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 올린 시간 : 2019년 07월 03일 14시 16분 26초

아프리카(21)  사람을 키우자

몇 주 전 내 사무실에 한 사람이 찾아왔다. 그에게 왜 오셨느냐고 묻자 그가 말했다. '가르칠 사람을 찾는다고 해서 왔습니다'. 마침 가르칠 사람을 찾고 있는 중이라 너무 반가운 나머지 나는 그가 내민 노란 봉투를 단숨에 꺼내 읽었다. 우간다의 모 신학교의 졸업장과 성적표가 들어 있었다. 내가 물었다. '신학을 공부하셨군요. 전공은 무엇입니까?' 그가 말했다. '전공이요? 이것이 다 제 전공이예요. 이것을 제가 다 가르칠 수 있어요'. 그가 가르칠 수 있다고 내민 성적표에는 구약개론에서 부터 조직신학, 교회사, 설교학, 종교철학과 헬라어, 심지어 내용을 알 수 없는 과목들의 이름까지 수십가지나 적혀 있었다.' 그가 하도 다 가르칠 수 있다고  자신있게 말하는 바람에 나는 가르치는 사람은 반드시 전공이 필요하며 학생들을 가르칠 때 적어도 전공이 아닌 것은 가르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을 차마 할 수 없었다. 

몇 주전에 우간다 대표 교단인 Church of Uganda의 지역 비숍을 만난 적이 있다. 어렵게 만난 자리인 만큼 앉자 마자 본론을 꺼냈다. '귀 교단 소속의 목회자중 대학에서 가르칠만한 분을 소개해 주세요'. 비숍은 나를 바라보더니 말했다. '박사를 원하세요?' 하더니 '박사는 없어요. 석사는...' 하고 비서를 불렀다. 비서가 한참 후에 들어와 보고했다. '석사를 한 명 찾았습니다. 싸비에르 목사라고. 여자 목사예요. 그런데 여학교에서 가르치고 있군요. 그러면 아마 안 갈 거예요. 교사가 훨씬 낫거든요' 그래도 전화번호를 달라고 해서 어럽게 전화를 했는데 역시 못오겠다고 했다. 그가 했다는 공부는 신학의 기초과정인 M.div였다. 

통계에 의하면 우간다 목회자의 0.5%만 대학을 나왔다. 대부분은 1, 2년 짜리 성경학교를 나왔고 심지어 아예 신학을 안하고 교회의 요청으로 목회자가 된 사람도 있다. 한국 선교사가 몇 달 가르치고 준 certificate를 졸업장처럼 들고 다닌 사람도 있다. 이들이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우선 가난해서 그랬을 것이다. 누구라도 먹고 살기 힘든 상황에서 공부할 수 없다. 다음은 전쟁과 독재때문일 것이다. 대부분의 아프리카 나라들은 서구의 오랜 식민지 생활 이후 전쟁과 내전과 독재를 겪었다. 생존을 위해 하루 하루 살아야 했던 사람들에게 교육은 사치였는지 모른다. 그러나 어쨌든 제대로 목회자를 길러내지 못한 대가로 우간다 교회가 요즘 당하는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우간다 교회중 1,000명 넘어간 교회는 거의 없다. 월급을 받는 목회자도 거의 없다. 주변에서만 보아도 목회만 하는 목회자는 거의 없다. 대부분이 농사를 짓거나 한 두 가지 일을 하면서 목회한다.  그러니 교회 부흥을 기대할 수 없다. 게다가 이단들의 집요한 공격에 노출되고 있다. 불행하게도 그 이단들의 주요 수출국은 한국이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문제는 지금부터다. 우선 선교사들이 보다 더 사람을 키우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내 아들아,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딤후2:2). 한국을 떠날 때 받은 말씀이다. 무슨 일을 하든지 최종적인 목표는 사람을 세우는 데 두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선교라는 이름의 사업만 하게 될 것이다. 

한국에 있는 목회자들이 더 많이 선교현장에 나와야 한다.비공식적인 통계에 의하면 한국교회는 교회는 6만 교회인데 목회자는 20만이라고 한다. 그중 박사 목사가 최소한 30%를 넘을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6만이 박사다. 그 6만명중 만명만 세계에 퍼지면 지구촌의 모든 지역에 하나님의 사람을 키우는 학교를 세울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마28:19 지상 명령을 속히 완성할 수 있다. 혹시 그들중에는 담임목사의 꿈을 꼭 이루어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좋다. 그렇게 담임목회를 했다고 하자. 그러면 조금 일찍 그만 두면 된다. 

한때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웬지 선교사로 나간 사람은 주류에서 밀린 사람같고 중앙무대에서 사라진 것 같다고 느꼈다. 그러나 어디가 중앙무대인가? 지구가 둥글다면 우리가 선 자리는 어디나 중앙이 아닌가? 더구나 하나님의 마음의 중심에 있으면 누구나 중앙이 아닌가?

가장 좋은 것은 모든 한국의 목회자들이 조금 일찍 은퇴하고 선교지로 나가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적어도 두 가지 축복이 임한다. 후배들에게 담임목회 자리를 물려줘 목회의 선순환이 일어난다. 물론 젊고 유능한 목회자를 찾느라고 시간이 걸릴 수 있다. 혹시 젊어서 미숙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목회자의 능력은 나이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성도들의 신뢰와 협력에서 온다. 누구라도 믿어주고 따라주면 목회의 능력이 나타난다. 나도 41세에 담임목회를 시작했지만 교회만 부흥했다.

또 하나의 축복은 일찍 은퇴하고 선교로 나가면 세계 각곳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할 수 있다. 목회자가 평생 설교하고 평생 성경 연구한 것이 보통 자산인가? 그만한 보배는 세상에 없다. 그가 목회하면서 치열하게 쌓아온 성경, 목회경험,인생 경륜은 선교지에서 모두 가르칠 수 있는 중요 과목이다. 왜 그 좋은 자산을 손자를 돌보고 채소를 가꾸는데 써야 하는가? 그 일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당신이 돌볼 영적 손자는 따로 있다는 것이다. 당신이 목숨걸고 키울 하나님의 사람은 오대양 육대주에 넘쳐난다. 조금만 욕심을 버리면 된다. 조금만 더 성경적인 생각을 하면 된다. 그리고 조금만 더 고생할 생각을 하면 된다. 영어를 걱정하는 목회자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선교지에 나와 부딛치다 보면 속에 있는 능력이 나타나게 된다. 언어도 그렇다. 안되는 영어가 학원다닌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현장에서 부딪치면서 배우는 것이 최상이다. 안되면 모세처럼 아론을 세우거나 이사야처럼 입술을 제단의 숯불에 지져달라고 하거나 아니면 방언의 은사를 달라고 기도하면 된다. 

한국교회는 지금 백척간두에 있다. 어느 나라 속담처럼 '목수가 집을 짓는 것은 힘들어도 말이 뒷발길질로 집을 허무는 것은 한순간이다'. 백여년간 힘들게 지어온 교회가 요즘 심하게 무너지고 있다. 목회자의 열심으로 교회를 세웠으나 목회자의 욕심으로 교회가 무너지고 있다. 한국교회여, 이제라도 욕심을 내려놓자. 그리고 설교로만 하나님 나라, 지상명령 외치지 말고 주보에 올리기 위해 해외선교, 단기선교 하지 말자. 오직 하나님의 사람을 키우기 위해 다같이 나서자. 안에서는 대단한 문제같아도 비행기타고 한 시간만 나가면 아무 것도 아니다. 안에서는 시간이 남아도 밖에 나가면 '우리를 도우라'며 기다리는 하나님의 백성들로 줄을 선다. 지금 시작해야 한다. 당장 가지 못해도 준비하고 연습해야 한다. 목회자들은 조기은퇴하고 선교현장으로 나가자. 신학교 교수들, 가르칠만한 목회자들은 매년 두 세주, 그리고 안식년에 선교지로 나가가르치자. 학교교사들은 방학중 열악한 선교지로 단기선교를 떠나고 때가 되면 아예 제2의 제자들을 찾아 세계로 나가자.의사들은 선교하기에 너무 좋은 직업을 가졌다. 적어도 인생의 십일조는 밖에 나가 선교하자. 사업하고 기업하는 교인들은 사람을 키우는 일에 집중 투자하여 당신이 돈버는 목적이 하나님 나라의 일꾼세우는 데 있슴을 선포하자. 더이상 한국교회가 명예와 자리다툼, 세습등에 시간뺏기지 말자. 목회라는 이름의 사업, 내가 아니면 안된다는 생각도 내려놓자. 그리고 힘을 모아 하나님의 사람을 키우는 일에 함께 나서자. 혹시 머뭇거리고 있는가? 겸손히 주의 말씀앞에 다시 서자.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마28:19)

아프리카(22)  이 순간의 행복

우리에게 큰 일은 무엇일까? 우리는 항상 큰 일에 사로잡혀 작은 일을 놓치고 이루어지지 않은 미래의 큰 일만 꿈꾸다 이 순간에 일어난 작은 행복을 놓치고 산다. 

며칠전 학교에서 늦게 돌아와 걷기를 시작했다.해질 시간이 빠듯해 바쁘게 걸음을 재촉했다. 그런데 들길에서 자주 만나는 여자 어린이 세 명이 맨발로(아프리카 어린이들은 거의 맨발이다) 내게 다가왔다. 그들은 오늘 막  딴 듯한 망고 바구니를 내게 보여주며 말했다. '닥터, 이 망고 가져 가세요' . 나는 처음에 아이들이 망고를 그냥 주는 줄 알았다. 그래서 '고마워' 하고 받았는 데 다음 순간 아이들이 말했다. '4천 실링이예요'. 아이들을 다시 쳐다본 순간 한 아이가 말했다. '우리 엄마가 아파요'. 그러더니 말을 잇지 못했다. 아이들의 얼굴은 갑자기 어두어졌다. 이 아이들은 내 기억이 맞다면 며칠전 엄마, 아빠와 함께 밭을 매던 아이들이었다. 그런데 그 사이에 갑자기 엄마가 아픈 것이다. 나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이 순진한 아이들이 엄마 이야기로 굳이 나같은 어른을 속일 이유는 없었다. 그래도 가끔 길에서 만난 사람이라고, 저 분에게 이야기하면 우리 엄마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을지. 저 분에게 망고를 팔면 반드시 사줄 것이라고 믿었는지 모른다. 어린 소녀들의 생각이 하도 기특해서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나는 집으로 돌아갔다.그리고 다시 돌아와 5천 실링을 그들 손에 쥐어 주면서 머리에 손을 얹었다. 그들이 고맙다며 빠른 걸음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뒷 모습을 보면서 나도 한국에 계신 내 어머니 생각이 났다. 

우리 학생중에 샘이라는 학생이 있다. 40대 남짓된 그에게 자녀가 다섯이 있는데 몇 년 전 누나가 사망하여 누나의 자녀들까지 여덟 자녀의 아버지가 되었다. 그런데 막중한 자녀 양육의 책임을 지게 된 때 하필 신학의 소명을 받게 되었다. 그래서 모든 것을 뒤로 하고 신학교로 들어왔는데 자식들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던 것 같다. 세 주 전 학생들에게 기도제목을 말해 보라고 했더니 그는 자녀들 학비 이야기를 했다. 그것을 내 마음에 두고 있었는데 두 주전 한국의 어떤 목사님이 학생중 자녀교육에 필요한 학생에게 주라고 선교비를 보내왔다. 내가 샘을 불러 당신의 기도 제목을 마음에 두고 기도하고 있었다고 했더니 갑자기 그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리고 오늘 하나님이 응답했다고 했더니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한참후에 그가 말했다. '내일이 학교등록 마감일이예요. 그래서 간절한 마음으로 오늘까지 응답해달라고 기도했지요'. 하나님은 아버지의 눈물의 기도를 듣고 한국의 목회자를 움직여 그에게 응답하신 것이다.  감사하다며 눈물을 훔치고 나가는 그의 뒷 모습을 보면서 마치 내 자녀의 학비가 마련된듯 기뻣다.

내가 사는 마을(모리카라라고 부른다)에는 선교사사택이 몇 채 있다. 어느날 보니까 이 집들을 한국 김천에 있는 어느 권사님이 지었다고 씌여 있었다. 궁금해서 사연을 물었더니 2001년에 이곳에 경상도 김천에서 대학생들이 단기선교를 왔다가 그 중 한 학생이 교통사고로 숨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학생은 아버지없이 홀 어머니 밑에서 자란 어머니의 외아들이었다. 평생을 홀 몸으로 아들 하나 길렀는데 그 아들이 아프리카에서 갑자기 죽자 어머니의 상심은 이만 저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왕 죽은 아들을 위해 무엇을 할까 생각하다가 평생 지방 공무원으로 일하다 퇴직하면서 받은 퇴직금을 남김없이 털어 아들이 죽은 땅에 선교사들을 위해 집을 지은 것이다. 기도하다가 감동이 와서 한국으로 전화를 걸었다. 김천의 권사님은 아프리카에서 온 낯선 남자의 전화에 처음에는 당황하셨다. 그러나 나를 소개하면서 '권사님, 정말 장한 아들 두셨어요. 아프리카에 떨어진 한 알의 밀알이 열매맺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라고 말하자 한동안 말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전화 너머로 소리없이 우는 소리가 들렸다. 나도 같은 마음이라 속으로 울었다. 그 아들은 지금 한 알의 밀알이 되어 그가 마지막 딛고 간 아프리카 땅에 잠들어 있다.

이곳에 온 이래로 내 머리는 아내가 깍았다. 그것은 옛날 이스라엘에서 부터 오래된 습관이었다. 그런데 어느날 보니까 아내는 자기 머리를 자기 혼자 깍고 있었다. 거울을 두 개 놓고 이리 저리 비춰가며 머리를 깍는 데 마침 전기가 나가 방은 어두컴컴했디. 아내의 뒷 모습을 에서 보는 순간 많은 생각이 스쳐갔다. 여자는 머리를 잘 가꾸어야 하는데 미장원도 없는 이곳에 와서 혼자 머리를 자르다니. 내가 가까이 가서 말했다. '가위줘봐. 뒷 머리는 내가 깍아줄께'. 나는 난생 처음으로 아내의 뒷 머리를 잘랐다. 그 가위도 오래전에 이스라엘에서 아내가 가족들의 머리를 자르기 위해 샀던 것이었다. 세월이 흘러 그 가위로 머리 깍아준 아이들은 자라고 두 사람은 아프리카에 와서 또 다시 머리를 자르고 있었다. 내가 말했다. '머리를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어. 잘못하면 귀를 자르겠어'. 그날 나는 하루종일 아내에게 미안하고 감사했다. 

그렇다. 

찬찬히 보면 우리 삶의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 거룩의 씨앗들은 사방에 널려 있다. 

우리가 우리에게 다가온 순간을 하찮은 것으로만 여기지 않는다면 

행복은 그리고 거룩은 

지금 이 순간 

우리 가까운 곳에 있다. 

우주를 지으신 분이 

우리의 작은 신음소리도들으신다. 

세상을 경영하시는 분이 들에 피는 꽃도 돌보신다.

하늘의 우뢰소리만 들으려고 하지 말고

새소리도 함께 듣자

명화, 대작, 명품만 보려고 하지 말고

들에 피는 풀도

이름모를 숲속의 작은 나무도 함께 보자

주여

오늘도 일상에서 성경을 보게 하시며

오늘 우리가 만난 작은 사람들을 통해 

크신 하나님을 보게 하옵소서

아프리카(23)  목회자세미나를 시작하며

아프리카에서 작은 목회자세미나가 시작되었다. 여기 이름으로 Pastor Bible Conference, 그동안 한 달 가까이 준비하다가 드디어 그제(5.11), 시작되었다.

나는 목회자세미나와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1987월 6월, 한신교회 창립 10주년을 기념하여 그동안 성장해온 한신교회가 한국교회를 섬기기로 했다. 그때 부목사였던 내가 그 일을 맡은 것은 두고두고 큰 은혜였다. 어느 날 목사님이 양수리 수양관을 다녀오라고 했는데 그 당시 양수리는 멀고도 멀었다. 그때부터 한국교회 목회자를 섬기는 대장정이 시작되었다. 그렇게 19년, 대략 400명의 강사와 약 5만 명의 목회자가 다녀갔다. 그로 인해 이중표의 별세 신학이 한국교회에 선포되고 한신교회는 명실공히 한국교회 대표 교회로 우뚝 자리를 잡았다. 이목사님 별세후에도 목회자세미나는 계속되었다. 목회자세미나를 시작한 내가 먼 훗날 담임목사로 그 일을 계속할 줄 나는 몰랐다. 그리고 25회를 끝으로 한국교회에서 가장 많이 모이고 가장 은혜로웠던 세미나는 또 다른 미래를 기약하며 막을 내렸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아프리카, 세월이 지나도 목회자가 살아야 교회가 산다는 생각은 깊히 박힌 못처럼 내 영혼에 새겨져 있었다. 어느 날 기도하고 있는데 Church of Uganda 교단에 속한 사무엘 엘빈 목사가 찾아왔다. 그는 우간다 목사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 성경이라며 목회자들에게 성경을 가르치면 어떻겠느냐고 물었다. 그가 나를 잘 모르는 상태에서 제안한 것이라 나는 하나님의 뜻이라 여겼다. 그래서 다음 주 우간다 대표 5개 교단 대표 목사들이 급히 모였다. 그때 그들이 한결같이 이야기한 것은 우간다 목회자에게 시급하게 필요한 것은 성경이라는 것이었다. 모든 아프리카 목회자 그리고 모든 신자에게 필요한 것도 여전히 하나님 말씀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날짜를 잡고 준비에 들어갔다. 그날이 어제였다.

아침 일찍 학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신학생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안내하고 등록받고 명찰 달아 주고 교재 나누어 주고 어디서 많이 본 광경이었다. 찬양 소리가 나서 교실에 들어갔더니 제시가 목청을 높히고 찬양을 인도하고 있었다. 그것도 많이 본 광경이었다. 물론 모든 것이 다 마음에 든 것은 아니었다. 아프리카사람들의 특유한 늦는 버릇이 어김없이 나타났다. 늦게 나타나고 안 나타나고 언제 왔는지 모르게 앉아 있고 그렇게 첫 번째 목회자세미나는 시작되었다.

오리엔테이션을 마치자 강의는 시작되었다. 강사는 나 혼자였다. 주제는 구약의 예언서, 예언서는 내가 좋아하고 목회자에게 꼭 필요하다고 여기는 성경의 주제중의 하나다. 첫 시간으로 예언서 서론을 공부했다. 6대 제국의 역사와 성경의 역사를 연결하고 이스라엘 남북 왕들의 이름과 그 속에 활동한 예언자들을 정리했다. 조금 딱딱한 공부를 마치자 점심시간이 되었다. 목회자들은 마치 엄마를 기다린 아이처럼 모두 목을 길게 빼고 밥을 기다렸다. 신학대학 공식 밥 아줌마 캐시와 헬렌이 식기를 나르기 시작하자 신학생들이 군대처럼 밥을 날랐다. 세미나 기간 중 제일 은혜로운 시간은 한국이나 아프리카나 역시 먹는 시간이다. 여기도 그랬다. 음식 하느라 수고했던 한신교회 여신도들 생각이 났다. 음식은 쌀밥에 고기 하나 야채 하나 음료수 한 병이 전부였다. 그러나 너무들 잘 먹어 음식을 남긴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점심후 아모스와 호세아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아모스를 지나 호세아를 시작하자 여기저기서 반응이 나타났다. 집 나간 아내를 찾아가는 장면을 두 사람이 나와서 연기해보라고 했을 때 분위기는 절정에 달했다. 남편인 호세아가 무릎 꿇고 사정하자 아내가 뿌리치는 모습을 보고 목회자들은 하나님도 우리에게 그렇게 오래 참으셨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그리고 아내를 사기 위해 많은 대가를 지급하는 호세아를 보면서 하나님도 우리를 사기 위해 십자가에서 친히 자신을 내어주셨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결국, 호세아는 북이스라엘 여로보암 2세 시대 이야기가 아니라 성경 전체의 이야기이며 곧 우리 이야기였다.

마지막에 목회자인 우리가 어떻게 호세아처럼 목회할 것인가를 놓고 한 사람씩 말하기 시작했다. 한 사람이 자기는 일생 교인들을 위해 희생한 것이 없다고 말하자 분위기는 영적으로 변했다. 사람들 속에 갑자기 숨겨진 호세아가 살아났다. 한 사람이 울먹거리며 말하자 다른 사람도 울먹거리기 시작했다. 성령께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자 여기저기 우는 사람이 눈에 뜨였다. 무엇보다 은혜받은 것은 나였다. 나 같은 죄인이 아프리카까지 와서 목회자들을 섬기다니, 오래전 양수리에서 있었던 세미나가 여기서도 계속되다니. 세월은 흐르고 샘 곁에 심은 나무는 담을 넘었다. 하나님이 때가 급하여 마른 막대기 같은 나를 사용하신 것이다. 강의 도중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내가 울자 목회자들도 함께 울기 시작했다. 한참을 울다가 기도한 후 떠나갈 때 나는 아프리카의 목회자들에게서 희망을 보았다.

희망은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었다.

하나님께 희망이 있는 한 우리에게도 희망이 있다.

오늘 도랑이 흐르면 분명 내일은 강물이 흐르리라

아프리카(24)  꽃이 떨어지면 열매가 되고

내가 사는 집 앞에는 바나나 나무가 하나 있다. 그런데 어느 날 보니까 이 나무 속에서 예쁜 바나나 순이 뾰족이 나오고 있었다. 항상 주렁주렁 열매가 매달려 있는 나무만 보다가 작은 순이 자라는 것이 너무 신기해서 오며 가며 지켜보았다. 그런데 어느 날 보라색 꽃잎 덩어리에서 꽃잎 하나가 뚝 떨어지더니 떨어진 꽃잎 속에서 작은 무엇인가 나타났다. 그리고 또 꽃잎이 떨어지자 속에 있던 그것이 조금씩 자라기 시작했다. 바나나 순이었다. 이런 과정이 한두 달 정도 계속되었을까? 꽃잎은 떨어지고 바나나 순은 자라고, 꽃잎이 떨어지면 속에서 또 나오고, 그러다가 어느 한순간 바나나의 모습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꼭지에는 여전히 자신의 뿌리가 꽃이었음을 증명하는 작은 꼬리를 간직한 채 바나나는 그렇게 자라고 있었다.

우리가 항상 보았던 바나나는 다 자란 바나나였다. 백화점에 예쁘게 포장된 바나나, 노점상 할머니 좌판대에 놓여있는 노란색 바나나는 이미 이 모든 과정을 마친 바나나였다. 바나나는 한 번도 자신의 출생 비밀을 우리에게 말한 적이 없으나 항상 변함없이 그 자리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창조의 신비를 나타내고 있었다. 그 작은 과일 속에 그렇게 깊은 비밀이 있었는지 나는 몰랐다.

성경에 예수님이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셨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 사건 때문에 젊은 니체가 무신론자가 되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있긴 하지만 이 사건의 핵심은 저주가 아니다. 마땅히 있어야 할 나무에 열매가 없었다는 것이다. 학자들에 의하면 무화과나무는 한 해에 아홉 달이나 열매를 맺는다고 한다. 그러나 그날 예수님이 만난 무화과에는 아무 열매도 없었다. 잎사귀가 없었다는 것이 아니다. 얼마나 잎사귀가 많았으면 아담과 하와가 그 뒤로 숨었겠는가? 화가들의 그림을 보면 무화과나무 잎사귀 하나만으로 하와는 자기 몸을 충분히 가리고 있었다. 나무에 꽃이 있느냐를 묻지 않았다. 막 11:13, '예수께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혹 그 나무에 무엇이 있을까 보시려고 가셨더니 잎사귀 외에는 아무것도 없더라'. 예수님은 무엇을 보려고 무화과나무 가까이 갔을까? 당연히 열매다. 무성한 가지도, 향기 나는 꽃도 아니었다. 예수님의 관심은 오로지 열매였다.

성경은 참 이상하다. 사람들이 다 좋아하는 꽃 이야기가 별로 안 나온다. 우리는 꽃을 좋아하는데 성경은 꽃에 대해 너무 무관심하다. '너희는 꽃같이 되어라, 꽃에게서 배우라, 꽃과 같은 사람이 되어라' 이런 말은 찾아볼 수 없다. 꽃 이야기가 나오긴 하는데 인생이 허무하다고 말할 때 잠시 예화로 나온다. '인생은 꽃과 같고...',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듦은 ...'

남의 이야기 좋아하는 사람처럼 한국교회 이야기는 하지 않겠다. 내 이야기가 바로 한국교회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동안 무성한 나뭇가지였다. 나는 별로 자랑할 것도 없으면서 꽤 자랑하기를 좋아했다. 별로 드러낼 것도 없으면서 많이도 드러내고 다녔다. 공부가 어떻고 목회가 어떻고, 그러나 정말 제대로 공부한 사람이라면, 제대로 목회한 사람이라면 그런 이야기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무성한 가지의 목회를 했다. 영성을 말했지만, 하나님보다 사람 보기 좋은 목회를 했다.

나는 한국교회의 꽃이 되고 싶었다. 한신교회 목회하기 훨씬 전부터 그랬다. 입으로 시인하면 비전을 이룬다고 성경이 말하지 않았느냐고 말한다면 할 말이 없다. 그러나 사실 내 경우에는 비전이라는 이름의 욕심이었을 가능성이 더 크다. 뭔가 열심히 해서 한국교회 주목을 받고 싶었다. 어떤 때 매스컴의 주목이 끊기면 불안했던 적도 있다. 스타의 자질과 능력도 없으면서 나는 공연히 스타의 꿈을 꾸었다. 나는 무성한 잎사귀요 향기 없는 꽃이었다. 당연히 그 안에 열매는 없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주님은 오로지 열매만 찾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그 열매는 자기희생과 죽음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았다. 늦었지만 다행한 일이었다.

그렇다. 열매는 어떻게 맺는가? 꽃이 떨어져야 한다. 꽃이 떨어지고

그 안에 있던 씨가 깨져야 열매 맺는다. 그래서 열매는 맺는 것이 아니라

맺혀지는 것이다. 꽃이 떨어지면 열매요, 꽃이 떨어져야 열매다.

죽어야 열매요, 껍질을 벗어야 열매다. 깨진 만큼 열매요, 죽은 만큼 열매다.

오늘도

나는

한 잎 한 잎 떨어지는

바나나 나무 아래서 한참을 바나나 나무를 바라보았다. 작은 바나나는 나의 큰 스승이었다.

아프리카(25) 토로마 교회

금주부터 교회 순방을 시작했다. 학생들을 제대로 가르치고 아프리카 교회에 도움을 주려면 우선 아프리카 교회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학생 중의 하나인 이삭이 자기 교회를 방문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삭은 우리의 순복음교회에 해당하는 Pentecostal Assembly of God 교단에 속한 교회를 목회하고 있었다.

아침 일찍 학교 앞에서 이삭을 포함, 세 학생과 함께 길을 떠났다. 소로티 근처에 교회가 있다는 말만 듣고 떠났으나 길은 생각보다 멀었다. 때마침 내린 비로 비포장도로 여기저기는 웅덩이가 생기고 웅덩이를 지날 때마다 자동차는 흙탕물을 뒤집어썼다. 이삭이 한 시간 걸린다고 했던 길은 거의 두 시간이 걸렸다. 오랬 만에 운전하다가 이런 험한 길을 가게 된다니 슬슬 힘들어질 무렵 목적지인 토로마에 도착했다. 토로마는 평화롭고 한가한 전형적인 시골 마을이었다. 그런데 도착하자 나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리 시골교회라도 빨간 벽돌에 십자가는 있겠지 생각했는데 교회는 예상밖에 우리의 초가집 같은 것이었다. 이미 이삭에게 들은 장년 130여 명 포함, 200명의 교인이 어떻게 예배드릴지 벌써 걱정이 되었다.

고개를 수그리고 안으로 들어갔을 때 나는 또 한 번 놀랐다. 교회 내부는 산에서 막 캐온 것 같은 큰 나무를 통채로 세우고 그 위에 서까래 몇 개를 얹은 상태였다. 지붕은 쐐기를 엮어 크게 비라도 오면 금방이라도 샐 것 같은 교회였다.

그런데 예배는 건물과 아무 상관이 없었다. 사람들은 그 작은 공간에서 오로지 예배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예배가 시작되자 그들은 온 힘을 쏟아 찬양을 시작했다. 피아노도 없었다. 그 흔한 신시사이저도 없었다. 자신들이 오래 사용한 전통악기가 전부였다. 전기도, 조명도 마이크도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온통 찬양에 집중하고 있었다. 하도 열심히 찬양을 불러 동행한 학생에게 무슨 찬양인지 물었다. 학생이 대답했다. '여호아가 우리 왕이라는 찬양입니다'.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라는 단순한 찬양만으로 모든 교인이 은혜를 받을 수 있다면 우리는 무슨 찬양으로도 은혜받을 수 있다. 이어 특별 찬양이 시작되었다. 젊은 학생 몇 명이 나와 우리의 성가대와 같은 찬양을 한 것이다. 이 또한 은혜가 되어 무슨 찬양인지 물었다. '하나님, 오세요. 지금 오세요 라는 찬양입니다'. 가사를 알고 나니 괜히 눈물이 났다. 지구촌의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드리는 찬양까지도 하나님은 듣고 그 자리에 임재한 것이다.

드디어 설교시간이 되었다. 사회자가 나를 소개했는데 어두운 방에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행3:1~10로 'In the name of Jesus'의 설교를 영어로 준비했는데 아무 소용이 없게 되었다. 그저 성령님께 맡기고 설교를 시작했다. 예수의 이름은 구원이요, 치료요. 일어나게 하는 능력임을 강조했다. Rise up!! Rise up! 설교의 핵심이었다. 그렇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예수 이름으로 다시 일어나야 한다. 가난에서 질병에서 고통에서 일어나야 한다. 설교 후에 아픈 사람들을 위해 기도했을 때 성령의 강한 임재가 나타났다. 병에서 고통에서 일어나라고 소리치자 사람 대부분이 일어났다.

감동은 예배 후에 계속되었다. 교회 마당에서 교인들과 하나씩 인사하는데 하나같이 무릎을 꿇고 인사하는 것이었다. 한쪽 무릎은 구부리고 한쪽 무릎은 땅에 대고 고개를 숙여서 하는 인사는 영락없는 영국 여왕에게 하는 인사였다. 어린아이들은 맨발로, 여성들은 입은 옷이 땅에 닿아 흙이 묻은 채로 인사했다. 오래된 관습이겠지만 목회자가 대한 이들의 깊은 존경심을 느낄 수 있었다.

인사후에 교인 몇 사람이 갑자기 염소 한 마리를 끌고 왔다. 그리고 말했다. '목사님께 이 염소를 드립니다'. 나는 처음에 농담인지 알았다. 그런데 그것은 그들에게 온 존귀한 손님에게 드리는 선물이라고 하는 것이었다. 갑자기 아브라함 이야기가 생각났다. 천사가 왔을 때 염소를 잡아 대접한 아브라함, 그때 깨달았다. 양과 염소가 전 재산인 아브라함에게 염소는 얼마나 큰 희생이었는지를. 그리고 또 깨달았다. 집집마다 겨우 소 한 두 마리, 염소 몇 마리씩 키우며 사는 가난한 아프리카사람들에게 염소 한 마리가 얼마나 큰 선물인지를. 만일 이렇게 한국교회가 목회자를 대한다면 한국교회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놀라움은 식사 자리로 이어졌다. 교인의 가정으로 옮겼는데 정성을 다해 준비한 음식이었다. 쌀밥(이곳 사람들은 쌀밥을 크리스마스 때 한번 먹는다고 한다)과 닭, 감자와 채소까지, 여기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식사였다. 놀라운 것은 내가 식사할 때 아무도 먹지 않았다고 하는 것이다. '왜 같이 안 먹습니까?' 했더니 '목사님 드신 후에 먹겠습니다'. 그들은 내게 서빙만 할 뿐 아무도 식사를 하지 않았다. 다시 권했지만 같은 대답을 반복했다. 습관이 그래서 그런가 보다 하고 생각했지만, 이들의 목회자에 대한 깊은 존경심을 가슴속 깊이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의 눈물겨운 선물, 염소를 차 트렁크에 싣고 오는데 염소는 마치 자기 운명을 알았는지 아사셀 어린양 처럼 크게 울어댔다. 그것으로 신학생들을 먹여야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오늘 한국교회가 잘못된 것은 대부분 목회자들의 책임인 것을 부인하지는 않지만, 평신도들도 교회를 위해 목회자를 위해 최선을 다했는가? 혹시 오늘의 교회 상황을 어렵게 한 일에 평신도들의 책임은 없는가? 아프리카처럼 될 필요는 없지만, 오늘날 개혁이란 이름으로 교회 민주화, 참여라는 이름으로 교회와 목회자를 힘들게 하고 한국교회를 허무는 여우같은 존재는 없는가? 짧은 시간에 만난 아프리카 교인들의 미처 예기치 못한 사랑은 교회에 좋은 목회자도 필요하지만, 좋은 신자도 필요하다는 것도 말해주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임재하면 그곳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하나님의 교회라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