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 올린 시간 : 2019년 07월 03일 14시 21분 12초

아프리카(26)  덜 줘서 더 주는 사랑

내가 아이들의 바나나를 사준 것이 계기가 되어 나는 이곳 아이들에게 제법 인기 있는 외국 사람이 되었다. 길을 걷다보면 손을 흔들기도 하고 숨어 있다가 갑자기 튀어나와 나를 놀라게 하기도 한다. 그런데 한가지 안 좋은 것이 있다. 바나나를 사달라고 바구니를 들고 찾아 오는 아이들이 많아진 것이다. 처음에는 몇 번 더 사주었다. 그러나 아무 때나 찾아오는 아이들이 고민이 되었다. 다 떨어진 옷을 입고 신발도 없이 다니는 아이들을 보면 도와주고 싶은데 좋은 경험이 나쁜 습관이 될까 하는 걱정이 되었다.

생각하다가 어느 날 아내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매번 사주면 안 될 것 같애. 일주일에 한 번만 사주자'. 다음 날 잔뜩 기대하고 찾아온 아이들에게 내가 말했다. '이제부터 일주일에 한 번만 사줄게. 매주 토요일 아침에 와라. 그리고 순서를 정해서 한 사람씩 와야 한다'. 돌아가는 아이들이 내 생각을 충분히 이해했을 리 없다. 친절하던 아저씨가 갑자기 변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저 아저씨는 사줄 때가 있지만 안사줄 때도 있다는 것만 알아도 성공인 셈이다.

절대적으로 빈곤한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만일 장학금이 없다면 솔직히 다음 학기에도 계속 공부할 수 있는 학생이 몇 명이나 될지 모르겠다. 성도들의 눈물겨운 헌신이 없다면 이 일은 앞으로도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그들이 단순히 받기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처음부터 내 생각이었다. 그래서 모든 학생은 점심후 청소를 해야 하고 토요일은 학교 인근 지역까지 청소해야 한다. 뿐아니라 모든 학생은 각자의 일을 가져야 한다. 그래서 어떤 학생은 악기로 예배를 돕고 어떤 학생은 틈만 학교 이곳저곳을 고치러 다닌다. 어떤 학생은 학교내 부지를 경작하여 뭔가 심고 어떤 학생은 학교 안에 있는 양계장에 일한다. 모든 학생은 공부하는 시간과 함께 봉사하고 일하는 시간이 있어야 한다. 주일은 교회에 가서 맡은 일을 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 학생들은 공부하는 시간보다 쉬는 시간이 더 바쁘다.

한번은 한 학생이 찾아와 고등학교에 다니는 자기 자녀의 학비를 도와달라고 말했다. 그때 내가 말했다. '내가 한번 도와주겠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자녀로 하여금 저에게 감사편지 쓰게 하세요. 그리고 시험 본 후에 성적표를 저에게 보내주세요'. 며칠 전 그의 자녀가 쓴 편지와 성적표가 내게 왔다. 편지에는 깨알같이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열심히 공부해서 성적이 올랐다며 좋은 점수 받은 과목에 밑줄을 그어 보냈다.

흔히 선교사는 주는 사람이라고 한다. 그렇다. 선교사는 주는 사람이다. 선교사는 목숨까지라도 줄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장에서 이 말은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주되 어떻게 줄 것인가? 무엇을 어느 만큼 줄 것인가? 무엇은 주고 무엇은 주지 말아야 하는가? 어떤 때 예스라고 말하고 어떤 때노라고 말할 것인가?

선교의 역사를 보면 안 줘서 선교가 안 된 경우보다 너무 줘서 선교를 망친 경우가 더 많다. 물론 줄 때 기도하는 마음으로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받을 준비가 안 된 사람들에게 너무 많이 줘서 선교지를 망친(spoil) 경우가 적지 않다. 아프리카가 그렇고 제 3 세계가 그렇다. 좋은 동기로 그들은 많이 주면 빨리 변화될 줄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반대로 나타났다. 받을수록 그들은 선교사에게 더 의존하고 자립능력은 저하되었다. 자립을 강조한 네비우스 정책이 그래서 좋은 정책이었다. 그 민족을 자각시키지 않고 퍼주기만 해서는 밑독에 물붓기다. 어디 선교만 그런가? 선교든 자녀교육이든 신앙이든 우리 인생살이에서 너무 많이 주거나 받아서 좋은 경우는 거의 없다. 주어도 적당히 줘야 하고 받아도 절제있게 받아야 한다. 무조건 주는 것은 상대를 심정적 식민지로 만들고 무조건 받는 것은 자신을 거지로 만들 수 있다. 크리스쳔 정신과 의사 스콧 펙의 말이 맞는 것 같다.

"사랑은 단순히 거저 주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지각있게 주는 것이고, 마찬가지로 지각 있게 안 주는 것이다" (아직도 가야 할 길)

하나님도 그렇다. 하나님은 시내 산에서 모세의 기도를 들으셨으나 가나안을 넘어가게 해달라는 기도는 듣지 않았다. 하나님은 겟세마네의 기도를 도왔지만 이 잔을 옮겨 달라는 기도는 듣지 않았다. 하나님은 바울에게 치유의 은혜를 주셨지만 정작 바울의 몸을 고쳐주지는 않았다. 예수님도 병든 자를 향해 일어나라고 말했지만 그렇다고 자리를 들어주거나 일으켜주지는 않았다. 장님에게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고 했지만 실로암까지 따라 가지는 않았다. 그 일은 본인들이 해야 했다. 결국, 다 들어주지 않은 사랑이 그들을 일으킨 것이다. 덜 줘서 더 주신 사랑이요 다 안줘서 모두 주신 사랑이었다.

그렇다.

하나님은 나에게도 모든 것을 다 주시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더 목마른 인생을 살았다.

하나님은 내 모든 기도도 다 응답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더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하나님은 내 목회의 꿈을 다 이루어주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또 다른 하나님의 생각을 묻게 되었다.

하나님은 내 인생의 고통을 다 없애주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내 고통과 싸워야 했다.

하나님은 내 길을 분명하게 지시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더 하나님의 뜻을 알려고 몸부림쳤다.

하나님은 항상 내게 친절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응석 부리지 않고 일찍 철들 수 있었다.

하나님은 아프리카의 무더위, 모기, 말라리아, 불편함을 모두 없애주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날마다 그것들과 싸우며 산다.

하나님이 다 주시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다 받았다.

더 주시기 위해 덜 주시는 사랑, 거기까지가 하나님의 사랑이다.

아프리카(27) 성 제임스 교회

두 번째 방문 교회는 Church of Uganda 소속의 성 제임스 교회였다. 이 교회는 이번 목회자 컨퍼런스에 참석 중인 죤 무카 목사가 섬기는 교회였다. 항상 맨 앞자리에 앉아 열심히 공부하는 목회자여서 그의 초청을 기쁘게 받아들였다.

아침 8시에 학교에서 학생 제시를 태우고 길을 떠났다. 죠이 초등학교에서 가깝다는 말만 듣고 길을 떠났지만, 막상 교회를 찾기는 쉽지 않았다. 그래도 한참은 더 숲속으로 갔는데 더는 자동차가 다닐 수 없는 좁은 길이 나왔다. 문득 주님이 좁은 길로 가라고 한 것은 자동차가 아니라 사람이 생각이 들어 다시 마을로 나왔다. 그리고 마침 교회가는 두 남자를 만나 태우고 교회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예배가 시작되고 있었다.

1940년대에 세워졌다는 교회는 언뜻 봐도 낡고 작아 보였다. 건물은 외국 사람이 세운 것이 분명했다. 교회 안으로 들어갔을 때 이미 많은 사람이 모여 예배드리고 있었다. 줄잡아 400여 명은 될까? 예배는 Anglican의 전통을 받아 상당히 의식적이었다. 아프리카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주기도, 사도신경, 교송이 이어졌고 목회자도 가운을 입고 예배를 인도했다. 목회자가 기도할 때는 십자가를 보고했고 헌금을 드릴 때도 십자가 앞에 무릎 꿇고 기도했다. 그러나 아프리카는 역시 아프리카였다. 예배 양식이 외국에서 왔다고 해서 아프리카인의 본성을 없어진 것은 아니었다. 찬양이 시작되자 분위기는 빠르게 아프리카로 변했다. 이들은 빠른 리듬으로 진행된 음악에 몸을 맡기고 모두 기쁘게 찬양하기 시작했다. 찬양하면서 흥이 나면 거침없이 함성도 질렀다. 어린이와 어른할 것 없이 흥에 겨워 온 교인은 글자 그대로 축제의 한 마당을 이루었다.

우리도 이런 예배를 드릴 수 없을까? 세상은 간데없고 오직 구속한 주님 한 분만으로 행복해 하는 예배를 드릴 수 없을까? 피아노도 마이크도 성가대도 없었다. 영상은 물론 주보도 없었다. 전 교인이 드리는 축제의 예배에 누구도 소외된 사람은 없었다. 신자가 한 번의 예배로 이런 천국의 행복을 맛볼 수 있다면 그는 결코 예배를 포기하지 않으리라.

예배의 특징 중의 하나가 자라나는 세대가 예배에 많이 참여한다는 것이었다. 교회학교 어린이들이 나와 성경 암송을 했다. 하나하나 끝날 때 마다 어른들의 환호성이 터졌다. 청소년들이 나와 작은 연극을 했다. 내가 볼 때는 시원찮았지만 사람들은 모두 일어나 소리를 지르며 환호했다. 또다시 어린이들이 나와 오늘의 본문 성경 한 구절씩 읽자 모든 교인이 일어나 찬양을 부르기 시작했다. 너무 기쁘게 불러 지금 부르는 찬양이 무엇이냐고 묻자 '주님, 감사해요'라는 찬양이라고 했다. 그렇게 단순한 찬양을 그렇게 기쁘게 부르다니. 수준 높은 찬양은 어러운 찬양이 아니라 기쁘게 부르는 찬양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잘 기획하고 준비하는데 왜 이들만큼 기쁘지 않을까?

우리는 교육이란 이름으로 아이들을 다른 데로 보내고 우리끼리 예배드리는 데 익숙해 있다. 그 결과 교회 안에서 자녀들은 멀리 있고 한번 쓰다듬어 주고 안아줄 기회조차 없다. 교회에서 아이들의 떠드는 소리가 귀엽고 청소년들이 잘못해도 박수쳐 줄 수 있어야 이들이 교회에 남아 있지 않을까?

설교시간이 되자 모든 눈은 나에게 집중되었다. 본문은 달랐지만 'Rise Up'에 관한 설교를 했다. 성경에 하나님이 일으켜 세운 7명의 사람들을 소개하며 여러분은 무엇 때문에 인생이 어려우냐고 물었다. 신앙은 어떤 경우에도 일어나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우리는 매일 일어나는 연습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예수님도 죽음에서 일어났고 우리도 때가 되면 무덤에서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설교의 마지막에 모두 일어나는 연습을 시켰다. 나는 이들이 어려운 일을 당할 때마다 자리에서 일어났던 오늘의 순간을 꼭 기억하기를 바랐다.

헌금시간이 되자 집사 두 사람이 작은 바구니를 들고 앞에 섰다. 그러자 사람들이 하나씩 나와 헌금을 드렸는데 그들이 드린 헌금은 대부분 동전이었다. 지폐는 내가 드린 것이 거의 전부였다. 아프리카의 경제 상황을 한눈에 보여주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헌금을 또 한 번 더 하는 것이었다. 이번에는 건축을 위한 헌금이었다. 이번에도 교인들은 나와 헌금했다. 언제나 교회는 한 두 사람의 부자에 의해서가 아니라 많은 사람의 작은 동전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보여주었다. 드디어 예배가 마치는 시간, 시계를 보니까 벌써 3시간이 넘어있었다. 나도 모르게 3시간이 넘는 예배를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드리고 있었다.

예배를 마치고 전 교인이 교회를 건축할 망고나무로 옮겼다. 이 교회의 교인 수는 이 작은 예배당에서는 수용할 수 없어 오래전 선교사가 처음 찾아와 전도했던 망고나무 아래에 다시 지으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망고나무 아래서 전 교인이 보는 가운데 기념 식수를 했다. 아마 그 이름은 교회의 이름이 된 제임스일 것이다. 아주 오래전에 영국의 한 선교사 제임스에 의해 복음의 씨가 떨어진 그 자리에 수많은 열매가 그를 기억하고 제2의 부흥을 꿈꾸며 마음을 모으고 동전을 모으고 기도를 모으는 모습이 너무 장하고 아름다웠다.

그렇다.

생명은 생명을 낳고

한 알의 밀알은 죽어 그 자리에 또 다른 열매를 맺고

오래전 영국의 제임스가 심은 복음의 나무에

먼 훗날 한국의 또 다른 선교사가 와서 물주고

그러나

자라게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오늘 내가 심은 망고나무가 자라

주렁주렁 열매를 맺히고

여기에 다시 우뚝 세워질 교회에

더 많은 영혼의 열매도

주렁주렁 맺혀

역사와 사람은 바뀌어도

하나님의 나라는

이 땅에

자라고 자라게 하소서

첫사랑을 잊지 않고

그 자리에서 다시 시작하는 아프리카의 작은 교회 성 제임스 교회를

주여 축북 하소서!

아프리카(28)  부른디의 다미엔, 신인환선교사

부른디의 벽촌 무제까지 가는 길은 멀고도 멀었다. 쿠미에서 새벽 5시에 출발, 엔테베까지 7시간, 엔테베에서 르완다의 수도 키갈리를 거쳐 부른디의 부좀부라에 도착했을때는 이미 어두운 밤이었다. 오래 기다린 신응남 선교사를 반갑게 만나 인근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게스트 하우스에 여장을 풀자마자 우리는 곧 잠에 떨어졌다. 이튿날 신선교사와 해발 1700미터의 높이의 고지의 선교 현장을 향해 출발했다. 그리고 강원도의 한계령같은 골짜기를 수도 없이 넘어 목적지에 도착했을때는 이미 점심때가 훨씬 넘어 있었다.

'무제', 멀고 험해서 아예 사람들이 찾지 않는 땅, 그래서 이름도 무제인 이곳이 오직 아프리카 한센인을 위해 지난 20년을 하루같이 살아온 신선교사 부부의 사역지이다. 이들은 왜 이렇게 멀리까지 왔을까? 그렇게 멀리, 지구의 반을 돌아 물어 물어 찾아간 지구촌의 땅끝마을, 부른디는 천개의 산으로 되어 있다는 데 정말 천개 이상의 산을 넘은 것 같았다. 그 높은 산을 넘을 때마다 손바닥만한 밭대기에서 나는 한 줌 옥수수와 화전민처럼 다닥 다닥 일군 밭에 심은 고구마 몇 개로 하루 하루를 사는 사람들이 지구상에서 왜 가장 가난한 사람들인지 알 것 같았다. 

신선교사가 한센인 사역의 소명을 받은 것은 40대 초반, 지인의 소개로 소록도의 애양원을 방문하고 나서다. 천형이라 하는 한센씨 병에 걸려 가족들로 부터도 버림받고 소록도로 내쫒긴 이들이 이른 새벽에 드린 기도가 두 사람의 일생을 바꿔놓았다. 이들은 이른 새벽에 일어나 손가락이 떨어져 나가 뭉퉁해진 손바닥을 툭툭 치면서 자기들을 버린 가족과 심지어 조국까지도 위해 눈물로 기도하고 있었다.  

어느날 이들은 전세계 4천만의 한센인중 2천만이 아프리카에 산다는 말을 듣고 아프리카로 마음을 정했다. 한번 마음을 정하자 이들은 목회도 미국의 학업도 모두 포기했다. 그리고 2004년부터 10년간 아프리카 33개국을 다니며 한센인들을 섬기고 돌보았다. 이들은 거의 한센인에 미친 사람들이었다. 한 나라도 아니고 33개국을 한센인이 있는 곳마다 찾아다니며 그들을 섬긴 사람이 이들 말고 세상에 또 있을까?

그러다가 신선교사가 갑자기 병을 얻었다. 2010년, 몸이 안좋아 병원을 찾았을 때 천청벽력과 같은 간암 판정을 받았다. 자기 몸은 돌보지 않고 오직 한센인을 위해 온 몸을 던진 까닭이다. 수술로 몸을 추수리던 2015년, 또 갑상선암이 찾아왔다. 시련의 연속, 그러나 하나님은 칠흙같은 어둠속에서 이들의 길을 인도하고 있었다. 계속되는 발병으로 떠돌이 선교사 생활을 청산해야 했을 때 하나님은 이곳 무제에 한센인 선교의 보금자리를 예비하셨다. 이곳에 이들이 정착한 것은 이곳에 한센인이 가장 많이 살고 있고 또 수도로 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 사람들의 손길이 거의 닿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들이 이곳에 도착했을 때 이곳은 그야말로 아프리카 벽촌중의 벽촌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켜 이곳에 땅을 사게 하시고 한센인 치료를 위한 병원을 시작하게 하셨다. 돕는 사람도 생겨났다. 부인 신응남 선교사가 한방을 공부하여 진료를 시작하자 의료진의 헌신적인 봉사도 뒤따랐다. 지금 방글라데시에서 로힝야족을 섬기는 최병한, 최경숙 의사 부부가 그 들이다. 그들은 이미 중국에서 10년 이상 의료선교사로 활동하다가 '우리를 도우라'는 아프리카 한센인의 손길을 보고 과감하게 이곳으로 건너 왔다. 그리고 5년을 헌신했다. 

신선교사 부부의 긍휼의 사역은 예배의 기름부음과 함께 성장하고 발전했다. 선교센터는 매일 새벽 기도와 찬양으로 문을 열었다. 매일 새벽 5-7에 드리는 새벽 예배는 지역주민 대부분이 참석하여 아프리카 특유의 몸찬양과 기도로 이어졌다. 찬양의 영성은 우간다 뿐이니라 아프리카의 타고난 영성의 DNA이다. 예배를 통해 성령의 기름부음이 넘쳐나자 뜻밖에 하나님은 이들에게 큰 예배당을 허락하셨다. 아직 공사중이지만 이 성전이 완공되면 수천의 아프리카 영혼들이 성전에서 춤추며 하나님을 찬양할 것이다. 그렇다. 하나님은 지혜로우시다. 그는 그를 사랑하는 자를 알아보신다. 그리고 그에게 더 많은 일을 맡기신다.  '그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신 하나님이 그 아들과 함께 어찌 모든 것을 주시지 않겠는가'(롬8:34). 이를 위해 이번에 시작한 2박 3일의 영성훈련은 이들의 꿈을 향한 새로운 출발이었다. 새벽부터 오전, 오후로 이어진 계속된 말씀과 기도로 참석자 모두는 아프리카 영혼구원과 하나님의 사람을 키우는 그 일에 헌신하기로 다짐했다. 마지막 시간 제단에 무릎꿇고 각자 기도하다가 문득 이렇게 글을 썼다.

아프리카의 한 영혼 한센인을 위해  당신이 아프리카 33개국을 떠돌때 

우리는 편하게 목회하며 성공의 꿈을 꾸고 있었습니다.

당신이 주님을 위해 살다가 두번이나 암수술받고 사경을 헤멜때 우리는  사우나로 골프로 무척 한가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당신이 아프리카의 가장 가난한 나라, 아무도 찾지 않은 오지에서 더위와 무지와 가난과 싸울 때 우리는 행복을 찾아 좋은 식당과 여행지를 찾아다녔습니다.

벨기에 신부 다미엔이 한센인에게 복음전하기 위해 내 몸에도 한센의 균이 들어오게 해달라는 기도는 다만 책에서 읽었을 뿐 잊어 버린지 오래였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이 애양원에서 한센인의 피고름을 입으로 빨았다는 이야기는 듣고도 우리의 마음은 감동되지 않은 것은 어쩌면 우리가 한센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다행입니다. 당신같은 분이 있어 한국교회위신을 지키주고 우리 대신 빛을 갚아 주었으니

슬픕니다. 그러나 감사하고 죄송합니다. 우리도 힘을 내 당신이 따랐던 그 분을 따라 당신이 걸었던 그 길을 함께 걷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주님께로 가는 또 다른 길을 보여주셔서...

아프리카(29)  한센인 페리 부부

선교센터에서 2박 3일의 수양회가 끝나자마자 한센인 가정을 방문하기 위해 길을 나섰다. 부른디의 한센인은 한국의 소록도처럼 한 곳에 모여 있지 않고 사방에 흩어져 있었다. 거리로는 선교센터에서 30분에서 2시간 거리였지만 대부분 외진 곳에 살아 한 가정 방문에도 많은 시간이 걸렸다. 

많은 가정을 방문한 가운데 마지막이 페리의 가정이었다. 선교사의 말에 이 가정은 꼭 방문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던터라 웬지 기대가 되었다.

그를 방문하기 위해 좁은 길로 들어섰다. 내 키를 훨씬 넘기는 바나나 숲을 지나 좁은 황토길을 걸어 이들의 주식인 카사바 밭을 지나자 페리의 집이 나왔다. 갑작스런 선교사들의 방문에 깜짝 놀라 반기는 페리 아내를 보는 순간 나는 성경의 마리아가 막 튀어 나온줄 알았다. 키가 크고 미인인데다가 정말 정성으로 맞이하는 것이 한센인 부인과는 전혀 상관없어 보였다. 곧 남편이 헐레벌떡 나타났는데 그 역시 어디 하나 한센 환자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인상이었다.

그러나 곧 그의 상처가 나타났다. 그가 양말을 벗으며 그의 상처를 보여 주었는데 발가락이 뭉그러졌고 두 손도 매우 나쁜 상태였다. 왼손은 아예 신경이 죽어 많이 불편해 보였다. 그러나 선교사의 말에 의하면 10년 전에 비해 많이 좋아졌고 지금은 거의 완치의 수준이라고 한다. 

이 부부의 비밀은 무엇인가? 무엇이 불치병이라 일컫는 한센병 환자를 완치에 가깝게 이끌었는가? 사랑이다. 이들 부부의 사랑은 아는 사람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었다고 한다. 남편인 페리는 어릴 때부터 한센병을 앓았다. 그 시절 한센병은 고칠 수 없는 병으로 믿었고 또 뾰족한 치료방법도 없어서 거의 절망스러운 병이었다. 그때 그의 아내는 믿는 아가씨였는데 우연히 그 남자에 대해 안 후 그에 대한 연민을 갖기 시작했다. 그래서 부모가 반대하는데도 결혼에 이르게 되었다. 결혼후 아내는 그야말로 헌신적인 내조를 시작했다. 절망하는 남편을 위로하고 불신자인 그를 권면하여 믿음을 갖게 했다. 

그러던 어느날 아내의 기도가 응답되었다. 한 한국 선교사가 한센인선교를 위해 집 근처에 집을 짓기 시작한 것이다(그가 신선교사다). 낯선 선교사를 찾아와 자신의 상황을 이야기한 아내는 그날부터 남편을 이끌고 병원을 찾게 되었다. 그리고 10년, 페리는 그 아내와함께 믿음의 사람이 되었다. 처음 선교사에게 나온 날, 그의 몸 상태는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었다.그러나 이제 거의 완치에 이르게 되고 가정일도 하기 열심히 하고 있다.

무엇이 불치병을 고치는가? 의술만이 아니다. 한국과 비교해서 안됐지만 부른디는 소록도같은 집단 시설이 없다. 집단 시설이 없을만큼 열악하다는 뜻도 되지만 또 다른 의미도 있다.당연히 집단시설의 장점이 있다. 사람들로 부터 격리하여 치료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격리가 치료의 최상의 방법인지 생각해 볼 필요는 있다. 솔직히 우리는 치료를 위해 격리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싫어하기 때문에 격리한 것 아닌가? 우리 생각엔 한센병은 저주받은 병이고 사람도 무서울 뿐만 아니라 전염의 위험이 있기 때문에 격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그때 고려되지 않은 것이 사랑의 치료다. 

오래전 소록도를 방문했을 때 한 환자의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부모가 살아 있을 때 소록도에 왔는 데 평생 부모 얼굴 한번 못 보았고 부모가 돌아가신 후에는 하나 밖에 없는 형님 얼굴도 본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의 소원은 형님 얼굴 한번 보는 것이었다. 

무엇이 사람을 치료하고 무엇이 사람을 변화시키는가? 좁고 가난한 집에 중환자인 한센인 남편과 살면서 남편의 완치를 이끌어낸 아내의 승리는 곧 사랑의 승리요 믿음의 승리였다. 누추한 집에 심지어 염소와 함께 살면서도 보름달같이 환한 두 부부의 얼굴을 보면서 나는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하는 우리에게 무엇이 심각하게 부족한지 알게 되었다. 페리부부만이 아니다. 하루종일 방문한 한센환자가운데 병을 이기고 장수한 사람은 어김없이 누군가로부터 사랑을 받은 사람이었다. 91세의 할아버지가 있었다. 두 발과 두 손은 거의 몽둥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91세까지 산 이유가 있었다. 첫째 부인을 사별하고 40살이나 적은 둘째와 살면서 아내의 극진한 내조와 함께 어린 5남매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있었던 것이다. 80세가 넘는 할머니도 있다. 그에게는 여동생이 옆에 살면서 각별히 언니를 돌보고 있었다. 

그렇다. 우리에게 없는 것은 사랑이고 그중에서시급히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다. 사랑만한 치료도 없고 하나님의 사랑만한 능력도 없다. 우리도 페리부부처럼 하나님의 사랑안에 살면 우리에게도 언제나 하나님의 기적이 있다.

아프리카(30)  아, 리빙스턴!

오래전 영국 그래스고우에 있는 리빙스턴 박물관을 견학한 적이 있다. 그때 박물관 입구에 리빙스턴이 사자에게 물려 오른 팔이 뜯기는 조각을 본 적이 있다. 매우 충격적이었지만 리빙스턴이 누군지 한 눈에 알게 해주었다. 그리고 박물관안으로 들어가서 여러가지를 보았는데 기억에 남는 것은 리빙스턴이 죽을 때 침대에 얼굴을 숙이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장면이었다. 그뒤 리빙스턴을 생각할 때마다 이 두 장면이 잊혀지지 않았다.그리고 언젠가 아프리카에 가면 그의 발자취를 찾아 보리라 막연히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 부른디 방문에서 뜻밖에 그의 발자취를 보았다. 곧 탕가니카 호수에서 리빙스턴과 스탠리가 만나는 장면이었다. 사람이 헤어지고 만나는 것은 일상적인 일이지만 두 사람의 만남은 당시 영국이나 미국에서 센세이셔널한 일이었다. 아프리카의 선교의 영웅이 몇 년간 생사를 모르고 있다가 그를 찾으러 나선 영국 출신의 미국 기자 스탠리가 탕가니카 호 근처에서 우연히 그를 만난 것이다. 두 사람은 서로의 만남을 기념하여 큰 바위에 이름을 새겼고 그 돌은 지금 산에서 내려와 호수가 비라보이는 곳에 세워져 있었다. 근처에 있는 젊은이는 두 사람이 만난 곳이 저 산이라고 산을 가르쳤다. 그 산은 탕가니카 호수 바로 옆에 있는 작은 야산이었다. 그 말이 맞다면  리빙스턴은 탕가니카 호를 타고 탐험을 계속하다가 잠시 산에서 쉬고 있었을 것이다. 

돌에는 이렇게 씌여져 있었다. 'LIVING STONE. STANLEY. 1871.11.25' . 그리고 옆에 세워진 간단한 안내문에는 그때 스탠리가 리빙스턴에게 했던 첫 마디가 

쓰여 있었다. 

'Dr. Livingston, I presume?'(혹시 리빙스턴 박사님이 아니신가요?). 지극히 평범한 이 인사에는 당시 개척과 선교의 영웅 리빙스턴에 대한 세계인의 사랑과 존경이 담겨 있었다.

리빙스턴이 아프리카에 온 것은 그의 38세, 그는 가족과 함께 아프리카에 와서 세번의 큰 탐험을 시도했다. 1차는 잠베이지 강을 중심으로, 2차는 나아사호를 중심으로, 그리고 3차는 나일강의 원류를 찾아 나선 탐험이었다. 그는 잠베이강과 빅토리아 호수의 존재를 처음으로 세계에 알렸고 빅토리아 호수와 나일강 탐험으로 아프리카가 그 태고의 신비를 벗고 선교의 대륙이 되도록 든든한 기초를 놓았다. 이미 그는 1.2차 탐험으로 충분히 영국의 영웅이 되어 있었다. 나이도 들고 몸도 약해져 그를 사랑하던 사람들은 그가 다시 아프리카에 가면 다시 돌아오지 못할 수 있다고 염려했다. 영국 여왕도 그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결국 아프리카로 돌아갔고 그것이 결국 그의 마지막이 되었다. 스탠리와의 만남은 이런 상황에서 이루어졌다. 당시 리빙스턴은 나일강의 원류를 탐색하고 있었는데 그것이 쉽지 않았다. 그 이유는 나중에 알려졌지만 나일강의 원류는 그 보다 위인 현재의 우간다에 있었기 때문이다. 길은 찾기 힘들고 말라리아, 이질 각종 질병은 그의 길을 막았다. 그 고난의 행군의 끝자락에서 그것도 우연히 스탠리를 만난 것이다.

지금도 캉카니카 호수는 선교 영웅의 역사를 뒤로 하고 말없이 흐르고 있었다. 부른디, 콩고, 잠비아, 탄자니아로 이어지는 676킬로의 세계에서 가장 긴 호수는 리빙스턴의목숨을 건 모험과 믿음의 역사를 기억하는지 낯선 아시아의 선교사앞에 출렁거리고 있었다. 

리빙스턴을 어떻게 평가하든 그가 19세기 서구 개척정신의 표상인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그 개척정신은 성경의 '땅을 정복하라'는 창조적 사명과 '땅끝까지 증인이 되라'는 복음적 사명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리빙스턴이 보여준 개척정신은 교회와 선교를 통해 하나님 나라의 일꾼으로 살려는 모든 사람에게 용기와 헌신의 중요성을 가르치고 있다. 한번은 한 젊은이가 리빙스턴이 밢았던 길을 가겠다며 그 길을 자세히 알려달라고 물어왔다. 그때 리빙스턴은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 '자기가 직접 길을 만들지 않고 다른 사람이 만든 길만 찾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그 길을 인도하지 않습니다'. 그렇다. 오늘날 사방으로 막혀 있는 목회와 선교와 인생의 길목에서 우리도 용기와 모험의 길을 가기 위해 스탠리처럼 리빙스턴을 만나야 한다. 나도 그 마음으로 '리빙스턴, 스탠리. 1871.11.25'이라고 새겨진 바위에  '리빙스턴. 이윤재. 2019.6.6'라고 마음으로 새기고 탕가니카호를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