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12) 밥 한 끼

사람의 먹는 문제는 크게 두 가지인 것 같다. 무엇을 먹느냐와 어떻게 먹느냐이다. 

작년 선교사 훈련받을 때 한 외국선교사가 음식 먹는 에티켓을 가르친 적이 있다. 음식을 먹을 때 의자를 테이블에 가까이 가져갈 것, 입에 음식이 있을 때는 말하지 말 것, 한번에 많은 음식을 먹지 말 것, 다른 사람이 서빙받기 전에 먼저 먹지 말것,  다른 사람이 다 먹기 전에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말 것, 다른 사람과 먹는 속도를 맟출 것, 왼쪽에 포크를 놓고 오른 쪽에 스푼을 놓을 것등이었다. 나같이 대충 살아온 사람들은 도저히 따라 하기 힘든 것이었다. 

그런데 아프리카에 와보니까 이 모든 것이 거의 필요하지 않았다. 어떻게 먹느냐보다 무엇을 먹느냐가 급하기 때문이다.당장 먹을 것이 없는 사람에게 어떻게 먹느냐 하는 것은 사치스러운 고민이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학생들을 위해 가끔 시장에 가면 다른 것을 살 필요가 없다. 딱 두 가지만 사면 된다. 옥수수 가루로 만든 포셔라는 음식과 콩(빈)이다. 옥수수를 잘게 갈아 익혀 떡처럼 만든 것에 콩을 익혀 그 위에 얹으면 한 끼 식사가 된다. 다른 반찬도 없고 디저트도 없다. 포셔와 빈, 그것이 전부다. 학생들에게 일주일 내내 그것만 줘도 아무도 불평하지 않는다. 그렇게 평생 살아왔기 때문이다. 가격을 한번 계산해 보았다. 25명 기준으로 포셔가 6킬로(9.000 실링), 빈 2킬로(6,000 실링) 모두 15,000 실링이 들었다. 한국 돈으로 하면 약 5,000원쯤 된다. 이것을 25명으로 나누면 한 사람당 200원 꼴이 된다. 

과연 한국에서 200원에 한 끼 음식을 먹을 수 있을까? 누가 200원 주고 밥사먹으라 하면 나를 거지취급하느냐고 대들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는 200원으로 한 끼 음식을 먹는다. 그나마 일주일 내내 그렇게 한다. 값이싸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 음식이 시원찮기 때문에 싼 것이다. 아침도 잘 안먹는다. 안먹는 이유가 우리처럼 다이어트때문이거나 바쁘기 때문이 아니라 없어서 안먹는다. 겨우 티 한잔이 전부다. 하도 먹는 것이 딱하여 매일 아침에 빵을 준비해서 먹도록 했고 매주 금요일은 한국식 쌀밥에 고기국을 준비해서 특식으로 먹게 했다.덕분에 학생들은 금요일을 좋아한다. 예수님 돌아가셨기때문이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쌀밥에 고깃국을 주기 때문에 좋아한다. 그들이 그것을 허겁지겁 먹을 때 내 눈시울은 붉어진다. 

우리가 지금 먹는 것을 먹지 말고 살라는 말인가? 아니다. 내가 지금 잘 먹고 있는 때에도 지구촌 반대편에는 200원으로 한 끼를 때우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는 것이다. 5천원이면 커피 한 잔 값도 안되는데 그것으로 25명이 먹는다는 것을 기억하자는 것이다. 적어도 이 사순절에 내가 조금 아끼고 남은 것을 어떻게 배고픈 다른 형제에게 줄 수 있을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통계에 의하면 세계의 식량은 모두가 먹고 남는다고 한다. 그래도 굶는 사람이 있는 것은 가진 사람들이 나누지 않고 때문이다. 

2019년 사순절은 우리에게 어떤 사순절일까? 초대교회 교부 클레멘트가 말한대로 사순절은 모든 것을 주신 주님의 은혜때문에 우는 날이 아니라 주신 은혜를 아직 나누지 못하는 사는 나를 보고 우는 날이 아닐까? 누가 이 사순절에 사랑을 듬뿍 담아 배고픈 사람에게 따뜻한 쌀밥과 고깃국 한 그릇을 줄까? 가난한 사람들이 찾는 것은 음식이 아니라 사랑인지 모른다.

'지극히 작은 자 한 것이곧 내게 한 것이니라'

아프리카(13) 죤 모세 목사 이야기

어느날 부터 내가 사는 동네에 청소부로 일하고 있는 한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허름한 옷을 입고 가끔 신발도 신지 않은채 먼지를 피우며 마당을 쓰는 그가 이상하게 눈에 띈 것이다. 키가 커서 일을 할 때마다 허리를 구부정하게 굽히는 그는 언제나 웃으며 일했다. 남자든 여자든 남의 집에서 일하는 모습을 어기서는 자주 보지만 그는 어쩐지 달라 보였다. 어느날 용기를 내서 이야기를 걸었는데 놀랍게도 그는 목사였다. 아직도 한국수준을 못 벗어난 나는 목사가 남의 집에서 일하는 것이 신기하고 궁금해서 물었다. 왜 목사가 되었으며 지금 어떻게 사느냐고.

그가 자기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는 다른 아프리카 사람들처럼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다. 그나마 형제가 많아 제대로 공부할 수가 없었다. 허드레 일로 젊은 날을 보내던 어느날 하나님이 그를 불렀다. 꿈에 하나님이 나타나 설교자가 되라고 했다는 것이다. 두번이나 같은 음성을 들은 그는 곧 가까운 교회 성경학교에 입학했다. 그리고 곧 목회를 시작했다. 그러나 목회의 길은 쉽지가 않았다. 아내가 네번째 자녀를 낳다가 죽고 동생마저  죽어 두 조카까지 책임져야 했다. 그는 졸지에 여섯 자녀의 아버지가 된 것이다. 

매주 주일마다 목이 터져라 설교했지만 교인은 쉽게 늘어나지 않았다. 현재 아이 포함 20명, 그 수로는 절대 자립할 수 없었다. 더구나 아프리카 교회는 주일 헌금을 교단으로 보내는 이상한 관행이 있다. 그러니 도저히 목회자 사례비를 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아프리카 교회는 크든 적든 교회 생활비를 받고 사는 목회자가 거의 없다. 교회는 어렵고, 여섯 자녀는 키워야 하고 결국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남의 집에서 일하는 것이었다. 그가 하루 네 시간을 일하고 받는 돈은 매주 3만실링, 한 달에 그는 우리 돈 약 4-5만원을 번다. 그것도 부족해서 일있는 곳을 좇아 다니면 그가 한달에 버는 총 수입은 약 20만 실링(우리 돈 약 7만원)이다. 그것으로 그는 여섯 자녀를 기르며 목회하고 있다.

몇년전 미국 시카고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지역 목회자들을 식사에 초대했더니 아이들까지 무려50명이 모였다. 많이 모여 놀랐지만 더 놀란 것은 그중 대부분이 '우버' 라는 택시를 운전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미국에서 20년 산 목회자도 택시를 몰고 이름있는 대학에서 박사를 마친 목회자도 택시를 몰았다. 택시를 모는 것이 천하다는 말이 아니다. 절대 천한 일이 아니다. 그만큼 목회가 쉽지 않고 그만큼 교회들이 어렵다는 말이다. 

미국의 어느 목회자가 한국의 어느 괜찮은 교회를 부임하면서 연봉협상을 했다고 한다. 정신나간 목회자가 아닌가? 그가 정말 고액 연봉을 바랬다면 목회 길로 들어오지 말았어야 한다. 목회자도 가정이 있기 때문에 당연히 생활비가 필요하다. 그러나 매년 받는 월급이 적다고 불평한다면 왜 목회자가 되었는지 심각하게 물어야 한다. 꼭 그런 이유는 아니지만 나는 목회하면서 어떤 교회든 그 교회가 처음 책정한 월급을 한번도 올려보지 못했다. 지방에서도 그랬고 한신교회에서도 그랬다. 덕분에 아내가 힘들었지만 여전히 후회는 없다. 

한국교회가 힘들어져 목회자들도 힘든 것을 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물질만능 세계에서 적어도 목회자만은 거룩한 명예심으로 살아야 하지 않을까? 혹시 내가 어려워서 힘들게 산다고 생각한다면 지금도 늦은 시간에 시카고의 뒷골목에서 택시운전을 하고 있는 목회자들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 혹시 재정문제로 교회 안밖에서 물의를 빗고 있는 목회자가 있다면 한 달에  7-8만원으로 여섯 아이를 키우면서도 기쁘게 남의 집 청소를 하는 수많은 모세목사들을 기억하고 회개해야 한다. 그리고 혹시나 한국교회가 지금보다 더 어려워져 목회외의 일을 더해야 할 때가 오면 그 일을 목회같이 기쁘게 하자. 목회자의 격은 그가 남의 집에서 청소한다고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가 두 가지 일을 했다고 사명감이 없는 것도 아니다. 목회든 청소든 부하든 가난하든 우리의가장 큰 일은 주님을 사랑하는 일이다. 

오늘도 허리를 굽히고 부지런히 마당을 쓰는 모세 를 보며 많은 어려움 가운데 묵묵히 헌신하는 이 땅의 목회자들을 가슴 절절히 사랑하며 위하여 기도한다.

아브리카(14) 사순절 아버지 마음

사순절에 아버지 마음을 생각한다.내가 사는 지역은 조금 외진 곳이라 한국 선교사들이 별로 없다. 그래도 주일 오후에는 몆 가정이 모여 예배하며 교제한다. 어제는 학교 후배인 선교사 부부가 오셔서 간증을 했다.

그는  꽤 오래전에 이 시골로 들어왔다. 원래 신학박사를 받고 케냐의 모 신학교 학장으로 선교의 첫발을 내딛었으나 어느날 편한 도시에 있지 말고 오지로 들어가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그래서 찾고 찾다가 전기도 물도 안나오는 이곳에 왔다고 한다. 기도하다가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유치원 사역을 시작했다. 

힘든 사역을 계속하던 어느날 갑자기 사모님과 함께 말라리아에 걸렸다. 방 한칸에서 어린 두 딸과 함께 옹색하게 살 때였다. 갑자기 부모가 말라리아에 걸리자 큰 딸도 걸리고 며칠후 작은딸까지 걸렸다. 자기들도 아픈 데 아무 것도  도와줄 수 없는 선교사 부부는 너무 마음이 아팠다. 특히 둘째 딸은 생명이 위독할 만큼 아팠다. 선교사님은 다른 방법이 없어 자기의 아픈 몸을 일으켜 작은 딸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했다. 한참 기도하다보니 네 식구가 다같이 울고 있었다. 그때 선교사님이 이렇게 기도했다.  '하나님, 왜 저를 이곳으로 보냈나요? 제가 고생한 것은 좋은 데 이 딸들은 무슨 죄가 있습니까? 차라리 저를 죽이고 딸을 살려주세요'. 그때 마음속으로 선명한 음성을 들려왔다. '너는 네 딸이 아파 마음이 아프냐? 나도 아프리카의 자녀들때문에 마음이 아프다'. 그때 그는 처음으로 영혼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알았다고 한다. 그날부터  그는 그곳을 떠날 마음을 버리고 선교에 집중했다. 지금은 유치원과 함께 큰 학교가 생겼고 목회자학교를 통해 많은 지역 목회자를 섬기고 있다. 

내가 사는 쿠미의 선교사댁에는 30대 젊은 아프리카 남자가 최근까지 일하고 있었다. 어느날 이 사람이 에이즈 환자라는 말이 들려왔다. 그나마 몸이 많이 안좋아 자주 병원에 간다는 말이 들렸다. 불쌍한 생각이 들어 음식을 몇 번 나누어 주었다. 두 주전쯤 음식을 받더니 이렇게 말했다. 'Father,  Lee',  이 사람은 나를 카톨릭처럼 아버지라 불렀다. 그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자기 몸이 매우 안좋은데 어떻게 될지 모른다면서 자기 아내도 에이즈환자인데 자기 자식들만 생각하면 가슴이 메어진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것은 자기 두 자식이라며 눈물을 흘렸다. 그런데 지난 수요일, 이 사람이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너무나 뜻밖이었다. 그렇게 일찍 들아갈지는 정말 몰랐다. 학교를 마치고 물어 물어 집을 찾아갔는데 거의 정신이 나간 병든 아내가 두 자녀가 함께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두 자녀를 보자 그 아빠의 말이 생각났다. 'Father, Lee,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것은 우리 자식들이예요'.내가 그 아이들을 가슴에 않았을 때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한번도 본적이 없는 낯선 나라의 남자가 울자 그들도 따라 울었다. 돌아오면서 생각했다. 자기 몸이 죽어가면서도 자식들을 생각하는 아버지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 에이즈 환자로 죽어가면서 마지막까지 잊지 못하는 아버지의 사랑은 어디서 올까? 

우리 아버지는 현재 95세로 고향에 사신다. 그래도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서 몸은 크게 안 아프신 편이다. 그런데 치매가 있어 자주 정신이 오락가락 하신다. 내가 올초 선교를 떠날 때만 해도 아버지는 내 상황을 전혀 알지 못하셨다. 그러다 최근에 정신이 조금 돌아와 나를 자주 찾는다고 한다. 동생이 고민하다 형님이 아프리카에 선교사로 갔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후 아버지는 아침만 되면 가시는 곳이 있다. 마을 정자나무아래 앉아 누구를 기다리시는 것이다. 그곳에 앉으면 마을에 누가 나가고 누가 들어오는지 다 보이는 곳에 아버지는 매일 읹아 누구를 기다신다는 것이다. 거기서 아버지는 누구를 기다리시는 것일까? 아마 아프리카로 떠난 큰 아들을 기다릴 것이다. 치매중이어서 아프리카가 어디인지. 아들이 거기서 무엇을 하는지. 심지어 그 아들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그래도 그는 오늘도 거기 앉아 나를 기다릴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도 같을까? 그도 지금 우리를 보고 불쌍해서 우실까? 그도 십자가에서 죽을 때 우리가 불쌍해서 우셨을까? 그도 지금 하늘 정자나무 아래 앉아 언젠가 돌아올지 모르는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그렇다. 우리가 목회하고 우리가 선교하는 이유는 아버지 마음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이 땅에 사는 이유도 이 아버지 마음때문이다. 

아프리카 (15) 아파서 축하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