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 올린 시간 : 2019년 10월 26일 09시 58분 02초

아프리카(57) Christ in everything

2019.10.20

지난 토요일(10.19) 그동안 준비한 목회자 세미나(Pastor Revival Conference)를 은혜중 마쳤다. 당초 예상했던 것 이상이었다. 목회자(사모)만 348명, 신학생, 일반학생을 포함해 400명 가까이 참여했다. 쿠미대학 역사상 그렇게 많은 목회자가 한꺼번에 모인 것은 처음이라고 한다. 구름 한 점없는 맑은 날에 여기 저기서 목회자와 사모들, 신학생들과 봉사자들의 웃음소리가 하루종일 끊어지지 않은 것을 보며 그간의 작은 고생이 보상받는 느낌이었다.

찬양이 시작된 오전 9시만 해도 사람들은 많이 없었다. 아프리카 특유의 느린 특성이 그대로 나타났다. 그러나 강의가 시작되자 어디서 나타났는지 예배당은 사람들의 열기로 가득했다. 한국에서 목회자 세미나 할 때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몇 천명이 모이는 한국의 눈으로 보면 분명 대단한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곳 사정을 알고 나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곳 사람들은 대부분 걸어 다니거나 잘해야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 오토바이('보다'라고 한다)를 타고 다닌 사람들은 아주 괜찮은 편에 속한다. 지역마다 족속과 언어가 다르기 때문에 평생 다른 지역을 가보지 못한 사람이 대부분이다. 방송이나 신문을 보고 오는 것도 아니다. 대부분 지인이나 친구의 연락을 받고 먼지나는 황토길을 따라 걸어 온 것이다.

이번 세미나의 주제는 'Revive the Church' 였다. 크게 세 강의와 세번의 찬양, 기도 집회로 이루어 졌다. 나는 두번에 걸쳐 목회자의 삶과 사역에 촛점을 맞췄고 사모를 대상으로는 선교사 사모중 가정사역을 공부한 정사모가 강사로 나섰다. 나는 'How can we serve the church?'의 강의를 통해 교회를 목양하는 목자의 사명을, 그리고 'How can we revive the church?'를 통해 교회를 살리는 6가지 전략에 대해 말했다. 정사모의 목회자 가정의 회복과 치유도 많은 반응을 얻었다. 가정이 파괴되는 위기속에서 목회자를 섬기고 가정을 지킨 사모들에게 큰 위로가 되는 메시지였다. 내가 강조했던 것은 목회자 정신(spirit)의 회복과 교회 부흥을 위한 구체적인 전략(strategy)의  중요성이었다. 평소에 '목회적 성공'이란 말을 좋아하지 않지만 간명한 이해를 위해 이런 공식을 제시했다.

Spirit + Strategy = Success

말씀을 마치고 찬양과 기도가 시작되었을 때 이들의 얼굴에는 그동안 가난과 열악한 목회조건 때문에 움추렸던 어깨를 활짝 펴고 현장으로 돌아가는 자신감과 확신으로 가득찼다. 예전에 보지 못한 사랑스런 모습이이었다.

이번 세미나가 이렇게 특별해진 이유가 있었다. 지난 목요일이었다. '영성' 과목 시간에 순서에 따라 성 프란치스코를 공부하게 되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예수님을 많이 닮은 성자, 그를 해석하는 많은 관점중에 '거울론'이라는 것이 있다. 성 프란치스코는 예수님을 거울처럼 바라보며 살았다는 것이다. 예수님을 바라보고 자신을 바라보고, 자신을 바라보며 또 예수님을 바라본 삶이 프란치시코의 삶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나온 아름다운 영성적 표제가 있다. 'In everything, he saw Christ,  in Christ, he saw everything'( 그는 모든 것을 통해 그리스도를 보고 그리스도를 통해 모든 것을 보았다). 버클리의 윌리암 쇼트가 정리한 프란치스코의 삶의 핵심이다. 학생들로 하여금 .이 말을 각자의 삶에 패러디하게 했다. 언어의 천재인 학생들은 다양하게 적용했다. '아프리카를 통해 그리스도를 보고 그리스도를 통해 아프리카를 본다', '망고나무를 통해 그리스도를 보고 그리스도를 통해 망고나무를 본다', ''말라리아를 통해 그리스도를 보고 그리스도를 통해 말라리아를 본다'. 이 학생은 말라리아에  걸려 수업중 학교 병원에 다녀온 적이 있었다. '영혼들을 통해 그리스도를 보고 그리스도를 통해 영혼들을 본다'. 그중에 어떤 학생이 이렇게 말해서 나를 기쁘게 했다. '목사님을 통해 그리스도를 보고 그리스도를 통해 목사님을 본다'. 이 학생에게는 이번 학기 아무래도 A학점을 줘야 할 것 같다. 처음에는 어렵게 느꼈으나 시간이 갈수록 이 고백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문제의 현실은 그렇게 간단치 않았다. 우간다는 전기사정이 나빠 가끔 불쑥 불쑥 전기가 나가는 때가 많다. 지난 주가 그 피크였다. 화요일 밤부터 전기가 나가 금요일 저녁까지 전기가 안들어 온 것이다. 전기가 나가면 냉장고 음식이 상한 것은 말 할 것도 없고 캄캄하고 지루한 긴 밤을 뒤척이며 보내야 한다. 통신, 전화, 카카오도 그치고 온 세상은 그야말로 섬처럼 시간을 멈춘다. 밤에 비가 내려 다행이었지만 그나마 비까지 없었다면 혹독한 밤을 맞이할 뻔 했다.

문제는 컴퓨터였다. 목회자 세미나를 앞두고 나는 나름 부지런히 준비해 한 주전에 강의안을 마쳤다. 그리고 컴퓨터에 저장했다. 그리고 차분히 기도로 준비하려고  했다. 문제는 내일이 목회자 세미나인데 전기가 나가 컴퓨터에 있는 강의안을 오늘 볼 수 없게 된 것이다. 계속 기다렸지만 전기는 들어오지 않았다. 분명 컴퓨터안에 강의는 있는데 읽지를 못하니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수백명의 목회자가 세미나를 기다리고 있는데 강사가 원고가 없다니. 그래서 기다릴 수 없었다. 인쇄가 되는 곳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우선 신학교 사무실로 갔다. 역시 안됐다. 누가 대학 본부에 가면 발전기가 있어서 될지 모른다고 해서 부리나케 좇아갔다. 직원이 친절하게 조금만 기다리면 된다고 해서 기다렸는데 2시간이 지나도 소식이 없었다. 몇번을 왔다 갔다 했는데도 여전히 발전기를 고치고 있다는 것이었다. 날이 어둑 어둑 해지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목회자 세미나는 바로 내일이었다. 직원을 설득해서 학교 주변의 가게를 찾아 보기로 했다. 가까스로 한군데 찾았다. 가게 직원은 '뭐 이 정도를 가지고 그러느냐' 해서 조금 못 미더웠지만 맡기고 얼마후 다시 돌아왔는데 여전히 낑낑거리고 있었다. 발전기로 전기는 돌아 가는데 한글 컴퓨터를 다루지 못한 것이다. 그 사이에 누가 대학본부 발전기를 고쳤다고 알려왔다. 차를 몰고 달려가 보니 겨우 고쳤는데 어떻게 될지 불안했다. 빛의 속도로 인쇄를 마치고 시간을 보니 저녁 7시가 넘어 있었다. 내일 목회자 세미나가 있는데 자기가 만든 원고를 일주일만에 보다니. 정말로 피를 말리는 시간이었다. 목회자 세미나를 준비하면서 기도로 피를 말려본 적은 있지만 인쇄때문에 피말려 본 것은 처음이었다.

그런데 원고를 가지고 집으로 오는데 갑자기 속에서 이런 질문이 들려왔다. '너는 오늘 나를 보았니?' 깜짝 놀랐다. 도대체 하루 종일 정신이 없었던 나에게 주님은 뭘 더 요구하신다는 말인가? 속에서 다시 말이 들려왔다. '너는 학생들에게 '모든 것에서 나를 보고 나를 통해 모든 것을 보라'고 가르치지 않았니? 오늘 네가 겪은 일은  '모든 것' 속에  들어가지 않니?' 나는 네가 하는 '모든 일'속에 있는데 너는 내가 '어떤 일'에만 나타나는 줄로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지?'

목회자 세미나를 하루 앞두고 주님은 목회자 세미나보다 더 중요한 것을 가르치셨다.  '어떤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었다. '행사'가 아니라 그 속에 계신 '예수님'이었다. 이 일이 아니었으면 나는 목회자 세미나를 행사로 치룰뻔 했다. 이것이 '사역하다가 예수님을 잃어버리면 안된다'(오스왈드 챔버스)는 말이었다. 다음날 목회자 세미나에 온 목회자와 사모들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내 눈에 보이는 것은 가난하고 누추한 옷을 입은 아프리카 목회자들이 아니라 그들을 사랑하는 예수님이었다. 성 프란치스코가 나병환자를 보았던 것도 그들안에 계신 예수님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모든 것에서 그리스도를 보고 그리스도에게서 모든 것을 보는 삶을 살지 않았을까? 그렇다. 영성생활은 매일 모든 것을 통해 그리스도를 보고 그리스도를 통해 모든 것을 보려는 삶의 훈련이다. 그렇게 산다면 우리 삶에 놀라운 기적이 나타나지 않을까?

아프리카(58) 살육의 땅에 생명을

2019.10.26

르완다는 듣던 대로 깨끗한 나라였다. 거리를 나가보면 휴지 하나가 없었다. 여기 저기 쓰레기가 쌓여 있는 아프리카의 다른 나라들과 비교하면 분명히 달랐다. 선교사들의 말에 의하면 매월 첫째 주 토요일은 전국민이 대청소하는 날이라고 한다. 평일에도 사람들은 자기집 주변을 부지런히 청소한다. 도시의 청결 수준을 보면 거의 싱가포르 수준이었다.

르완다는 우간다와 같이 적도 지대에 위치하지만 해발 1,500미터의 고지대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마치 스위스의 산골마을에 온듯 시원하다. '천개의 산으로 된 나라'라는 별명답게 울멍 줄멍 높고  낮은 산위에 집을 짓고 사는 모습을 보면 귀여울 뿐 아니라 경이롭기까지 하다.

그런데 이렇게 아름다운 나라에 사는  사람들의 표정이 어두운 것은 왜일까? 지난 월요일 키갈리 신학대학 학생들 앞에 처음 섰을 때 나는 무엇인가 모를 무거운 분위기를 느꼈다. 우간다의 활기찬 학생들만 보다가 뭔가 주눅든듯한 모습을 보며 처음에는 매우 당황했다. 언어의 문제(르완다의 주언어는 불어), 나이의 문제(대부분의 학생들은 40, 50대)를 고려한다 해도 뭔가 분명 문제는 있어 보였다. 사람이 처음 만나면 밝게 웃으며 인사하기 마련인데 이들은 별로 그렇지 않은 것 같았다. 별 기대없이 허리를 뒤로 제치고 나를 바라보는 이들을 보며 나는 힘든 한주간을 예감했다. 무엇인가에 눌리고 있는듯한 모습, 도대체 이들의 무거움과 무기력은 어디서 온 것일까?

1994, 4.6, 이 나라에 인류 역사상 가장 불행한 대학살이 일어났다. 이날로 부터 시작된 죽음의 광풍은 100일간의 짪은 기간에 100만의 무고한 죽음과 200만의 난민, 그리고 수십만의 고아, 과부, 그리고 부상자를 낳았다. 평온하던 르완다는 그야말로 하루아침에 폐허가 되고 말았다. 도대체 누가 이들을 죽였으며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후투족 84%, 투치족 14%, 그리고 1%의 소수 민족이 살던 이 나라는 식민지 이전까지는 그런대로 잘 살아왔다. 종족간의 갈등이 생긴 것은 독일, 벨기에로 이어진 식민지 시대부터다. 1895-1916년까지 식민지배를 한 독일이 1차 대전의 패배로 식민지를 벨기에에 넘겨준 후로부터 1962년 독립할 때까지 종족간의 증오와 차별정책을 골격으로 한 식민정부는 이 나라의 끔찍한 비극의 씨앗을 심었다. 1932년부터는 모든 신분증에 종족의 이름을 명기하게 했고 종족의 구분도 얼굴, 피부, 코의 길이로 결정했다. 또 후투족의 10계명이란 것을 만들어 투치족과 결혼, 사업, 관계를 맺는 후투족은 모두 배신자로 규정했다.

이런한 불씨가 1994.4.6을 계기로 폭발했다. 이 날은 당시 후투족 대통령이던 하비아가 비행기 사고로 갑자기 죽은 날인데 그것이 투치족의 소행이라며 정부가 투치족에게 책임을 뒤집어 씨우자 격분한 사람들이 거리로 몰려 나와 살육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몇 사람의  흥분한 사람들의 우발적 사건으로 시작한듯 했으나 사실 그 배후에는 후투족 정부의 치밀하고도 계획적인 준비가 있었다. 후투족 정부는 경찰과 군대로 된 2천여명의 살육자들을 이미 전국에 배치해 놓고 있었고 4.6일 사건이 일어나자 대대적으로 경찰, 군대를 동원하여 전국적인 살육을 감행했다. 그들은 투치족이라면 닥치는 대로 죽였다. 시장, 거리, 학교, 교회는 순식간에 아비규환과 비명소리로 뒤덮혔다. 어떤 학교에서는 1,000명이, 어떤 교회에서는 5,000명이 떼죽음을 당했다. 평소에는 사이 좋게 살던 앞집, 뒷집 사람도 종족이 다르다는 이유로 칼을 휘둘렀다. 평생을 같이 살아오던 후투족 친구가 옆집 투치족 친구를 찾아가 그 가족을 모조리 죽였다. 학교에서는 후투족 선생님이 평소 가르치던 학생들을 투치족이란 이유로 죽이고 심지어 같은 교회를 다니던 목사와 교인, 교인과 교인도 서로 죽이고 죽었다. 목사는 신자를 죽이고 신자는 목사를 죽이고...

지난 수요일,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학살 박물관'(Genocide Museum)을 찾았다. 이스라엘의 '야드 바쉠'과 비슷한 분위기의 박물관에는 2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르완다인들에게 깊히 남은 아픔과 상처와 후유증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학살의 광풍이 지나가고 문득 정신을 회복한 그들앞에 놓인 것은 산더미같이 쌓인 가족, 친구, 교인, 동족의 싸늘한 시신이었다. '차라리 꿈이었으면...'그들은 절규했으나 죽은 자가 다시 돌아올 수는 없었다.

내가 만난 신학생들이  그 피해자들이라니, 나는 지금 학생들앞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아직도 죽은 부모의 빈 자리를 채우며 힘들게 소년 가장으로 살아온 사람들앞에 서 있다. 온 가족이 떼죽음을 당한 상황에서 간신히 혼자 살아남아 그 힘든 세월 그나마 예수믿고 목회자가 되기로 마음먹은 사람앞에, 그리고 어린 나이에 부모가 눈앞에서 피흘리며 죽어가는 모습을 25년이 지난 지금도 선명히 기억해 시간만 나면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나는 상처받고 치료받아아야 할 사람들앞에 서 있다. 그래도 무기력하고 말이 없지만 가슴속 깊히 트라우마를 가지고 자기도 살고 동족도 살리겠다고 신학교에 앉아 있는 것이 대견하여 나도 모르게 회개의 눈물이 나왔다. 짪은 시간,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아픔을 겪은 사람들에게 작은 사랑이라도 나눌 수 있슴에 감사하며 나는 한 주간 내내 이렇게 간절히 기도했다. '주여, 이 살육의 땅에 하늘의 생명을 내리소서!'. 마침 밖에는 세차게 비가 내리고 있었다. 저 강한 빗줄기로 모든 아픔과 상처는 씻겨 나가고 비가 머문 그 자리에 새생명의 싹이 움터나기를...

아프리카(59) 르완다 호텔

금요일 오전 한 주간의 수업이 끝나자 나는 현지인의 안내를 받아 역사의 현장을 찾아 나섰다. 다시 보아도 깨끗한 나라, 푸른 산과 호수로 둘러 쌓인 나라, 대학살의 역사에 대해 듣지 못했다면 이 청명하고 아름다운 나라에 그런 끔찍한 일이 일어났으리라고 누구도 믿을 수 없는 키갈리 시내에 도착했다. 내가 향한 곳은 한 호텔,  이 나라 말로 '천개의 산' 이란 뜻을 가진 '밀 콜린스 호텔'(Hotel Des Mille Collines)이었다.

내가 이 호텔에 관심을 가진 것은 1994년 4월, 한참 학살이 진행되고 있을 때 이 호텔에 근무하던 한 사람이 1,268명의 사람들을 이  호텔에 숨겨 그들의 목숨을 살려주었기 때문이다. 그의 이름은 후투족 출신의 호텔 부지배인 폴 루세사바기나(Paul Ruseabagina)이다. 그는 살륙의 현장에서 황급히 도망쳐 이 호텔로 숨은 투치족, 후투족 난민들을 천신만고끝에 구해냈다. 그의 이야기가 영화 '르완다'에 자세히 나오기 때문에 내가 설명하는 것보다 가족과 함께 이 영화를 보는 것이 나을 것이다. 다만 그를 통해 우리가 들을 이야기의 핵심은 있다. 그것은 대학살이 일어나자 국내외 누구도 이 일에 뛰어들거나 해결하려고 하지 않을 때 거의 유일하게 이 사람이 온 몸을 던져 난민들을 구했다는 것이다.

우선 유엔 평화 유지군은 팔짱을 끼고 방관했다. 학살 전 해인 1993년 2,500명을 평화유지군으로 파송한 유엔은 학살이 일어나자 오히려 270명만 남기고 모두 철수했다. 평화를 위해 목숨을 걸기보다 자기들에게 닥칠 위험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평소에 이권이 있을 때는 목숨걸고 덤비던 미국, 영국, 프랑스등 열강들도 아무런 조치나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그것은 교회도 마찬가지였다. 르완다는 인구 50% 이상이 카톨릭교인인 사실상 카톡릭 국가이지만 입만 열면 평화를 말하던 교황청은 끝까지 침묵했다. 오히려 병원에서 일하고 있던 어떤 수녀는 자기 병원에서 투치족을 찾아내 민병대에 넘겨 살해하게 한 혐의로 후에 30년 형을 받았다. 또 어떤 수도원의 수녀 두 사람은 자기 수도원에 숨어 있던 투치족을 내쫓아 결과적으로 7,000명이 죽도록 만들었다. 교회의 죄악은 카톨릭만이 아니었다. 상당히 많은 목사가 자기 교회 신자를 고발하고 직접 죽이는 일에 가담하여 지금까지 교인들이 목회자들을 신뢰하지 못하는 원인을 제공했다.

그러나 폴 루세사바기나는 달랐다. 그는 당시 사람을 구해야 하는 위치에 있지 않았다. 그는 정부 관계자도 유엔 평화군도 목사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평소에 기도 많이 한 소위 믿음 좋은 신자도 아니었다. 무엇보다 그 일을 할만큼 돈많은 재력가도 아니었다. 그 자신 역시 위험한 상황에서 살 길을 찾아야 했다. 그러나 그는 호텔이 안전하다고 믿고 밀려오는 수많은 난민을 두고 도망갈 수 없었다. 그렇다고 그가 호텔 사장도 아니어서 그가 마음대로 할 일은 별로 없었다. 그는 사람들을 빨리 쫓아내라는 호텔 사장의 재촉과 사람들을 호텔밖으로 내보내지 않으면 호텔안으로 들어가 사람들을 몰살시키겠다는 민병대의 위협과 맞서 싸워야 했다. 혹시 뇌물을 주면 몇 사람 살려주겠다고 인심쓰는 고위직 사람들에게 그나마 없는 사재를 털어야 했다.

나는 이 호텔을 이번에 두번 갔다. 한번은 선교사들과 목요일 저녁에 잠시 다녀왔고 다음 날 오후에 개인적으로 또 한번 갔다. 호텔은 25년 전의 숨가쁜 사건을 기억하는지 못하는지 평온했다. 호텔 관계자의 말에 의하면 25년전과 지금의 모습은 약간의 수리를 제외하고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고 했다. 아랫층으로 내려가자 넓은 풀장과 함께 우아한 카페테리아가 있었다. 아직 저녁이 되지 않았는데도 통키타 가수가 노래를 부르고 있었고 한 쌍의 잘 어울리는 예비부부는 행복하게 사진을 촬영하고 있었다. 나는 문득 이들에게 행복을 준 25년 전의 한 작은 영웅을 기억하느냐고 묻고 싶었다.

그렇다. 누가 사람을 구하는가? 사람을 구하라고 부른 사람들은 모두 도망가고 오히려 뜻밖에 한 사람이 나타나 사람들을 살렸다. 오늘날의 교회 지도자들은 교회와 사람을 살리고 있는가? 조용히 호텔 로비에 앉자 25년 전 아비규환이 되어 살려달라고 아우성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는듯 했다. 그렇다. 누가 이들을 구할 것인가? 지금 우리가 귀를 막지 않으면 25년에 부르짖었던 같은 목소리를 전 세계로 부터 들을 수 있다. 누가 이들을 구할 것인가?

르완다의 한 호텔이 오늘 우리에게 묻는 질문이다.

아프리카(60) 내 교회를 어찌할꼬?

르완다 목회자들과 며칠 같이 있으면서 그들에게 대학살 이후 더 큰 문제가 있는 것을 알았다. 그것은 정부가 자신들의 기준에 미달한 7천개의 교회의 문을 닫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예배드릴 데가 없다는 것이다. 도대체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교회 문을 닫는 일은 공산당 정부에서나 가능한 일이 아닌가? 르완다는 공산국가도 아니고 이슬람 국가도 아닌데 어떻게 교회 문을 닫을 수 있는가? 한국같으면 종교탄압이나 재산권 침해로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일이 지금 르완다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왜 문을 닫았느냐고 물었더니 주로 안전의 이유라고 한다. '우기에 비가 올 때를 대비하여 교회안에 물통을 설치할 것, 교회 주위에 소음의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방음 장치를 설치할 것, 남의 가게나 집에 차를 대지 않도록  교회안에 주차장을 마련할 것, 렌트해서는 이러한 기준을 만족시킬 수 없으니 자기 땅과 건물을 가질것, 그래서 다 준비되면 재등록하고 검사를 받은 후 허락을 받을 것' 등이었다. 문제는 이 조건을 갖추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국민소득 700여불의 세계 16위의 가난한 나라가 어떻게 단시일내에 이 조건을 갖추겠는가?

이로 인해 르완다 교회는 심각한 홍역을 앓고 있다고 한다. 무엇보다 교인수가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주일 예배드릴 곳이 없으니 점점 믿음을 잃어 버리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영세한 개신교회에 더 심각하다. 대부분의 문닫은 교회가 개신교회이기 때문이다. 다음은 이단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것이다. 영악한 이단들이 이 기회를 놓칠 리가 없다. 막대한 자금을 풀어 그럴싸한 성전을 짓고 교인들을 끌어 모으면 순진한 양들은 좋은 교회가 생겼다고 몰려들 것이다. 이미 신천지, 구원파등 한국의 주요 이단들이 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고 한다. 이로 인한 사회혼란과 국론분열도 큰 문제다. 이미 이들은 1999년에 일어난 대학살의 트라우마도 아직 치유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그나마 교회가 있어 그기능을 해 왔는데 교회가 문을 닫았으니 누가 이들의 상처를 치유하겠는가?

그래서 요즘 심심찮게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사람들이 자칭 예언자들이라고 한다. 이들은 불안한 사람들의 빈 공간에 침투해 돈을 받고 예언을 해주면서 르완다의 영적 기후를 더 탁하게 하고 있다. 건강한 교회가 없으니 가짜 제사장들이 돈을 받고 씻김굿을 하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 심각한 우려는 교회가 국가권력에 예속될 위험이다. 정부는 말로는 교회 안전을 위하여, 더 좋은 교회를 위해 그렇게 한다고 하지만 더 좋은 교회는 정부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만드신다. 역사상 한번도 권력이 주도하여 교회가 개혁된 적이 없다. 거룩은 강압으로 되지 않기 때문이다. 르완다  정부는 교회시설의 열악성을 문제삼지만 역사적으로 가장 훌륭한 건물을 가진 시대에(중세시대) 교회는 가장 부패했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이며 성령의 집이다. 르완다 정부는 주님이 세운  '내 교회'를 '국가교회'로 전락시키고 있는 것이다.

르완다 정부의 이 일이 목회자의 자질(교육)부재로 인한 문제에서 나왔다는 분석도 있다. 전쟁과 살육의 역사속에서 대부분의 목회자가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그중에는 아무런 소명감이나 자격을 갖추지 못한 목회자들이 여러 문제를 야기한 적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르완다 정부는 학사 이상 마치지 않는 목회자의 목회활동을 금하고 기준을 갖추지 못한 신학교도 문을 닫게 했다. 이 일이 장기적으로 보면 더 좋은 신학교육, 더 좋은 목사, 더 좋은 교회로 가는 전화위복의 계기일 수 있다. 문제는 목회자의 교육은 건물이상으로 더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다. 사람 하나 만드는 안이 쉬운 일이 아닌데 르완다 정부는 일정한 유예기간도 없이 어느날 갑자기 이를 선포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소수의 무자격 목회자를 퇴치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대다수의 좋은 목회자들까지 길을 막아 결과적으로 교회쇠퇴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르완다 정부와 싸울 것인가? 이미 사회주의 정부에서 자라고, 그 이전 오랜 식민지 생활에서 힘있는 자에게 순응하는 법을 배워온 사람들이 정부를 상대로 다른 의견을 말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르완다 정부가 제시한 조건을 빠른 속도로 갖춰가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수밖에 없다. '고난속에서 하나님을 영광' (Glory of God in suffering)을 기다릴 수 밖에 없다. 구체적으로는 학사 이상의 학력을 갖춘 목회자가 목회하는 교회중에서 조금만 더 조건을 갖추면 허가받을 수 있는 교회들을 빠를 속도로 재건해 나가는 것이다. 분명 하나님은 고난속에서 또 다른 하나님의 영광을 예비하고 계심을 나는 믿는다. 다행히 이번에 내가 가르친 학생들은 신학사를 마친 대학원 과정의 목회자들이었다. 30여명 중 대부분이 안수받고 열심히 목회하던 분들이었다. 이들중에 조금만 도우면 교회문을 다시 열 수 있는 교회들이 있다.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눈물로 호소한다. 나는 우간다에 있는 선교사고 대학에서 목회자를 가르치는 선교사다. 그래서 교회를 세우는 일은 내 사역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그 일이 관여해오지 않았다. 우간다에 교회 세우고 싶다는 분들이 있었지만 아직 응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르완다는 다르다. 지금 우리가 안 도우면 평생 복음의 문이 닫힐지 모른다. 어떤 분은 말할 것이다. '우리가 돕는다고 7천교회가 다 회복됩니까?' 어느 바닷가에 수많은 불가사리들이 백사장으로 떠밀려 말라 죽어가고 있었다. 이때 한 노인이 한 마리 두 마리를 집어 바다로 던지고 있었다. 이때 한 젊은이가 말했다. '할아버지, 할아버지가 던진다고 더 불가사리들이 다 살아납니까?' 이때 노인이 젊은이를 보고 말했다. '그래도 내가 던진 불가사리는 살 수 있잖아요?' 그렇다. 우리가 우리 일하면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하실 것이다.

르완다를 떠나면서 주님의 탄식이  들리는듯 했다. '르완다에 있는 내 백성을 어찌할꼬? 대학살로 상처입은 내 백성, 이제 교회 문까지 닫혔으니 불쌍한 내 백성을 어찌할꼬? 내 교회를 어찌할꼬? 내가 피로 값주고 산 내 교회를 어찌할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