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 올린 시간 : 2019년 07월 13일 11시 02분 32초

아프리카(36) 아프리카 교회

선교사에게 휴식이 있다는 것은 큰 축복이다. 아프리카에서 처음 맞는 휴식에 무엇을 할까 기도했다. 그리고기도후 평소부터 관심이 있었던 아프리카 교회의 뿌리를 찾아보기로 했다. 그것은 우리 신앙의 회복을 위해서 뿐아니라 아프리카 선교를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7.10(수) 캄팔라에 올라가 하룻밤을 자고 7.11(목)이집트행 비행기에 올랐다. 엔테베, 아디스 아바바, 젯다, 네 나라 공항을 지나 알렉산드리아에 도착한 시간은 다음날 오전 10시였다. 아직 오전인데도 날씨는 이미 40도를 넘어 서고 있었다. 이 뜨거운 여름에 가슴에 식지 않은 여름을 품고 살았던 신앙의 선배들의 삶을 추적하려고 하니 벌써부터 마음이 뜨거워졌다. 마중나온 김종원 선교사와 함께 열흘 동안 세계 교회에 감동을 주고 아프리가 교회의 개척자가 된 믿음의 사람 마가 요한과  성 안토니를 찾는 작은 여행을 떠나고자한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우리가 먼저 확인하고 확신할 일이 있었다. 그것은 아프리카 교회의 역사적 중요성이었다.참으로 세계교회는 아프리카 교회에 많은 빚을 졌다. 적어도 주후 50-500년의 교회의 역사는 곧 아프리카 교회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유럽의 교회가 그 공을 뺏기지 않으려고 질투심을 갖지 않는다면, 미국, 한국등의 교회가 선교적 우월주의를 내려놓고 보다 겸손해진다면 세계 교회의 오늘은 아프리가 없이 존재할 수 없었다는 것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먼저 성경을 보자. 네 명의 족장들중 이집트와 무관한 족장이 있는가?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은 모두 이집트와 관계를 맺고 살았다. 아프리카는 처음부터 성경의 운명이었다. 모세 시대 이집트에서의 400년 종살이와 홍해 탈출은 구약의 핵심적 사건이며 성서적 케리그마의 원형이다. 출애굽으로 아프리카와 관계가 끝난 것이 아니다. 이스라엘의 기후가 동(사막)과 서(지중해)사이에서 형성되었듯이 이스라엘 역사는 북(메소포타미아)과 남(이집트)와의 관계에서 형성되었다. 심지어 에레미아는 동족에게 붙잡혀 애굽에서 죽었다. 눈물의 선지자 에레미아의 순교의 피가 적신 곳은 이스라엘이 아니고 아프리카였다. 신약으로 와서 예수님이 헤롯을 피하여 이집트로 피난간 이야기가 나온다. 이 이야기는 단순한 피난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으로 오신 하나님이 이스라엘 땅을 밟기도 전에 먼저 아프리카 땅을 먼저 밟았다는 구속사적인 사건이다. 콥틱교회 전승은 예수님의 피난이  7년이상 계속되었으며 지금의 카이로를 거쳐 나일강 하류까지 이어지는 긴 지도를 들고 교인들로 하여금 성지순례를 하게 하고 있다. 행2장에 나오는 오순절의 주인공들중 특이한 사람들은 아프리카 사람들이다. 거기에 아프리카 지명이 4번이나 나온다. 빌립이 전도한 에디오피아 내시는 자기 나라를 세계 최초의 기독교 국가로 만들게 했고 아볼로는 알렉산드리아 출신으로 초대 교회의 지도자가 되었다.

성경의 인물들은 그 뒤에 나온 아프리카의 인물들의 씨앗이 되었다. 약 500년 동안 아프리카에서는 기라성같은 신학자, 교부, 목회자들이 나왔다. 그 인물들을 다 언급하는 것도 힘들 정도다. 그러나 중요한 인물 몆 사람을 꼽으라면 이렇다. 클레멘트(150),터툴리안(160), 오리겐(185), 시프리안(200) 같은 탁월 신학자와 수도원 운동의 창시자 성 안토니(251), 그를 세상 알리고 교회의 정통교리를 사수한 아타나시우스(295), 그리고 초대교회를 넘어 중세교회의 문을 연 성 어거스틴(354)이 아프리가 출신이다. 이외에도 공동체 수도원을 세운 파코미우스(318), 기독교 신학에 영향을 미친 유대인 필로, 신플라톤주의 플로티우스, 발렌티누스, 그리고 마니교 창설자 마니, 아다나시우스와 다툰 아리우스도 아프리카 출신이다.

아프리카 교회는 교회 역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아마 이 분야의 가장 좋은 책은 Thomas. C. Oden의 'How Africa Shaped  the Christian Mind' 일 것이다. 이 책에서 오덴은 아프리카 초기 교회는  지금의 세계 교회를 이룬 신앙의 seedbed(모판, 못자리)이었다면서 초기 아프리카 교회는 2천년 교회사에 7가지 큰 영향을 남겼다고 평가했다. 첫째, 대학의 출현, 역사상 대학은 주전 3세기에 세워진 프틀레미2세의 알렉산더 도서관에 그 뿌리로 부터 나왔다. 둘째, 성서해석의 영향, 알렉산드리아의 오리겐의 성서해석은 그 뒤 학자들에게 성서해석의 원리와 방법을 제공했다. 세째, 기독교 교리 확립, 터툴리안, 시프리안등의 노력과 아타나시우스의 싸움, 어거스틴의 저서등으로 교리가 확립되었다. 네째, 에큐메니칼 운동의 진행, 많은 이단과 싸우면서 니케아공회(325)를 거쳐 교회의 일치와 연합이 확립되었다. 다섯째, 수도원 운동, 안토니에 의해 세워진 은수자 수도원, 파코미우스에 의해 세워진 공동체 수도원은 그 후 바질(동방), 베네딕트(서방)를 통해 전 세계로 확산되었다. 일곱째, 변증적 기술, 알렉산드리아 교리학교를 통해 학문의 방법으로서 논리학, 변증,  웅변의 기술등이 교회와 신학, 설교등에 영향을 주었다.

이러한 아프리카 교회는 지금도 가장 큰 잠재력으로 세계교회의 성장을 이끌고 있다. 현재 아프리카 에는 전체 인구 8억 9천중 46%인 5억의 그리스도인이 있으며 2025년에는 그 수가 6억 3300이 될 것으로 믿어지고 있다.그러면 그 원동력은 무엇인인가? 유럽속담에 '우물을 마시는 자는 그 우물을 판 자를 기억하라'는 말이 있다. 아프리카 영성의 샘을 처음 판 사람은 누구인가? 우리가 다락방에서 만난 마가 요한을 찾아 길을 떠날 이유가 여기 있다..

아프리카(37) 마가를 찾아서

잃어버린 마가를 찾는 일은 중요하고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성경 인물들이 그렇듯이 마가의 생애도 대부분 비밀로 쌓여있다. 우리가 마가에 대하여 아는 것은 지극히 단편적이고 초보적이다.

그의 어머니가 최후의 만찬과 성령강림절에 다락방을 제공한 마리아라는 것, 적어도 두번은 이유없이 도망간 전력이 있다는 것(한번은 베홑이불을 벗어던지고, 한번은 바울과 함께 떠난 1차선교여행에서), 그리고 골4:11에 그가 바나바의 조카라는 것, 그가 바울을 떠난 후에 바나바를 따라 키푸로스에 갔다는것, 그리고 바울이 로마의 감옥에서 순교하기전 그를 데리고 오라고 말했다는 것(딤후4:11), 한가지 더 하면 베드로가 그를 '내 아들'이라고 불렀다는 것등이다(벧전5:13).

전체 이야기에는 분명히 흐름이 있는데 그 흐름 사이에는 많은 실종과 간극이 있어 그것들을 한 줄금으로 꿰어 맞추기는 쉽지 않다. 도대체 마가는 바울과 헤어진 후 어디를 간 것일까? 바나바와 함께 키푸로스로 간후 마가는 어디 있었는가? 베드로는 왜 그를 아들이라고 불렀는가? 바울과는 언제 화해했는가? 마가복음을 마가가 쓴 것이 맞다면 언제 어디에서 썼는가? 분명 마가는 예수님의 제자가 아니었는데 어떻게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그나마 아무 자료도 없이(4복음서중 마가복음이 가장 먼저 쓰여졌다면) 썻을까?

그런 마가가 어느날 아프리카의 알렉산드리아에 나타나 아프리카 최초의 교회를 세웠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그의 연대측정은 더 오리무중이 된다. 그가 알렉산드리아에 교회를 세웠다면 언제인가? 마가복음 쓰기 전인가? 후인가? 왜 알렉산드리아인가? 알렉산드리아와 마가는 어떤 관련이 있는가? 이 질문을 하던 어느날 나는 우연히 한 좋은 책을 만났다. 토마스 오덴이 쓴  'The African Memory of Mark'였다.단절된 마가의 연대기에 궁금해하던 나에게 이 책은 가뭄의 단비같은 책이었다. 이 책을 통해 마가는 나에게 성경에서 튀어나와  역사속에 존재한 실제 인물이 되었다. 그의 도움으로 나는 마가의 역사성을 보여주는 많은 초대교회의 순교집이 있는 것을 알았다. Synaxary와  The Martyrdom of Mark라는 책이 그것이고 Sawirus라는 콥틱교인이 쓴 책도 그의 숨겨진비밀을 푸는 중요한 자료였다. 또한 초대 교부들중에 마가의 활동과 순교에 대한 기록도 많다는 것도 알았다. Papias, Clement,  Eusebius, Justin Martyr같은 사람이었다.

초대교회의 순교집은 마가를 아프리카에서 태어나고 로마에서 마가복음을 쓰고 이집트에서 설교하고 알렉산드리아에 교회세우고 마지막에 거기서 순교하는 사람으로 일관되게 기록한다. Sawirus(987-1003 사이 사망)은 마가를 아프리카 펜타포리스(지금의 리비야)에서 태어난 디아스포라 레위지파 유대인으로서 그의 아버지는 아리스토불루스, 어머니는 마리아라고 한다. 또 다른 순교집에는 마가의 가정이 주후 20-30년경 에루살렘으로 이주해 성전 근처에 살았다고 하며 베드로의 아내가 마가의 아버지의 사촌이라고 밝혀 마가와 베드로의 관계를 이해하는 열쇠를 제공한다. 많은 자료는 따라서 마가가 예수님을 알게 된 통로는 베드로로서 그는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세례받았으며 마가복음도베드로의 예수님 회고와 목격담을 받아 적은 것이라고 말한다.교회사가 유세비우는 주후 300-325년에 유명한 '교회사'를 썼는데 이 책에서 앞서간 증인들의 말을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들은 이 마가가 이집트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한 최초의 사도라고 말한다'(교회사, 2.16.1). 이미 주후 4세기에는 마가와 아프리카의 관계가 일반적으로 정리되었슴을 말한다. 그리고 그가 아프리카에 온 연대도 말한다. 그때는 로마 황제 그라우디우스 제 3년이었으며 로마에서 베드로의 증언을 통해 마가복음을 저술했고 알렉산드리아에서 밧줄에 목을 매 끌려다니다 순교했다고 한다. 유세비우스의 증언이 맞다면 마가는 주후 43년에 알렉산드리아에 왔고 주후 55년에 마가복음을 썻으며 주후 68년 알렉산드리아에서 순교한 것이 된다. 다만 알렉산드리아에 온 때를 Sawirus는 주님 승천후 15년후라고 밝혀(대략 48년경) 유세비우스와는 차이를 보인다. 콥틱쿄회는 표준적으로 마가와 관련한 역사를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알렉산드라에서의 복음의 확산은 성 마가가 가는 곳마다 이방인의 다툼과 소요가 일어난 만큼 더 크게 발전했다. 마가는 사도로서 주교(아니아노스)와 세 사제와 일곱집사를 임명했다. 그가 알렉산드리아교회를 잠시 떠나 있었을 때 로마에서 베드로와 바울을 만났고 그들이 64년 순교할 때까지 그들과 함께 머물렀다. 다시 65년에 알렉산드리아에 돌아온 마가는 먼저 고향인 펜타폴리스를 방문하여 2년간 많은 기적과 함께 설교를 했고 마지막에 알렉산드리아에 돌아와 Baucalis(부클리) 근처에 교회를 세웠다'(콥틱정교회 자료)

어디서 어디까지가 진짜 마가의 역사일까? 모든 비밀은 하나님만 아신다는 것을 전제하며 마가가 마지막 열정을 쏟아 선교하고 순교한 알렉산드리아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프리카(38) 마가의 발자취

한 여름의 알렉산드리아는 그야말로 불덩어리였다. 김선교사에게 지금 몇도나 되느냐고 묻자 45도가 넘는다고 말해주었다. 어차피 이 날씨에 차근히 뭘 본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빠른 속도로 움직이기로 하고 먼저 바닷가로 향했다. 오랫만에 보는 지중해는 이곳에서 일어난 수많은 역사의 비밀을 아는듯 낯선 나그네를 조용히 환영해주었다.

잠시 그늘에서 마가를 묵상했다. 오늘의 주인공 마가는 어디에서 이곳에 왔을까? 마가의 탄생에 대한 많은 자료는 그가 지금의 리비아(구레네)에서 태어났다고 전한다. 유대인인 그가 왜 아프리카에 태어났을까? 그것은 유대인의 긴 디아스포라의 역사와 관련된다. 유대인은 주로 바벨론 포로가 있던 주전 6세기부터 낯선 나라로의 이주를 시작했다. 특히 주전 2세기 마카비 시대에는 불안한 정치적 상황때문에 더 많은 이주가 일어났다. 구레네(리비아)는 그 이주의 중심지중의 하나였다. 그들은 이곳에 정착하면서 특유의 신앙과 근면으로 농업과 상업을 통해 부를 이룩했다. 그러나 그들의 목표는 단지 먹고 사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조국에 대한 사랑과 함께 메시아에 대한 갈망을 강하게 가지고있었다.

마가가 태어난 환경은 대략 이러했다. 그의 본 이름은 '요한', '하나님은 친절하시다'는 히브리어다. 그러나 로마가 지배하던 시대에 보통 사람들이 그랬듯이 그에게는 '마가'라는 로마식의 이름이 덧붙여졌다. '망치'란 뜻이다. 그의 아버지는 아리스토포루스,어머니는 마리아, 마가는 비록 디아스포라였지만 부유한 가정에서 그나마 로마식 교육을 받고 자라났다. 그는 유대인으로서 성경뿐아니라 그 시대 젊은이들이 받았던 헬라어, 라틴어까지 공부했을 것이다. 그것은 훗날 마가를 쓰시려는 하나님의 크신 섭리의 일환이었다.

그런 마가에게 큰 전환점이 찾아왔다. 곧 아버지가 죽은 것과 함께 어머니와 함께 에루살렘으로 이주하게 된 것이다. 그 이유는 분명치 않다. 콥틱교회의 설명에 의하면 지역에 살던 야만족들이 나그네인 이스라엘 사람을 시기하여 자주 공격해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로 인해 많은 사람이 죽고 다쳤다. 지혜로운 마리아는 이것을 고국으로 돌아가는 계기로 삼은 것같다. 그러나 그의 이주는 더 중요한 목적이 있었다. 그것은 그가 에루살렘 시온산 지역에 자리를 잡았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그가 시온산 지역에 자리를 잡았다는 것은 그가 부유했다는 것과 함께 메시아에 대한 강한 갈망을 가졌다는 것을 알게 한다. 시온산에는 다윗의 무덤이 있고(지금도 있다) 역사적으로 메시아에 대한 유대인의 희망의 중심지였기 때문이다.

마가복음 14:51-52에 나타난 베 홋이불 사건은 마가가 예수님과 조우한 첫번째 사건이었다. 이 사건은 주인공이 상당히 부유했다는것과 그가 매우 겁이 많은 젊은이라는 두 가지 사실을 알게 한다. 이 짧은 사건은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훗날 마가의 인생에 준 영향은 크도도 중요했다. 마가가 예수님과 만난 중요한 접촉점은 확실히 베드로인 것 같다. 베드로는 아마도 예수님이 에루살렘에 올라오실 때 제자들과 함께 시온산에 자주 나타났을 것이고 그때마다 그의 인상적인 모습은 어린 마가의 눈에 들어왔을 것이다. 그가 전승대로 마가의 아버지 아리스토포루스의 사촌과 결혼했다면 마가는 베드로와 먼 친척이 된다. 아마도 그 인연으로 마리아는 시온산에 있던 그의 2층집(다락방)을 빌려주었을 것이고 그로 인해 마리아는 예수님이 그동안 찾던 메시아임을 더 확실히 알았을 것이다. 마가는 적극적인 성품의 베드로로 인해 예수님께 인도되었을 것이고 전승대로 70인 전도자중의 한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마가의 믿음은 예수님 부활과 성령강림을 지나면서 더욱 확고해졌을 것이다. 그는 자기 집인 다락방에 임한 성령을 체험하고 베드로의 우뢰와같을 설교를 직접 들었을 것이다. 이러한 베드로와의 인연으로 성령강림 이후의 마가는 아예 베드로를 따라 복음의 길을 걸었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많은 전승들은 베드로와 마가가 부활이후 많은 곳에서 말씀과 기적을 전했다고 보고한다. 이것이 베드로가 마가를 '내 아들'이라고 불렀던 배경이고 또한 마가가 훗날 마가복음을 쓰는 결정적인 자료를 받은 기회가 되었을 것이다. 때맞춰 바울이 세계선교를 계획하고 있을 때 마가가 동역자로 선택된 것은 바나바와 함께 베드로의 추천이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바울의 1차 전도 여행은 마가에게 성공적이지 않았다. 행15장에 나타난대로 마가의 무단이탈로 인해 바울의 마음은 상했고 이로 인해 큰 다툼이 일어나 견고했던 복음전선은 분열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위기를 기회로 바꾸시며 넘어진곳은 언제나 새로운 전환점을 만드신다. 마가는 바울을 떠난 후 어디에 있었을까? 이 부분이 마가의 삶을 재구성하는데 있어 가장 큰 어려운 지점이다. 결국 그가 알렉산드리아에 가서 아프리카 교회를 시작한 시점과 그가 바울을 떠나 있었던 기간은 어차피 시차가 있어 그가 어디에서 무엇을 했을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콥틱교회는 공식적으로 그가 아프리카에 온 것을 주후 55년으로 잡고 알렉산드리아는 60년 경에 왔다고 본다.  오덴은 앞의 책에서 마가가 처음 아프리카에 온 것은 주후 61-62년이고(리비야 고향), 알렉산드리아에 교회를 세운 것은 주후 61-63년이라고 한다. 교회사가들의 일치된 연대에 의하면 바울의 1차 전도여행은 주후 47-48년이고 2차 전도여행은 49-51년이었다. 그래서 만일 마가가 2차 전도여행때 바울과 헤여졌다면 그것은 주후 49년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콥틱교회의 연대라고 해도 6년의 차이가 나고 오덴의 계산대로 하면 12년의 차이가 난다.

우리는 이 기간을 어떻게 볼 것인가? 그것은 마가에게는 시련의 기간이었지만 하나님에게는 '크고 비밀한 일'을 시작하는 출발의 시간이었다. 에루살렘에서 넘어지고 선교의 현장에서 또 넘어진 마가,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넘어지게 내버려두지 않았다. 하나님의 사람은 넘어지나 아주 엎드려지지 않음은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기 때문이다. 이 기간의 마가는 실패를 딛고 일어나는 회복의 시기였다. 그는 자신의 실패를 인정했지만 하나님은 실패하지 않는다고 믿었다.

이 기간에 그는 베드로의 수종으로 다시 돌아와 연로한 베드로를 도왔을 것이다. 이 기간에 거의 확실한 것은 베드로와 함께 로마에 있으면서 마가복음을 기록했을 것이다. 그때가 대략 주후 55년 경이 아니었을까? 그동안 주로 베드로를 통해 들은 '하나님의 아들의 복음'을 그는 시련과 고난을 통해 성숙해진 믿음의 고백으로 기록했을 것이다. 그리고 또 한편 베드로의 조언에 따라 바울과 화해했을 것이다. 골4:10에 그 단서가 나타난다. '나와 함께 갇힌 아리스다고와 바나바의 생질 마가와 (이 마가에 대하여 너희가 명을 받았으매 그가 이르거든 영접하라)'. 이때가 주후 60-61년, 바울은 이때 풍랑치는 지중해를 건너 로마의 감옥에 수감된 뒤였다. 마가가 이때 바울과 함께 수감되었다는 것은 두 사람이 복음안에서 서로 화해했으며 화해를 넘어 복음의 동역자로 회복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 마가는 그의 생의 대 전환점을 맞이한다. 바울과 떨어져 있었던 수년간 그는 강하게 연단되었고 견고하게 되었다. 이름 그대로 그는 '망치'가 되어 있었다. 연약하기만 했던 젊은 마가가 아니었다. 마귀의 견고한 진을 부수는 강력한 영적 망치, 하나님은 성숙해진 마가를 보며 또한 다른 곳을 보고 계셨다. 아프리카였다. 바울과 베드로를 통해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복음이 아시아를 거쳐 유럽에 확실히 자리를 잡았다. 이제 하나님은 또 다른 복음의 불모지를 향하여 또 다른 계획을 실행에 옮길 준비를 하고 계셨다. Sawirus에 의하면 그것은 베드로를 통해 선포되었다. 로마에서 함께 복음을 전하고 있던 어느날 마가에게 베드로가 말했다. '너는 이제 가라. 아프리카로. 나를 로마로 보낸 하나님이 너를 아프리카로 보내신다'. 그곳이 지금 내가 서 있는 알렉산드리아다.

이제 모든 준비는 끝났다. 마가는 이제 저 바다를 건너 아프리카로 올 것이다. 출렁거리는 바다를 보며 나는 마가의 땀과 피가 배인 그의 흔적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아프리카(39) 알렉산드리아의 마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아프리카로 떠난 마가가 처음 도착한 곳은 알렉산드리아가 아니었다. 그가 처음 발걸음을 멈춘 곳은 그의 고향인 구레네(지금의 리비아)였다. 이미 구레네에는 그리스도를 믿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부르기야와 밤비리야, 애굽과 구레네에 가까운 리비야 여러 지방에 사는 사람과'(행2:10).' 사도행전의 성령강림에 참여했던 많은 구레네인들이 여기 저기서 복음을 전하고 있었다. 그들은 에루살렘 시온산 마가의 집(다락방)에 임한 성령을 받은 사람들이었다. 마가의 복음전도로 구레네에는 많은 기적과 역사가 나타났다.

그러나 하나님이 아프리카 구원을 위하여 계획하신 곳은 알렉산드리아였다. 알렉산드리아는 당시 로마를 제외하고 가장 큰 도시였고 로마 문화와 종교 그리고 학문의 중심지였다.행18장에도 알렉산드리아를 학문의 중심 도시라고 말하고 있다. 그가 알렉산드리아에 내려 첫발을 디딘 곳은 파로스(Pharos) 등대였다. 고대 사회의 불가사의중 하나로 꼽히는 이 등대는 프톨레미 시대 이집트의 자랑거리였다. 이 등대를 찾기 위해 바닷가로 향했다. 그러나 등대는 없었고 그 자리에 해양박물관이 세워져 있었다. 만일 그 자리에 등대가 있었다면 100미터의 이상의 높이에서 비취는 밝은 빛과 우아한 건축미로 마가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훗날 이곳은 마가의 첫 교회터로 기념되었다.

주목할 것은 마가는 교회를 세우기 전에 먼저 전도를 했다는 것이다. 전승에 의하면 마가가 등대문을 지날때 돌에 걸려 넘어졌다고 한다. 그때 그의 신발이 찢어져서 구두수선소를 찾았는데 수선공이 바늘을 잘못 꿰어 자기 손을 찌르게 되었다. 그때 수선공이 무의식적으로 'Heis ho Theos' 라고 말했는 데 이 말은 '하나님은 한분이다(God is one)'라는 뜻이었다. 다신교 사회인 알렉산드리아에서 하나님이 한 분이라고 말한 사람을 본 마가는 깜짝 놀랐다. 그래서 어떻게 하나님이 한 분인 것을 알았느냐고 물었다. 그는 그렇게 믿을 뿐 설명은 못하겠다고 하자 마가는 하나님에 대해 설명하고 마지막에 예수님을 전했다. 그가 훗날 마가의 후계자가 된 아니아누스(Anianus)다.

전도로 시작한 교회는 점점 자라기 시작했다. 교회의 성장과 함께 그는 훈련된 사람들을 교회 지도자로 세웠다. 아니아누스를 비숍으로 세 명의 사제와 일곱 명의 집사를 세웠다. 마가의 중요한 공헌중의 하나는 성도를 온전케 하기 위해 학교를 세웠다는 것이다. 마가는 사람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훈련할 목적으로 학교를 세웠지만 훗날 이 학교는 오리겐(185)을 통해 알렉산드리아 교리학교가 되었다. 그리고 이 교리학교를 통해 시프리안, 아타나시우스등 수많은 사람이 배출되고 그들을 통해 이단과의 싸움에서 승리하며 옳바른 교리로 교회를 세워나가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오늘날의 모든 신학교도 결국 그  뿌리에서 나왔을 것이다.

그러나 알렉산드리아 교회와는 달리 당시 로마의상황은 최악으로 치닫고있었다. 이미 감옥에 갇힌 베드로와 바울은 순교의 외길을 향하여 남은 경주를 달리고 있었고 성도들 역시 그들을 따를 각오로 마지막 선한 싸움을 싸우고 있었다. 그들을 위로하고 함께 하는 일은 마가 개인의 일일뿐 아니라 전체 교회를 위한 일이었다. 옥중의 바울도 그의 마지막 편지에서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려오라'(딤후4:11)고 간절히 디모데에게 부탁하고 있었다. 마가는 이에 에배소에 있는 디모데와 함께 옥중의 바울을 방문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베드로와 바울은 끝내 주후 64년경 네로에 의해 순교당하고 말았다. 베드로가 십자가를 거꾸로 지고 죽어갈 때, 그리고 바울의 목이 피를 튀기며 베어질 때 마가는 어디 있었는가? 나는 확실히 마가가 그 자리에 있었다고 믿는다. 이미 여러 자료들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두 사도의 순교를 목격하며 마가는 무엇을 생각했을까? 그들로 부터 받은 많은 사랑과 배움이 주마등처럼 스쳐갔을 것이다. 평생 그를 가르쳤던 교회의 스승들은 이제 마지막으로 그리스도 제자의 삶이 무엇인지 온 몸으로 가르치고 있었다. 제자는 죽음으로 살며, 또 죽어야 산다는 것을 그들은 몸소 가르치고 있었다.

마가가 다시 아프리카로 다시 돌아온 것은 주후 65년이었을 것이다.그가 두 사도의 순교의 영상을 가슴에 간직한 채 알렉산드리아에 돌아왔을 때 교회는 왕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성도들은 은혜안에 굳게 섰고 교인들의 수는 배나 증가하고 있었다. 이에 마가는 정식으로 교회를 세웠다. 이 교회를 그는 'Cattle Pasture' (Boukolou)라고 불렀는 데 우리 말로는 '목양교회'쯤 될 것 같다.

이렇게 교회가 성장해가자 주변의 우상숭배자들부터 반발이 시작되었다. 우상숭배 금지는 우상을 생업으로 삼은 자들의 생존을 위협한다고 그들은 생각했고 이에 동조한 세력들이 연합하여 마가와 교회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Sawirus는 그때의 상황을 이렇게 글로 남겼다.

'불신자들은 마가가 돌아왔다는 말을 듣고 그리스도인들이 그동안 했던 일, 병든 자를 고치고, 귀신을 좇아내며, 눈먼 자의 눈을 뜨게 한 일에 대해 혐오와 격분을 토로했다. 그들은 마가를 찾아다니며 그를 죽이려 했다. 그들은 마가에 대해 이를 갈며 성전에서, 우상숭배 장소에서 이렇게 소리쳤다. '누가 이 악한 마술쟁이를 보았느냐? 왜 그를 죽이지 않고 살려주는가?'

결국 마가는 그들의 Serapeum 신전에서 붙잡히고 말았다. 때는 유대인의 유월절이었고, 기독교인들은 부활을 앞둔 수난절이었다.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여 주의 만찬을 들고 있을 때 성난 군중들이 몰려왔다. 그들이 마가를 사로잡았을 때 군중들이 소리쳤다. '그 머리에 밧줄을 매고 도살장으로 끌고 가라'. 그들은 '목양'의 뜻을 가진 Boukurou를 비슷한 발음의 Boukuroi(도살장)으로 불러 교회를 도살장으로 바꿔 부른 것이다.드디어 그들은 마가의 목에 밧줄을 맨뒤 마차에 묶어 달리기 시작했다. 마가의 몸은 순식간에 피로 물들었고 온 몸은 부서지고 찟겨졌다. 극심한 고통끝에 마가의 생명은 거의 끊어진 상태였다. 폭도들은 그가 죽은지 알고 어두운 지하 감옥에 내팽개쳐 놓았다. 그러나 그 밤에 천사가 나타나 그를 위로하고 회복시키자 다음날 폭도들은 또 무자비한 고문을 시작했다. 드디어 육신의 마지막 순간,  그의 육신적인 생명은 거기까지였다. 더 이상 버틸 수 없다고 생각한 마가는 기도하기 시작했다. Sawirus가 쓴 마지막 기도의 모습이다.

'주여, 감사하나이다. 나를 당신의 선한 손에 맡기나이다' 그가 이 말을 하고 기절하자 하늘에서 소리가 들렸다. '복된 마가여, 전도자요 나의 택한 마가여 복이 있으라'. 이 음성을 듣고 마가는 다시 깨어 있는 힘을 다해 소리쳤다. '나의 주 예수 그리스도여 감사하나이다.나를 당신의 이름을 위해 고통당하는 자로 삼으시니' 그리고 마가는 눈을 감았다. 그때가 주후 68년 4월 26일, 부활주일을 앞둔 토요일이었다.

현재의 알렉산드리아 마가 교회는 순교한 마가의 시신을 모신 교회다. 찟겨진 마가의 시신은 이곳에 모셔졌고 사람들은 순교자옆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이 교회는 오랜동안 콥틱교회의 교황청같은 역할을 했고 지금도 콥틱교회의 중요한 교회다. 나아가 이 교회는 아프리카의 첫번째 교회요 훗날 모든 아프리카 자녀들을 낳은 어머니 교회다.더운 날씨에 교회당안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의 시신의 놓여 있다는 지하실로 내려가 보았다. 계단을 내려가며 교회의 생명은 여전히 순교에 있고 독재자는 당대를 다스리지만 순교자는 영원을 다스린다는 말을 다시 한번 기억했다. 마가 요한, 부요한 마리아의 유약한 아들이 여기까지 오다니. 그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그를 강한 망치처럼 만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였다.  계단을 올라오면서 아프리카에 이런 전도자, 순교자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방명록에 다음과 같이 쓰고 나왔다.

연약한 자를 버리지 않고 강하게 하신 하나님
실패한 자를 버리지 않고
다시 시작하게 하신 하나님
마가 요한을 기억하는 모든 자들에게
강하게 하시는 은혜를
다시 시작하게 하시는 은혜를
그리고 마침내 승리하게 되는 은혜를 주옵소서
아프리카가 그렇게 되게 하시고
저도 그렇게 되게 하옵소서

마가와 함께
마가처럼

아멘

아프리카(40) 안토니 수도원

안토니 수도원까지 오는 길은 참으로 멀고 험했다. 카이로에서 아침 일찍 출발해 기대했던 홍해길로 가는가 했더니 이집트 운전수가 새로 난 길로 달려 수도원은 생각보다 빨리 도착했다. 보통 5시간 이상 걸리는 길을 오늘은 3시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김선교사는 좋아했다. 그래서 시간이 많이 걸렸다는 나의 말은 시계상의 시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지리적 공간으로서의 수도원은 생각보다 가까웠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올 수 있었다. 문제는 내면의 수도원이었다.

나는 이스라엘에 살면서 유다광야에 있는 수도원을 여러번 볼 기회가 있었다. 여리고 근처의 '성 죠지 수도원', 베들레헴 근처의 '마르 사바 수도원'이 대표적이었다. 이 수도원들은 비잔틴시대(대략 주후 350-650)의 수도원으로 평소 수도원을 잘 몰랐던 나에게 수도원은 이상하고 이단같은 존재였다. 그러나 자주 방문하면서 그들도 우리와 다르지 않으며 어쩌면 그들의 삶이 세속에 묻혀 사는 현대교회에 새로운 도전이 될 수 있슴을 생각하며 점점 긍정적이 되어갔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미국에서의 박사논문을 '비잔틴 시대의 유다광야 수도원'을 쓸 수 있었던 것은 크게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박사논문이 그 이후의 나에게 계속 좋았던 것은 아니다. 힘들게 논문은 썼으나 더 힘든 것은 내가 수도원 정신대로 못산다는 것이었다. 나는 어느 순간 얼치기 수도원 전문가가 되어 있었다. 어쩌다 수도원에 대하여 부정적인 사람을 만나면 소위 수도원주의와 수도원정신은 다르다면서 긴 수도원 역사를 열변했고 무너져가는 현대교회가 회복해야 할 것은 수도원 정신이라고 외쳤다. 그러나 실제로 내가 수도원  정신으로 살지 못한 것은 하나님도 알고 나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늘 언젠가는 제대로 된 수도원으로 돌아가야지 생각하며 살았는데 이번에 드디어 기회가 온 것이다.

그런데 수도원에 도착하기도 전에 나는 곤란에 처했다. 엔테베에 출발, 아디스 아바바를 지나 생전 이름도 들어본적도 없는 젯다(젯다는 사우디 아라비아에 있었다)를 거쳐 알렉산드리아에 도착했는데 공항에 짐이 없었던 것이다. 처음부터 그것이 마음에 걸리긴 했다. 여러 공항을 거치면서 짐이 제대로 갈까? 같은 시간에 한국으로 간 아내의 짐에 섞여가지 않을까? 그래서 일부러 확인도 여러번 했다. 그런데도 짐이 없었다. 이제나 저제나 하고 기다려도 짐은 없었고 공항밖에서 김선교사는 기다리고... 당황스런 시간을 지난 채 결국 짐은 못찾고 털렁거리고 공항을 나왔다.

왜 이번에 나에게 짐이 중요한가? 나는 항상 외국을 갈 때마다 아내와 함께 다녔다. 그런데 이번에는 혼자 가는 데다 목적지가 수도원이라 나름대로 준비를 잘해야 했다. 속옷, 겉옷, 수건은 물론 비상약에 모기향, 먹는 것이 시원찮을테니 과자, 땅콩까지, 내 가방은 그야말로 거의 완벽한 보따리 장사였다. 평소 완전주의자인 아내는 거의 생명을 걸고 준비했고 수학여행가는  초등학생 딸에게 하듯 적어도 나에게 다섯번 이상은 자세한 설명과 주의를 주었다. 그런데 바로 그 가방이 없어진 것이다. 문득 내가 왜 수도원에 일주일이나 예약했는지 원망스러웠다. 이번에 수도원에 가겠다고 했더니 선교사들이 다 말렸다. '목사님, 한국사람으로 가장 긴 게 이틀이었습니다. 식사도 안좋고 날씨도 더우시 오래 있지 마세요' 나는 그들의 경험에서 나오는 말을 들었어야 했다. 결국 나는 가방도 없이 한번도 가보지 못한 낯선 수도원으로 발걸음을 옮겨야 했다. 하도 내가 염려하자 김선교사가 한 마디 했다. '목사님,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이제 가방은 잊어 버리세요. 그래야 수도원 생활이 됩니다'. 진짜 수도사는 내가 아니라 김선교사였다. 수도원 근처에 살아서 그런가? 그의 말이 예언처럼 내게 다가왔다.

수도원에 도착하자마자드디어 올 것이 왔다. 날씨는 찌는듯 더운데 제대로 된 옷 한벌이 없었다. 그나마 친절한 김선교사가 이것 저것 챙겨주지 않았으면 나는 사막의 수도자는 그만두고 사막의 거지가 될 뻔 했다. 그러나 내게는 아내가 준비한 맞춤형 준비물이 필요했다. 수도원에 도착하자 방을 배치받았는데 여러 사람들이 함께 쓰는 방이었다. 다행히 사람이 없어 나 혼자 쓰게 되었는데 책상도 의자도 없이 그저 덜렁 침대 하나만 있었다. 옷 벗을 곳도, 씻을 곳도 마땅치 않았다. 무더위속에 하루에 속옷을 여러번 갈아 입어야 하는데 갈아 입을 옷은 단 두벌, 심지어 지루하고 긴 시간에 읽을 책 한 권도 없었다. 정말 내가 이러자고 수도원에 왔나 후회마저 들었다.

수도원에 도착해서 먼저이곳 저곳을 돌아보았다. 성 안토니가 이곳에 오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쳤다. 부모가 물려준 그 많은 재산(우리 계산으로 약 35만평 땅)을 모두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고 처음에는 외딴 곳에, 다음엔 성채에, 그리고 마지막에 이곳 사막 한 복판 '콜짐'까지 들어왔다. 그러나 실제로는 여기에서 2킬로 떨어진 산속에 있는 동굴에서 43년을 살았다. 그의 수도적 삶은 공간적 이동으로 부터 시작했던 것이 분명했다. 그가 걸었을 수도원 뜰을 걸어 보았다. 더운 낮에도 걸어보고 시원한 바람에도 걸어보았다. 밤에 달을 보고 수도원 마당을 걸으면 얼마나 시원한지 모른다. 사막에서 불어오는 바람으로 뼈속같이 시원하다. 그가 이곳에 정착한 것은 그가 바위에서 나오는 생수를 발견했기 때문이다(그 생수는 지금도 나온다). 공간적으로 말하면 그는 참 멀리 들어왔고 그리고 잘 들어왔다. 그러나 우리는 얼마나 깊히 들어가야 거룩해질까? 성 안토니가 깊은 사막으로 들어온 것은 맞지만 그가 깊은 사막으로 들어왔기 때문에 거룩해졌을까? 깊은 곳으로 들어가야 수도원이라면 우리는 어디까지 가야 할까? 문득 그가 했던 유명한 말이 떠올랐다.

'그리스 사람은 교육받기 위해 바다를 건넌다. 그러나 우리는 배우기 위해 집을 떠날 필요가 없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안에 있기 때문이다'

안토니는 세상을 떠나 그렇게 멀리 갔으면서 정작 배우기 위해서 멀리 가지는 말라고 조언한다. 이 말을 어떻게 봐야 할까? 비슷한 이야기는 또 있다. '사막교부의 말씀'(The Sayings of the Desert Fathers)에 나오는 이야기다.

He said also, "Just as fish die if they stay too long out of the water, so do the monks who linger outside their cells or pass their time with men of the world lose the strength of their inner peace. So like a fish going towards the sea, we must hurry to reach our cell,  for fear that if we delay outside we will lose our inner watchfulness'.

안토니는 물고기가 물에 사는 것처럼 수도자는 반드시 수실(기도실)에 있어야 하고, 만일 수실을 떠나 밖에서 지체하면 내적 평안과 내적 경계심을 잃어버릴 것이라고 말한다. 여기에 '내적 평화(inner peace)'나 '내적 경계심'(inner watchfulness)이란 말이 나온다(의미를 분명하게 하기 위해 영어로 썼다). 안토니가 수도를 위해 깊은 사막으로 들어온 것은 맞지만 수도원 정신의 핵심이 '외적' 혹은 '공간적 이동'에 있는 것은 아니라고 번역하면 성급한 것일까?

그렇다. '사막교부', '사막수도원'에서 '사막'을 공간적으로만 해석해서는 안될 이유가 여기 있다. 토마스 머튼(Thomas Merton)은 이것을 '내적 이탈'(inner denunciation)이라고 불렀다.

'사막은 공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적 항거다. 그것은 우리가 지금까지 의지했던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항복한다는 뜻이다. 사막에 산다는 것은 사람없이 산다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으로만 산다는 것이다. 사람이 싫어서 사막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과 살기 위해 사막으로 간다. 그런 점에 사막은 도피가 아니라 거룩한 항거다. 엄밀히 말해 우리가 사막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사막을 통해 하나님께 가는 것이다 (not go to the desert, but go through the desert to God)'

마지막 말이 핵심이다. 사막은 목적지가 아니라 경유지라는 말이다. 사람에 따라 사막은 다를 수 있다. 안토니처럼 눈에 보이는 이집트 사막일 수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고난, 질병, 실패일 수 있다. 그러나 어떤 경우든 사막은 통과하는 곳이지 사는 곳이 아니다. 여기서 사막은 한계상황일 수 있고 우리의 무능과 항복일 수 있다. 항복이 없는 사람이 가는 곳은 안토니 수도원이 아니라 사하라 사막이다.

다음날 김선교사에게 연락이 왔다. 공항에서 짐을 찾았다고, 그래서 찾으러 간다고(그는 또 4시간을 걸려 짐을 찾아왔다). 그리고 물었다. 짐을 어떻게 하겠느냐고. 내가 대답했다. '선교사님, 그냥 집에 갔다 두세요. 가져 오지 마세요'.

짐이 없어 불편하지만
짐보다 하나님을 더 의지할 수 있다면
짐이 없어 불편해도
단순하게 사는 기쁨을 맛볼 수 있다면
짐이 없어 슬퍼하기 보다 하나님이 없어 더 슬퍼할 수 있다면
사막에 살아도 사막에  살지 않고
사막을 통하여 하나님께 갈 수 있다면
...
그곳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수도원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