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 올린 시간 : 2019년 11월 09일 14시 41분 47초

아프리카(61) 영혼의 속도

르완다에서 돌아온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 책상에 앉았는데 갑자기 이가 흔들렸다. 왼쪽 상단에 있는 어금니였다. 손으로 만져보니 거의 발치 직전의 수준이었다. 그동안 아픈 적도 없고 흔들린 적도 없는데 왜 이가 흔들리는지 당황스러웠다. 이도 문제지만 병원도 문제였다. 이 시골 어디에 가서 치과를 찾는단 말인가?

아침 예배 후 학생들에게 말했더니 학생들이 깔깔대고 웃었다. 자기들 생각으로는 성경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흔들거리는 이를 보여주며 어린아이처럼 말하자 그것이 즐거웠던 모양이다. 학생들을 잠시 즐겁게 해서 좋았지만 나는 크게 웃을 수도 없었다. 크게 웃으면 이가 밖으로 튀어 나올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학생들에게 말한 게 다행이었다. 학생중 미리암이 쿠미에 있는 치과를 안다는 것이었다. 오후 일정을 마치고 서둘러 쿠미로 나갔다. 다행히 미리암이 말한대로 작은 치과가 하나 있었다. 이름은 '테소 치과', 자기 부족의 이름을 따서 붙인 이름이었다. 이 시골에 치과가 있었다니. 우리나라 면소재지 수준의 아프리카 작은 마을에 치과가 있는 것은 참으로 경이로운 일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가운을 입은 의사가 큰 소리로 '웰컴'했다. 의사는 내 입을 벌리고 요리 저리 살펴보더니 말했다. '잇몸이 많이 상했군요. 하나가 아니예요. 전부 상했어요.'. 나는 그때 처음으로 잇몸을 영어로 '검'(gum)이라고 부른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이가 문제가 아니라 잇몸이 문제라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의사는 내가 왜 아프리카에 왔는지 물었다. 쿠미대학에서 신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고 했더니 '아, 독터, 반가워요'하면서 자기 아버지도 목사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말했다. '목사님들은 자주 과로 하시죠. 박사님도 많이 과로하시나 봐요'. 의사의 말은 내가 과로해서 잇몸이 상했으니 과로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치료를 받고 나오면서 명함을 받았는데 그의 이름은 '모세'였다. 나는 앞으로도 자주 그에게 가서 치아의 구원을 받아야 할것 같다.

목사는 과로하는 사람인가? 지난 9개월 동안 나는 정말 쉴 틈 없이 살아왔다. 육체만이 아니었다. 정신적으로도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는 아프리카 오지에 뚝 떨어져 문명세계와는 상관없는 삶을 살았다. 목회하면서 피곤을 풀 때마다 가끔 따뜻한 사우나가 도움이 되곤 했는데 여기는 더운 물은 고사하고 빗물을 정수해서 데워야 겨우 목욕할 수 있었다. 영화를 좋아해 가끔 집사람과 함께 푹신한 극장에 앉아 다리를 쭉 뻣고 영화를 보는 즐거움을 누리곤 했는데 여기서는 그런 재미도 없었다. 가끔 책을 보고 싶을 때 대형 서점에 가서 책을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지적 희열을 느끼곤 했는데 여기는 책 한 권 살 데가 없었다.

깊어가는 가을, 이맘때쯤 나는 어디론가 훌쩍 떠나 홀로 있슴의 자유를 만끽하곤 했는데 여기서는 떠날 곳도 없었다. 가끔 아무도 모르는 외딴 도시의 한 스타박스 구석에 앉아 모카 한 잔을 시켜놓고 정호승의 시를 읽곤 했는데 이곳에는 스타박스도 시집도 없었다. 이곳에서 내가 하는 일은 지독하게 아프리카식으로 발음하는(예를 들어 God helps me 를 이들은 '곳 헬레프 미'라고 발음한다) 젊은 학생들과 일년 내내 반질거리는 같은 옷을 입고 다니는 나이 든 목회자들과 씨름하는 일과 성경가르치느라 빚바랜 오래된 성경공부 교재를 낑낑거리며 번역해 새벽녁쯤 교안을 만드는 일, 그리고 다행히도 아프리카 다른 나라 신학교에서 초청해줘서 얼굴과 피부가 또 다른 학생들을 가르치고 강의하는 일이었다. 그것이 즐겁고 행복했지만 그 일이 사실 얼마나 힘들고 스트레스 받는 일인지 잇몸이 상해 멀쩡하던 이까지 빠지게 될 지는 꿈에도 몰랐다.

집으로 돌아오자 아내가 말했다. '쉬어야 해요. 안 쉬어서 그래요. 오늘 하고 내일은 무조건 집에서 쉬세요'. 아내의 말을 하나님의 음성으로 듣고 쉬니까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쉬면서 한국에서 가져온 책들을 뒤적거렸는데 그 책에 아프리카 이야기가 하나 눈에 띄었다. 킬로만자로를 오르는 어느 한국인 등산객이 산정상을 향해 걷고 있는데 짐을 맡은 아프리카 포터가 너무 늦게 따라 오는 것이었다. 그는 킬로만자로산을 수백번을 오른 배터랑 포터였는데도 속도는 생각보다 느렸다. 답답한 한국인이 물었다. '왜 이렇게 천천히 따라 오나요?' 포터가 말했다. '내 영혼이 너무 빨리가는 몸을 따라갈 수 없어 잠시 영혼을 기다리느라 늦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아프리카의 전통 종교 사상을 떠오르게 하지만 메시지는 분명히 있다. 우리 몸은 영혼과 상관없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몸은 영혼과 함께 가고 영혼은 몸과 함께 간다는 것이다. 영혼보다 빨리 가는 몸, 우리는 그것을 '열심'이라 부르지만 성경을 그것을 '불신앙'이라 부를 것이다. 어떻게 영혼은 몸과 함께 가고 몸은 영혼과 함께 갈 것인가? 이것은 선교사뿐 아니라 모든 사역자들의 고민거리가 아닐 수 없다. 척박한 환경속에 살면서 몇 가지 깨닫는 은혜가 있었다.

우선 자신의 한계를 설정해야 한다. 현대인은 한계를 '실패'로 정의하지만 성경은 '겸손'으로 정의한다. 어떻게 인간이 모든 일을 다 하겠는가? 사진을 찍으면서 발견한 것은 좋은 사진은 대상을 제한해야 한다는 것이다. 눈으로 보는 좋은 것이 다 카메라에 담기지 않는다. 초점이 분명할수록 좋은 사진이 나온다. 모자람의 한계를 인정하고 거기에 집중해야 한다. 이것은 목회도 선교도 사업도 마찬가지다. 보기는 넓게 보되 사진은 작게 찍어라. 자기의 모자람을 염려하는 것이 가장 큰 모자람이다.

다음으로 희생의 잔과 함께 기쁨을 잔을 마실 수 있어야 한다. 이스라엘 결혼식에서 재미있는 것은 신랑, 신부가 결혼식 도중 두 잔의 포도주를 함께 마신다는 것이다.하나의 컵은 '기쁨의 잔'(cup of joy)라고 부르고 다른 하나를 '희생의 잔'(cup of sacrifice)라고 불렀다. 왜 두 잔을 함께 마시나 궁금했는데 결국 그것이 가정이고 그것이 인생이었다. 하나님을 위해 일하는 사역자도 희생과 함께 스스로 즐기는 법을 배워야 한다. 아프리카에서 나는 너무 즐기며 산다. 아침 일찍 일어나  안개에 덮힌 산과 들을 보고 감탄하고 이름모를 꽃앞에 한참동안 서 있기도 한다. 이름도 모르는 과일들을 먹으면서 스타박스에서 누렸던 기쁨과는 또 다른 기쁨을 누리고 있다. 매일이 새로운 하루(every new morning)임에 감탄하고 아프리카 여러 나라를 말씀으로 섬길 수 있슴에 감사한다. 이보다 더 좋을 수 있는가? 모든 사역자는 주어진 상황에서 자기만 아는 기쁨의 비밀을 가져야 한다.

한가지 더 말한다면 조금 어렵지만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할 수 없다면 사랑하기 위하여 사랑하라는 것이다. 성경에서 이삭이 보여준 사랑이 있다. 그는 리브가를 잘 알거나 사랑했기 때문에 결혼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결혼하고 사랑했다(창24:67). 이것은 감정화된 사랑이 결혼의 조건이 된 우리에게 다른 방식의 사랑이 있슴을 깨닫게 한다. 그것은 commitment로서의 사랑이다. 사랑은 감정이지만 또한 선물이다. 사랑은 주어진 것이면서 또한 훈련이다. 사랑은 사랑해야 사랑이다. 사랑이 없다고 부부가 살 수 없는 것이 아니다. 사랑할 수 없다고 목회나 선교를 못하는 것도 아니다. 히브리어  사랑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다. 사랑은 사랑함으로 사랑이 되며 사랑할수록 사랑은 는다. 별 사랑의 준비가 없이 떠난 선교사에게도 매일 부어주시는 사랑이 있고 내 준비된 사랑이 고갈된 후에도 계속적으로 공급되는 사랑이 있다. 이것이 어떤 경우에도 사역자가 낙심치 말아야 할 이유이다. 아프리카에서 처음 이가 빠진 날, 하나님이 빠진 이 대신에 주신 다른 은혜다.

'이' 은혜가 얼마나 큰지... 

아프리카(62) 오직 그리스도만

(아래 글은 2018년 8월, 교회앞에 조기은퇴를 선언하고 얼마후 '그리스도를 존귀하게'라는 제목으로 설교했던 설교의 일부분이다. 지나간 1년, 자신을 돌아보고, 아직도 방황하고 있는 교회들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보며 이 글을 다시 읽는다)

제가 이번에 65세 자원은퇴를 발표했습니다. 제가 경험해 보니까 싸움의  대상은 저 자신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이 하라는 것도 아니고 하지 말라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문제는 저 자신과의 싸움이었습니다. 챨스 스윈돌 목사님이 <모세>란 책에 썻듯이 제 안에도 몇 가지 우상들이 있습니다. 첫째 '유명'이라는 우상입니다. 모세는 왕자로서 끊임없이 주목받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매일 아침 그의 일거수 일투족이 매스검에 주목을 받는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그런 모세를 하나님은 하루 아침에 '무명'의 훈련을 받게 했습니다. 또 하나는 '바쁨'의 우상입니다. 모세는 유명인사였기 때문에 당연히 바쁜 인생을 살았을 것입니다. 왕궁의 하루는 아침 일찍 출근한 비서가 빼곡한 하루 일정을 보고함으로 시작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광야에서는 뉴스 하나 나오지 않을 뿐 아니라 찾아오는 사람 조차 없었습니다. 셋째는 '편안함'이라는 우상입니다. 모세는 광야에서 먹는 것, 입는 것, 자는 것, 어는 것 하나 불편한 것이 없었습니다. 모든 일은 다른 사람이 하고 그가 스스로 하는 일은 거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 그가 광야로 나오자 모든 것을 혼자 해야 했습니다.

예수전도단의 오대원 목사님이 쓰신 글에 '사람이 가장 무서워하는것은 숨겨진 것이요 잊혀지는 것이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본성적으로 자기를 드러내고 나타내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잊혀지는 것, 사람들이 선망하는 무대에서 내려와 무대뒤로 숨겨지는 것'을 가장 무서워하는지 모릅니다.

한국교회중 세습하는 교회들이 있습니다. 왜 그들은 그렇게 많은 비난을 받으면서 세습을 할까? 아주 분명한 이유를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아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아들이 목사이기 때문입니다. 두 가지 다 없는 사람은 아예 세습이 불가능합니다. 세습에는 많은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중에는 더러 이해가 되는 이유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 제가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혹시 그들이 무서워하는 것은 교회가 잘못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교인들에게 잊혀지는 것이 아닐까? 교회강단이 화려한 무대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무나 설 수 있는 곳이 아닌 것은 분명합니다. 그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무대에 서지 못하고 무대뒤로 숨겨지고 사람들에게 잊혀지는 것이 두려운 것은 아닌가?

그래서 교회를 떠나거나 떠나 보내는 사람들은 무엇인가 내려놓아야 합니다. 떠나는 사람은 직분을 내려놓을 뿐 아니라 자기 속에 있는 우상도 내려놓아야 합니다. 내가 오래 교인들에게 기억되기를 바라거나 찬사와 존경의 자리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는 우상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유명인사에서 스스로 무명인사가 되어야 합니다. 사람들 틈속에서 외로울 틈이 없던 상태에서 이제는 충분히 외로울 준비를 해야 합니다. 말만하면 다 들어주는 편리함에서 얼마든지 불편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보내는 사람도 내려놓아야 합니다. 우리 목사님이 최고라는 생각을 했다면 그 생각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목사님이 아니면 이 교회는 어떻게 되나?' 라고 생각한다면 그는 하나님을 믿은 것이 아니라 목회자를 믿은 것입니다. 떠나는 자나 남는 자에게 유일하게 남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여야 합니다. 떠나기만 해서는 안됩니다. 그는 몸으로 그리스도를 남겨야 합니다. 보내기만 해서는 안됩니다. 그들은 그 빈 자리에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다 사라져도 끝까지 남은 것은 오직 그리스도입니다. 오직 그리스도만 우리에게 존귀합니다.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만 존귀히 되기를, 떠나든지 남든지 우리 몸에 오직 그리스도만 남기를'.....

아프리카 (63) 추수감사의 아침에

지구를 한 바뀌 돌아 먼 나라
추수감사의 아침에
나는 지나가는 들녁의 작은 바위에 앉아
문득 내 생에 찾아온 감사를 묵상한다.

내가 뭐라고 하나님은 나를 이곳까지 보냈는가?

아직도 죄인 중의 괴수인 나를
내 앞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앉아 있는 저 학생들은 누구인가? 그들은 나에게서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가?

아직도 자격없는 나에게
울멍 줄멍 앉아 낯선 한국 목사를 바라보는 아프리카의 목회자들은 나에게서 무엇을 기대할까?
내가 그들보다 더 나은 것도 없는 데

들녁을 걸으며 철따라 변하는 곡식들

오늘도 말없이 감자는 속에서 익고 옥수수는 키가 한 자나 자라 하늘을 덮는데
기적은 따로 없다. 우리 생이 모두 기적이요 천사로 가득한 삼나무는 오늘도 하늘 바람에 춤을 추는데

문득 나에게 없는 것은 기적이 아나라 감탄이라는 것을 깨닫고 죄송했을 때

간밤에 내려친 천둥으로 나무가지는 길녁에 널부러져 내 수족처럼 아프고
정들었던 '퀸'이 뭘 잘못 먹어 낑낑거리며 죽어갈 때 자식 죽은 것처럼 눈물나고
무섭던 리자드(도마뱀) 집안 구석 구석 나와 함께 살아 시간이 갈수록 예쁘고 귀여워
조금씩 이 땅의 생명들이 사랑스러워질 때

어느날 갑자기 시작된 열이 개이지 않아 헛것이 보일때 문득 달그닥 거리며 옆에 있는 아내를 보며
안 아픈데가 없다는 아내의 굳은 허리를 마사지하며 속으로 울때
하나님은 이 외로운 별에 하나가 아니라 둘을 주셔서 다행이라고 생각할 때

어느 힘든 날 피곤해 정신없이 누어 있을 때 문득 어릴적 어머니 들에서 일하시는 환상을 보고 벌떡 일어나 아직도 날위해 기도하는 사람이 있네 하며
일어났다 넘어지고
넘어졌다 또 일어날 때

들녁의 풀이 자라 지나가기 불편해 왜 이런 필요없는 풀이 있을까 항의하고 싶을 때
문득 베자면 풀이 아닌 것이 없고
가꾸자면 꽃이 아닌 것이 없슴을
깨달으며

하나님, 내가 만난 모든 풀을 꽃으로 볼 수있게 해주세요 기도할 때

한국교회 이런 저런 소문들려 올 때마다 염려하고 걱정하다
문득 그 문제아가 나 자신임을 깨닫고 나 때문에 한국교회 이렇게 되었구나 자책하며 속으로 웅얼거리며 기도할 때
그래도 목사님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기도하는 많은 성도들이 있슴을 알았을 때

맨발로 뛰는 아이들
전쟁에 지친 사람들
가난에 허덕이는 사람들

그들을 위해 일찍 한국민족을 가난과 전쟁속에 살게 하시고
우리도 당신들처럼 가난했어요. 우리도 전쟁때문에 우리 가족을 잃고 지금도 고통가운데 살아요.

그래서 당신들을 사랑해요.
눈물로 설교할 때

나는
진실로 하나님께 감사한다.

아프리카 (63) 추수감사의 아침에

지구를 한 바뀌 돌아 먼 나라
추수감사의 아침에
나는 지나가는 들녁의 작은 바위에 앉아
문득 내 생에 찾아온 감사를 묵상한다.

내가 뭐라고 하나님은 나를 이곳까지 보냈는가?

아직도 죄인 중의 괴수인 나를
내 앞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앉아 있는 저 학생들은 누구인가? 그들은 나에게서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가?

아직도 자격없는 나에게

울멍 줄멍 앉아 낯선 한국 목사를 바라보는 아프리카의 목회자들은 나에게서 무엇을 기대할까?

내가 그들보다 더 나은 것도 없는 데

들녁을 걸으며 철따라 변하는 곡식들
오늘도 말없이 감자는 속에서 익고 옥수수는 키가 한 자나 자라 하늘을 덮는데

기적은 따로 없다. 우리 생이 모두 기적이요 천사로 가득한 삼나무는 오늘도 하늘 바람에 춤을 추는데
문득 나에게 없는 것은 기적이 아나라 감탄이라는 것을 깨닫고 죄송했을 때

간밤에 내려친 천둥으로 나무가지는 길녁에 널부러져 내 수족처럼 아프고
정들었던 '퀸'이 뭘 잘못 먹어 낑낑거리며 죽어갈 때 자식 죽은 것처럼 눈물나고
무섭던 리자드(도마뱀) 집안 구석 구석 나와 함께 살아 시간이 갈수록 예쁘고 귀여워
조금씩 이 땅의 생명들이 사랑스러워질 때

어느날 갑자기 시작된 열이 개이지 않아 헛것이 보일때 문득 달그닥 거리며 옆에 있는 아내를 보며
안 아픈데가 없다는 아내의 굳은 허리를 마사지하며 속으로 울때
하나님은 이 외로운 별에 하나가 아니라 둘을 주셔서 다행이라고 생각할 때

어느 힘든 날 피곤해 정신없이 누어 있을 때 문득 어릴적 어머니 들에서 일하시는 환상을 보고 벌떡 일어나 아직도 날위해 기도하는 사람이 있네 하며
일어났다 넘어지고
넘어졌다 또 일어날 때

들녁의 풀이 자라 지나가기 불편해 왜 이런 필요없는 풀이 있을까 항의하고 싶을 때
문득 베자면 풀이 아닌 것이 없고
가꾸자면 꽃이 아닌 것이 없슴을
깨달으며

하나님, 내가 만난 모든 풀을 꽃으로 볼 수있게 해주세요 기도할 때

한국교회 이런 저런 소문들려 올 때마다 염려하고 걱정하다
문득 그 문제아가 나 자신임을 깨닫고 나 때문에 한국교회 이렇게 되었구나 자책하며 속으로 웅얼거리며 기도할 때
그래도 목사님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기도하는 많은 성도들이 있슴을 알았을 때

맨발로 뛰는 아이들
전쟁에 지친 사람들
가난에 허덕이는 사람들

그들을 위해 일찍 한국민족을 가난과 전쟁속에 살게 하시고
우리도 당신들처럼 가난했어요. 우리도 전쟁때문에 우리 가족을 잃고 지금도 고통가운데 살아요. 그래서 당신들을 사랑해요.
눈물로 설교할 때

나는
진실로 하나님께 감사한다.

아프리카(65) 목회자 한 사람

지난 금요일(11.29)은 쿠미대학 제 20주년 기념일이자 제 15회 졸업식이 있던 날이었다. 수많은 참석자들과 학생, 내빈이 참석한 가운데 졸업식은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감동적인 광경이 펼쳐졌다. 380명 졸업에 아마 수천명의 사람들이 참석한 것 같았다. 학생들이 춤을 추며 졸업장을 받으면 그 부모와 가족이 뛰어가서 얼싸안는 장면은 아프리카가 끈끈한 공동체 의식으로 뭉친 나라임을 보여주었다. 척박한 땅 오지에 하나님이 학교를 세운 것은 이런 기쁨을 위해 세운 것이 아닌가? 이 날은 부모뿐아니라 가르치고 섬긴 모든 이에게도 눈물로 심으면 기쁨으로 거두는 수확의 원리를 깨닫게 한 위로의 날이기도 했다. 이 뜻깊은 날에 오늘이 있기 까지 한알의 밀알로 수고하고 간 한 우간다의 목회자를 기억하고 싶다.

그의 이름은 게르솜 일루코르(Gersom Ilukor). 그는 당시Church of Uganda 교단의 쿠미지역 비숍이었다. 그는 지금의 우간다 대통령 무세베니와 오랜 친분이 있었지만 정치에 연연하지 않고 오직 목회의 길로만 걸었다. 그러다가 독재자 이디 아민의 뒤를 이어 밀턴 오보테가 부정선거로 당선되자 무세베니는 '민족저항운동'(National Resisrance Movement)을 세웠고 그후 정부군과의 치열한 내전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내전의 판도는 무세베니에게 불리한 것이었다. 음바라라에서 태어난 무세베니는 아프리카 특유의 부족의 갈등으로 오보테가 태어난 다른 지역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치고 있었다. 오보테가 부정선거로 당선되긴 했지만 그의 고향은 여전히 그를 강력하게 지지하고 있었다. 전쟁은 어느 순간 막상막하의 지역 대결이 되었다. 문제는 그 중간에 있던 테소족의 향방이었다. 상황은 테소족이 어느 편을 드느냐에 따라 정권의 향배가 바뀔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테소족은 정서적으로 무세베니편이 아니었다. 보수적인 그들은 혁명적인 무세베니를 믿느니 차라리 안정적인 오보테를 따르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양측은 지금의 쿠미대학 지역을 중심으로 치열한 전쟁을 벌였다. 오보테는 정권을 지키기 위해 무세베니는 정권을 빼앗기 위해 목숨걸고 싸웠다. 시간이 갈수록 전세는 무세베니 쪽으로 기울었다. 기가 살아난 무세베니의 군인들은 자기들을 반대한 테소족에게 무차별한 학살과 테러를 감행했다. 테소족은 치열한 전쟁으로 거의 멸족 직전까지 갔다. 이 위기의 순간에 목회에만 전념하고 있던 일루코르는 죽어가는 동족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일어났다. 그는 테소족의 지도자들을 모아 놓고 전쟁을 그쳐야 우리가 산다면서 무세베니와 담판할테니 자기에게 전권을 달라고 요구했다. 뾰족한 대책이 없던 테소 지도자들은 평소에 존경하던 일루코르에게 모든 권한을 위임했다.

일루코르는 곧 무세베니의 캠프로 찾아갔다. 그는 무세니에게 전쟁을 그치고 사람을 살려야 한다고 호소하면서 몇 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우선 테소족은 오늘로 모든 무장을 풀고 집에 있는 모든 무기를 반납하겠다. 따라서 이후 어떤 경우에도 테소족을 체포하거나 살해하지 말아야 한다. 앞으로 무세베니가 집권하면 테소는 복종하고 협력할테니 무세비니도 백성을 위한 정치를 해야 한다. 테소족은 이 약속을 보증하기 위해 자신들의 땅을 정부에 헌납할 테니 정부는 앞으로 이 땅을 테소족을 위한 교육기관으로 만들어 주기 바란다 등이었다. 무세베니는 동의했고 드디어 전쟁을 끝났다. 그리고 1986.1.26 그는 국민투표를 통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리고 얼마후 테소족이 헌납한 약 15만 평의 땅은 지금의 쿠미대학이 되었다.

졸업식이 끝나자 나이 많은 한 목회자가 나에게 다가왔다. 그는 테소의 역사와 일루코르를 기억하는 지역 지도자였다. 그를 따라 학교투어를 시작했다. '여기 망고나무에는 당시 무세베니 군인들이 죽인 테소족의 머리가 여기 저기 걸려 있었습니다'. 사람의 머리가 걸려 있었다는 끔찍한 망고나무는 과거의 아픈 역사를 기억하는지 내 눈에는 아름답기만 보였다. '여기쯤 해서 테소족의 시신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던 곳입니다'. 시체가 쌓여 있었다는 곳은 요즘 새로 개축한 과학관 자리였다. 그리고 얼마쯤 성큼 성큼 걸어가더니 신학부 건물앞에 섰다. 그리고 말했다. '여기는 치열한 접전을 벌인 곳으로 많은 사람이 죽고 무기들을 회수한 곳입니다'. 놀랍게도 그곳은 내가 학생, 목회자를 가르치는 신학교였다. 아, 우리의 신학교가 과거에 수많은 사람들이 서로 죽이고 죽은 죽음의 현장이라니, 우리는 죽은 사람들이 묻힌 곳에서 생명의 복음을 외치고 있었다.

그때 나는 이스라엘 민족을 위기에서 건져낸 유대인 랍비 벤 자카이를 기억했다.

위기의 시대, 목회자의 사명은 무엇일까? 오늘날의 목회자는 하나님이 그들을 보낸 교회가 죽음의 무덤위에 세워진 부활의 언덕이라는 것을 아는가? 분명히 하나님은 사람을 살리려고 교회를 세웠고 목회자는 생명을 살리는 일로 거기 있다. 그 일은 모든 목회자에게분에 넘치는 축복이요 영광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교회현장을 떠나 교회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이름으로 저주의 말을 쏟아내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아까운 시간을 허비하며 남을 죽이고 결국 자기도 죽이는 일에 뛰어든 사람은 누구인가? 생명의 현장을 떠나 청와대 주변을 서성거리며 오늘도 죽음의 언어를  쏟아내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20주년을 맞아 그동안 숨어 있던 아프리카의 한 목회자는 우리에게 목회자가 설 자리가 어디인지 그리고 목회자가 무엇에 목숨걸어야 하는지를 깨닫게 한다. 무세베니의 집권후 수없이 입각 제의를 받았으나 작은 농촌에서 일생 가난한 교인곁을 떠나지 않은 목회자, 백성이 위기에 처할 때 목숨걸고 그들을 구하고 아무 일 없었다는듯 다시 돌아와 가난한 테소 백성과 함께 살다간 민중의 목회자,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가 죽음으로 세상을 살린 것 처럼 목회자 한 사람이 목숨을 걸면 전쟁이 그치고 동족을 살리고 역사를 살리는 학교를 세울 수 있슴을 보여준 사람, 우리도 그에게서 배워야 할 것이 있지 않는가? 오늘도 목회자들이 서야 할 자리에 굳게 선다면 교회는 달라지지 않을까? 오늘도 교회가 세상을 살리는 일에 집중한다면 역사는 달라지지 않을까? 위기의 시대에 삺으로 예수님을 따랐던 아프리카의 한 목회자가 20년 후 수많은 사람들을 얼싸안게 하고 눈물을 흘리며 기뻐하게 했다.

우리의 20년 후에는 우리 때문에 누가 기뻐하고 눈물흘릴까?

아프리카(66) 한 사람을 찾아서

성탄절이 다가왔다.

아프리카의 성탄절은 눈도 없고 산타도 없고 흥청거리는 거리도 없다.

여전히 햇빛은 반짝거리고 사람들은 들로 나간다. 전혀 성탄절 기분이 들지 않는 이상한 성탄절 때문에 처음에는 당황했다. 그러나 곧 우리의 성탄절이 지나치게 감상적이 된 것이 아니었는가 회개했다.

사실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성탄절의 본질은 아니지 않는가? 산타가 있고 캐롤송이 있어야 성탄절은 아니지 않는가? 성탄의 본질을 찾지 않고 성탄의 기분을 찾는 사람들 때문에 교회 안밖의 성탄절은 더욱 변질되고 있다.

나는 이번 학기가 시작되자 마자 사람을 찾기 시작했다. 때가 9월인데 벌써 내년 학생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그저 만나는 사람마다 '내년에 좋은 학생 소개해주세요' 입버릇처럼 부탁했다.

10월에 르완다에 가서 강의할 때도 '여기 좋은 학생 없어요?' 했더니 감리교 목사가 학생 두 명을 데리고 왔다.

첫 눈에 봐도 착한 학생들이었다.아프리카의 장기적 선교를 위해 다른 나라 학생도 보내주세요 기도했는데 ANTS(열방신학교)의 교수 한분이 콩고, 케냐 학생들을 소개해주었다. 그들을 만나려고 캄팔라는 두번이나 올라갔다.

막연히 지도를 보며 우리의 우방 에피오피아에서도 학생이 오면 좋겠다 했는데 에피오피아 선교사가 어떻게 알고 자기가 기른 두 명의 학생들을 받아줄 수 있느냐고 전화가 왔다. 남수단 학생 얻기 위해서는 1박 2일,  20시간 이상 걸려 글루를 다녀와야 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나는 세 가지 사실을 확실히 깨달았다. 첫째 사람이 하나님을 찾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찾는다는 것, 둘째 나도 그렇게 해서 하나님께 찾아졌다는 것 그리고 예수님의 사역은 사람을 찾는 일이요 그것의 연장이 목회요 선교라는 것

이번 성탄절도 사람을 찾으러 길을 떠난다. 정치적, 종족간 갈등으로 내전이 일어난 남수단의 영혼들, 수만명이 숨지고 320만의 집잃어 콩고, 케냐, 에티오피아, 중앙아프리카, 우간다등으로 흩어졌는데 그 중에서 국경인 우간다로 가장 많이 넘어왔다. 총 20개의 캠프에 약 200만의 난민이 희망없이 살고 있다. 만일 지금 예수님이 아프리카에 오신다면 어디를 가실까? 분명 난민촌일 것이다. 갈릴리 해변을 두루 다니시다가 제자를 부르신 예수님, 잃어버린 양 한 마리 찾도록 찾아 어깨에 메고 고갯마루를 넘으신 목자 예수님, 십자가의 참혹한 고통속에서도 마지막 잎새 한 사람 찾아 함께 천국까지 동행하신 예수님, 그 분이 당신도 찾고 또 찾았다는 것을 아는가?

이 성탄절에
그가 나를 찾으러 오지 않았다면 나는 여기 없다.
한 사람을 찾으시되 모든 인류를 찾으시는 것처럼 찾으시고
모든 인류를 사랑하시되 한 사람을 사랑하듯이 사랑하시는 분

그러나
하나님이 나를 찾으러 오셨다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나도 찾으러 나서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하나님이 사람이 되셨다는 것으로 충분치 않다.
나도 하나님처럼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성탄절은 사람으로 오신 히나님에대한 축제와 함께
사람도 하나님처럼 되라는 엄숙한 사명을 다짐하는 날이다.
이 성탄절에
나를 찾으러 오신 그 분과 함께
나도 또 다른 한 사람을 찾아 나서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