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 올린 시간 : 2019년 08월 27일 11시 38분 53초

아프리카(49) 아프리카 개 빙키 이야기

선교사가 개에 대하여 말하는 것이 마땅한지 한참을 망설였다. 그러나 빙키가 준 은혜와 감동을 생각하며 그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나는 어릴 때를 제외하곤 별로 개를 키워본 적이 없다. 개가 싫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좋아하지도 않았다. 굳이 말한다면 조금 멀리 하는 편이었다. 그런데 내가 아프리카에 도착해서 처음으로 쿠미에 짐을 풀었을 때 가장 먼저 맞이해 준 것은 뜻밖에 빙키라는 개였다. 한참 짐을 정리하고 있는데 밖에서 컹컹 소리가 났다. 나가보니 집채만한 개가 우리를 향해 짖고 있었다. 깜짝 놀란 아내가 얼른 문을 닫았는데 문틈으로 보이는 개는 우리의 진도개 마냥 그렇게 품위가 있는 종자가 아니었다. 털은 뽀족 뽀족 솟고 키는 털석 커서 무섭기 까지 한 개였다. 그런 개가 우리를 향해 쉴새없이 짖어 대고 코를 벌름거리며 냄새까지 맡고 있었으니 환영치고는 조금 무서운 환영인 셈이었다.

나중에 보니 옆집 선교사가 돌보고 있던 개였는데 그에게는 사연이 있었다. 그는 바로 내가 이사한 집의 전 주인이 키우던 개였다. 그런데 주인이 캄팔라로 이사갈 때 아파트로 가게 되자 데리고 갈 수 없어 옆집 선교사에게 주고 간 것이었다. 그런데 주인이 이사간지 몇 달 만에 누가 자기가 살던 집에 이사오자 혹시 주인이 다시 왔나 반가워서 달려왔다가 아닌 것을 알고 짖어댄 것이었다. 그 뒤로 이 개는 우리 집 주변을 자주 서성거렸다.

그러다가 빙키를 키우던 선교사가 누구에게 어린 개 두 마리를 선물로 받아 같이 키우게 되었다. 주인이 어린 동생들에게 더 신경을 쓰자 빙키는 갑자기 사나워졌다. 빙키는 어린 개들에게 아주 위협적인 존재가 되었다. 선교사의 고민이 깊어갈 무렵 마침 신학교 기숙사가 열리고 학생들이 들어오게 되었다. 빙키에게는 새 환경이 필요했다. 선교사와 상의하여 빙키를 기숙사로 옮겼다. 빙키는 얼마동안 잘 적응했다. 기숙사도 잘 지켰고 신학생들로부터도 사랑을 받았다.

그런 어느날 밤, 방에서 카톡이 안터져 밖으로 나갔는데 문앞에서 무엇이 내 발길에 채였다. 깜짝 놀라 불을 켜보니 빙키가 문앞에서 쭈그리고 자고 있었다. 나는 너무 놀랐다. 왜냐하면 기숙사와 우리 집은 거의 십리 이상은 되는 거리고 그 나마 그 거리는 전기도 없는 깜깜한 길이기 때문이다. 도대체 빙키는 그 먼 거리를 어떻게 혼자 왔을까? 누가 데리고 오지 않는 한 절대 혼자 올 수 없는 거리였다. 그런데 빙키는 그 길을 혼자 걸어 옛날 주인의 집까지 온 것이었다. 나는 얼른 잠자는 아내를 깨웠다. 아내도 빙키를 보자 깜짝 놀랐다. 우리는 그저 한동안 멍하게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 말 못하는 미물이 옛 주인을 찾아 십리 밤길을 걸어왔다는 사실에 우리는 큰 충격을 받았다. 아내는 죽을 쑤었고 우리는 빙키를 먹였다.

그런 일이 있은 후 신학생중 샘이라는 학생이 우연히 자녀들을 데리고 기숙사에 왔다가 빙키를 보았다. 그들은 아빠에게 자기들이 빙키를 키우고 싶다고 말했다. 샘과 그 가정을 잘 아는 나는 그들이 빙키를 잘 키울 것을 믿고 허락했다. 그리고 지난 7월, 방학이 시작되자 샘과 그 가족은 빙키를 데려갔다. 그리고 방학이 되자 나도 길을 떠났다. 이집트로 남수단으로 그리고 캄팔라로 5주동안 쿠미를 떠나 있는 동안 나는 까마득하게 빙키를 잊고 있었다. 그런데 5주만에 돌아온 어느날 이웃중의 한분이 나에게 말했다. '제가 잘못 봤나 모르지만 빙키를 몇 번 본 것 같아요. 선교사님 댁 주변을 돌고 하루인가 이틀인가 자고 갔어요'. 나는 깜짝 놀랐지만 믿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샘의 집은 기숙사보다 훨씬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번 8.19(월)에 가을학기가 시작되었다. 오랫만에 샘을 만난 나는 빙키의 안부를 물었다. '빙키 잘 있어요?'. 샘은 잘 있다고 말하면서 한 마디 더 했다. '그런데 박사님, 요놈이 가끔 집을 나가요. 지난 8월 초엔가에는 3일간이나 집을 나갔다 왔어요. 다행히 들어왔는데 아이들이 난리가 났어요'. 그 말을 듣고 정말 난리가 난 것은 나였다. 그렇다면 빙키가 정말 우리 집에 왔었다는 것인가? 샘의 집은 우리 집으로 부터 적어도 15킬로는 떨어져 있었다. 그 먼 거리를 빙키가 혼자 찾아왔다는 것인가? 떠나간 주인이 뭐라고 빙키는 그렇게 옛 주인을 못 잊고 그 먼 거리를 찾아 왔을까?

충성스런 개는 한국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누가 이렇게 주인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었을까? 문득 이사야의 말씀이 생각나 성경을 펼쳤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그 주인의 구유를 알건만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사1:3). 성전 예언자 이사야는 민감한 영적 감수성으로 이스라엘을 향한 검은 그림자가 북쪽에서 다가오고 있는 것을 보았다. 패망의 이유는 백성들이 하나님께 돌이오지 않는 것이었다. 그들이 적어도 소나 나귀만큼이라도 주인에게 돌아 올 수 있다면 패망은 피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돌아오라. 돌아오라'(사55:7)고 외쳤다. 그래서 '돌아오라' (테슈바)는 성경의 가장 큰 주제중의 하나다. 우리는 구원을 위해 돌아와야 할 뿐 아니라 매일 하나님께 돌아와야 한다.

영국의 존 스토트가 뜻밖에 남긴 선물같은 책이 있다. '새, 우리들의 선생님'이다. 신학자가 새에 관심을 갖는 것도 놀랍지만  그가 열 한 종류의 새를 가지고 성경을 푸는 것은 더 놀라운 일이다. 그중에서 황새는 회개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스라엘은 예나 지금이나 새가 많다. 그 이유는 남과 북, 동과 서로 이어지는 철새의 주요 통로지이기 때문이다. 가을이 되면 터키와 유럽에 살던 철새는 나일강을 따라 따뜻한 아프리카로 가고 봄이 되면 예외없이 북쪽으로 날아 유럽이나 아시아로 날아간다. 거의 50만 마리의 황새들이 길고 붉은 다리를 뒤로 쭉 뻗고 약 13,000킬로를 날아 그들의 보금자리로 날아가는 것은 이스라엘에서 볼 수 있는 장관중의 하나다. 지리상 갈릴리는 그 중간 휴식처중의 하나다. 주님이 '공중의 새를 보라'(마6:26)한 새가 아마도 그런 새일 것이다.

이렇게 변함없이 자기 집을 찾아 돌아가는 새를 본 에레미아가 말했다. '공중의 학은 그 정한 시기를 알고 반구와 제비와 두루미는 그 올 때를 지키거늘 내 백성은 여호아의 구례를 알지 못하는도다'(렘8:6-7). 멸망의 먹구름이 코앞에 다가온 시대, 에레미아는 날아가는 황새(학)을 통해 아직도 돌아오지 않은 백성들을 보았다. 공중의 학은 그 시기를 알고 보금자리로 돌아가고 비들기와 제비와 두루미도 제 때 자기 집을 찾아 돌아가는데 내 백성은 돌아오지 않고 있구나. 눈물의 예언자 에레미아는 그렇게 말하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

그렇다.
지금 우리는 돌아가는가?
자기를 두고 떠난 주인을 찾아 빙키는 그 어둔 밤을 헤치고 먼 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 오는데

소도
나귀도
황새도
비들기도
제비도
제 집을 찾아 돌아오는데

우리는 우리 영혼의 주인인 하나님께 돌아오는가? 나도 돌아오고 남도 돌아오게 하는가? 북한은 아프리카는 그리고 세계는? 빙키는 무딘 나를 깨우친 아프리카의 또 하나의 스승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