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 올린 시간 : 2019년 12월 03일 12시 55분 44초

아프리카(65) 목회자 한 사람

지난 금요일(11.29)은 쿠미대학 제 20주년 기념일이자 제 15회 졸업식이 있던 날이었다. 수많은 참석자들과 학생, 내빈이 참석한 가운데 졸업식은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감동적인 광경이 펼쳐졌다. 380명 졸업에 아마 수천명의 사람들이 참석한 것 같았다. 학생들이 춤을 추며 졸업장을 받으면 그 부모와 가족이 뛰어가서 얼싸안는 장면은 아프리카가 끈끈한 공동체 의식으로 뭉친 나라임을 보여주었다. 척박한 땅 오지에 하나님이 학교를 세운 것은 이런 기쁨을 위해 세운 것이 아닌가? 이 날은 부모뿐아니라 가르치고 섬긴 모든 이에게도 눈물로 심으면 기쁨으로 거두는 수확의 원리를 깨닫게 한 위로의 날이기도 했다. 이 뜻깊은 날에 오늘이 있기 까지 한알의 밀알로 수고하고 간 한 우간다의 목회자를 기억하고 싶다.

그의 이름은 게르솜 일루코르(Gersom Ilukor). 그는 당시Church of Uganda 교단의 쿠미지역 비숍이었다. 그는 지금의 우간다 대통령 무세베니와 오랜 친분이 있었지만 정치에 연연하지 않고 오직 목회의 길로만 걸었다. 그러다가 독재자 이디 아민의 뒤를 이어 밀턴 오보테가 부정선거로 당선되자 무세베니는 '민족저항운동'(National Resisrance Movement)을 세웠고 그후 정부군과의 치열한 내전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내전의 판도는 무세베니에게 불리한 것이었다. 음바라라에서 태어난 무세베니는 아프리카 특유의 부족의 갈등으로 오보테가 태어난 다른 지역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치고 있었다. 오보테가 부정선거로 당선되긴 했지만 그의 고향은 여전히 그를 강력하게 지지하고 있었다. 전쟁은 어느 순간 막상막하의 지역 대결이 되었다. 문제는 그 중간에 있던 테소족의 향방이었다. 상황은 테소족이 어느 편을 드느냐에 따라 정권의 향배가 바뀔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테소족은 정서적으로 무세베니편이 아니었다. 보수적인 그들은 혁명적인 무세베니를 믿느니 차라리 안정적인 오보테를 따르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양측은 지금의 쿠미대학 지역을 중심으로 치열한 전쟁을 벌였다. 오보테는 정권을 지키기 위해 무세베니는 정권을 빼앗기 위해 목숨걸고 싸웠다. 시간이 갈수록 전세는 무세베니 쪽으로 기울었다. 기가 살아난 무세베니의 군인들은 자기들을 반대한 테소족에게 무차별한 학살과 테러를 감행했다. 테소족은 치열한 전쟁으로 거의 멸족 직전까지 갔다. 이 위기의 순간에 목회에만 전념하고 있던 일루코르는 죽어가는 동족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일어났다. 그는 테소족의 지도자들을 모아 놓고 전쟁을 그쳐야 우리가 산다면서 무세베니와 담판할테니 자기에게 전권을 달라고 요구했다. 뾰족한 대책이 없던 테소 지도자들은 평소에 존경하던 일루코르에게 모든 권한을 위임했다.

일루코르는 곧 무세베니의 캠프로 찾아갔다. 그는 무세니에게 전쟁을 그치고 사람을 살려야 한다고 호소하면서 몇 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우선 테소족은 오늘로 모든 무장을 풀고 집에 있는 모든 무기를 반납하겠다. 따라서 이후 어떤 경우에도 테소족을 체포하거나 살해하지 말아야 한다. 앞으로 무세베니가 집권하면 테소는 복종하고 협력할테니 무세비니도 백성을 위한 정치를 해야 한다. 테소족은 이 약속을 보증하기 위해 자신들의 땅을 정부에 헌납할 테니 정부는 앞으로 이 땅을 테소족을 위한 교육기관으로 만들어 주기 바란다 등이었다. 무세베니는 동의했고 드디어 전쟁을 끝났다. 그리고 1986.1.26 그는 국민투표를 통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리고 얼마후 테소족이 헌납한 약 15만 평의 땅은 지금의 쿠미대학이 되었다.

졸업식이 끝나자 나이 많은 한 목회자가 나에게 다가왔다. 그는 테소의 역사와 일루코르를 기억하는 지역 지도자였다. 그를 따라 학교투어를 시작했다. '여기 망고나무에는 당시 무세베니 군인들이 죽인 테소족의 머리가 여기 저기 걸려 있었습니다'. 사람의 머리가 걸려 있었다는 끔찍한 망고나무는 과거의 아픈 역사를 기억하는지 내 눈에는 아름답기만 보였다. '여기쯤 해서 테소족의 시신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던 곳입니다'. 시체가 쌓여 있었다는 곳은 요즘 새로 개축한 과학관 자리였다. 그리고 얼마쯤 성큼 성큼 걸어가더니 신학부 건물앞에 섰다. 그리고 말했다. '여기는 치열한 접전을 벌인 곳으로 많은 사람이 죽고 무기들을 회수한 곳입니다'. 놀랍게도 그곳은 내가 학생, 목회자를 가르치는 신학교였다. 아, 우리의 신학교가 과거에 수많은 사람들이 서로 죽이고 죽은 죽음의 현장이라니, 우리는 죽은 사람들이 묻힌 곳에서 생명의 복음을 외치고 있었다. 그때 나는 이스라엘 민족을 위기에서 건져낸 유대인 랍비 벤 자카이를 기억했다.

위기의 시대, 목회자의 사명은 무엇일까? 오늘날의 목회자는 하나님이 그들을 보낸 교회가 죽음의 무덤위에 세워진 부활의 언덕이라는 것을 아는가? 분명히 하나님은 사람을 살리려고 교회를 세웠고 목회자는 생명을 살리는 일로 거기 있다. 그 일은 모든 목회자에게분에 넘치는 축복이요 영광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교회현장을 떠나 교회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이름으로 저주의 말을 쏟아내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아까운 시간을 허비하며 남을 죽이고 결국 자기도 죽이는 일에 뛰어든 사람은 누구인가? 생명의 현장을 떠나 청와대 주변을 서성거리며 오늘도 죽음의 언어를  쏟아내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20주년을 맞아 그동안 숨어 있던 아프리카의 한 목회자는 우리에게 목회자가 설 자리가 어디인지 그리고 목회자가 무엇에 목숨걸어야 하는지를 깨닫게 한다. 무세베니의 집권후 수없이 입각 제의를 받았으나 작은 농촌에서 일생 가난한 교인곁을 떠나지 않은 목회자, 백성이 위기에 처할 때 목숨걸고 그들을 구하고 아무 일 없었다는듯 다시 돌아와 가난한 테소 백성과 함께 살다간 민중의 목회자,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가 죽음으로 세상을 살린 것 처럼 목회자 한 사람이 목숨을 걸면 전쟁이 그치고 동족을 살리고 역사를 살리는 학교를 세울 수 있슴을 보여준 사람, 우리도 그에게서 배워야 할 것이 있지 않는가? 오늘도 목회자들이 서야 할 자리에 굳게 선다면 교회는 달라지지 않을까? 오늘도 교회가 세상을 살리는 일에 집중한다면 역사는 달라지지 않을까? 위기의 시대에 삺으로 예수님을 따랐던 아프리카의 한 목회자가 20년 후 수많은 사람들을 얼싸안게 하고 눈물을 흘리며 기뻐하게 했다.

우리의 20년 후에는 우리 때문에 누가 기뻐하고 눈물흘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