 많이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나눠주지 못한 채 여전히 욕심 가운데 사는 우리를 돌아보게 하소서. 우리도 그들과 같은 난민이기 때문입니다.

아프리카(9) 이사를 가면서

'아브라함이....가나안 땅에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땅에 들어갔더라'(창12:5)

아프리카에 온지 한 달만에 이사를 가게 되었다. 이미 한국을 떠난 사람이 이사 한번 더하는 것이 무슨 큰 일이냐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이사는 조금 다르다. 약 한 달전 아프리카에 도착했을 때 나는 적어도 내가 살 집은 준비된 줄로 알았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었다. 전에 살던 목사님이 나 하고 비슷한 분이었는지 아무렇게 하고 살았던 것같다. 문짝은 너덜거려 모기는 윙윙 거리고 침대, 싱크대는 없고 여기 저기 손봐야 할 곳이 많았다. 평생 집가꾸는데 돈 써본적이 없는 나도 이번에는 어쩔 수 없었다. 사람을 불러 손질을 시켰는데 그것이 그렇게 오래 걸릴 줄 알았으면 안시켰을지 모른다. 차일 피일하다 짐을 못 풀었는데 짐 안 풀어서 좋은 것은 다시 짐을  쌀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 동안 다른 선교사댁에서 얹혀 살았는데 두 가지 때문에 감사했다. 나도 불편했지만 그도 불편했을텐데 차도 없는 나를 태우고 다니며 말없이 도와주는 것을 보며 선교사의 모델을 본 것 같았다. 또 하나는 좀처럼 남에게 폐끼기 싫어하는 도도한(좋게 말해 선비같은) 성격의 내가 할 수 없으면 도와달라고 하고 남의 집에서 자도 어디든 잠만 자면 내집이지 하는 거룩한 배짱이 조금 생긴 것이다. 

사실 한국을 떠나기는 쉽지 않았다. 막 결혼한 딸을 공항에서 떠나 보낼 때, '괜찮아, 내가 새벽에 기도할께' 하며 애써 눈물을 삼키시는 어머니앞에 큰 절을 하고 고향집 모퉁이를 돌아설 때 나는 정말 통곡하고 싶었다.가장 오랫동안 힘들었던 것은 교인들이었다. 평소에 교인들이 그렇게 내 마음에 있는지 몰랐다.헤어질 날이 다가오면서 나는 마음이 그렇게 아플 수 없었다. 사실 나는 11월 어느날 부터 하루도 울지않고 잠자리에 든 적이 없다. 교인들은 마치 품에서 키운 자식과 같았다. 그들과 헤에질 때 나는 어린 것들을 뒤로 하고 떠나는 에미의 심정이 무엇인지 알았다. 확실히 목회자는 설교만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목회자와 교인은 보이지 않는 생명의 끈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나는 그 끈을 스스로 잘랐다. 자른 때는 용감했으나 자른 후 너무 아파서 울고 또 울었다.

이제 그 아픔이 타지 않는 모닥불처럼 내 속에서 자작거릴 때 또 하나의 이사를 떠난다. 이 이별은 찰스 스윈돌이 '모세'에서 설명한 그런 종류의 이별이다.

선교사인 나는 한국을 떠났기 때문에 선교사라고 부르지 않아야 한다.나는 목회하면서 노회장이나 총회장등의 명예를 사모한 적이 없다. 그러나 내 속에는 그것들을 안했다는  명예심이 깊히 숨어 있다. 그것까지 떠나야 한다.

나는 청렴과 가난을 사모하면서 살았다. 그러나 사실은 늘 편안과 일락을 꿈꾸며 살았다. 남을 섬기며 산다고 했지만 사실은 남을 부리며 살았고 많은 일을 했으나 내가 한 일은 별로 없었다. 다 남의 손으로 했고 남을 힘들게 한 대가를 열매로 따먹은 것 뿐이다.이제는 남을 힘들게 해서도 안되고 모든 것을 내 손으로  해야 한다.  

무엇보다 나는 사람들에게 숨겨지고 잊혀지기 위해 살아야 한다. 선교사는 사람에게 잊혀지고 하나님에게 기억되는 자다.아브라함이 힘들었던 것은 무엇일까? 고향, 친척, 부모를 떠나는 것이었까? 그것들과 떠나면서 자기를 버리는 것이 힘들지 않았을까? 버릴 것이 많은 사람은 떠나기 쉽지 않다. 다만 떠나기만 해서는 떠나기 쉽지 않다. 가나안땅에 가려고 떠나야 떠날 수 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수없이 떠나고 눈물흘리며 살다가 어느날 내 앞에 하나님이 서 있는 것을 보게 되지 않을까?우리는 날마다 자기와 헤어지고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연습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오늘 '마침내' 

또 하나의 이사를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