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 올린 시간 : 2019년 12월 28일 10시 38분 53초

아프리카(68) 임마누엘

성탄에 오신 주님이 누우신 곳은 구유였다. 1세기의 이스라엘은 사람이 나귀와 함께 살았다고 한다. 그래서 보통의 가정에서는 방 위쪽에는 사람이 살고 아랫쪽에는 나귀가 살았다(케네스 베일리, '구유와 여관'). 여관을 찾을 수 없었던 예수님은 바로 나귀가 먹고 자는 구유에서 태어났다. 

베들레헴의 탄투르에 가면 옛날 이스라엘의 구유가 재현되어 있다. 바닥엔 지푸라기가 깔려있고 환기가 안되는지 냄새는 퀴퀴했다. '예수님 시대의 구유인데'하고 환상을 품고 들어갔다가 '다시는 안들어 가야지' 결심하고 나왔다. 나귀가 사람에게 친숙한 동물이긴 하지만 동물은 역시 동물이었다. 구유는 추운 들보다는 낫지만 결코 사람이 잘만한 곳은 아니었다.

아프리카에 살면서 그들이 사는 집(hut)에 꼭 한번 자보고 싶었다. 적어도 그들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그리고 어쩌면 그것은 이 땅에 사는 선교사의 거룩한 의무라고도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쉽지 않은 용기였다. 그들이 사는 헛에 들어가면 이것이 사람이 사는 집인지 도저히 오래 머물 수 없기 때문이다. 풀을 엮어 덮은 지붕사이로 풀풀거리며 바람이 들어오고 바닥은 그저 흙바닥인데다가 잠자는 곳만 겨우 거적대기 하나 깔고 그 위에서 자기 때문이다. 머리맡에는 저녁하다 남은 장작재가 널부러진채 그대로 있고 발밑에는 곡식 자루가 툭툭 채인다. 날씨라도 더우면 모기, 리자드, 파리, 심지어 그보다 더 무서운 짐승(상상만 하기 바란다)도 기웃거린다. 도대체 어떻게 그런 집에 살 수 있는지 놀랍기만 했다.

그러나 이번 성탄절에 하나님이 나에게 특별한 은혜를 주셨다. 그 헛에서 자볼 용기와 함께 담력을 주신 것이다. 그래서 난민교회 목회자 가브리엘에게 말했다. '가브리엘, 내가 헛에서 자볼 테니 준비해보세요'. 과연 성실한 가브리엘은 나를 위해 헛을 준비했다. 평소에 없는 매트리스를 준비하고 바닥도 깔고 깨끗이 정리 정돈까지 해서 이 정도면 자 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어두어지자 내 기대는 곧 불안과 후회가 되었다.  어쩌자고 나는 사서 고생을 하는가? 선교하라고 했지 한번도 자본 적이 없는 이상한 집에서 자라고 했는가?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다. 일행은 다 떠났고 가브리엘도 자기 헛으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자리에 누어 잠을 청해 보았으나 잠자리가 딱딱해 도저히 잠이 오지 않았다. 베게는 없어서 팔베게를 했는데 그것은 세 살 이후 처음이었다. 뒤척 뒤척, 습관처럼 핸드폰을 찾았지만 핸드폰도 없었다. 한참을 뒤척이다 결국 잠을 이루지 못하고 밖으로 나왔다.

아, 나는 그때 전혀 딴 세상으로 들어갔다. 캄캄하리라 생각했던 밖이 환하여 하늘을 쳐다보았는데 그 순간 수를 셀 수 없는 엉청난 별들이 하늘을 수놓고 있었다. 그렇게 많고 큰 별은 처음 보았다. 마치 우유를 엎질러 놓은 것처럼 밀가루를 뿌려 놓은 것처럼 하늘에 가득한 별들, 갑자기 그 넓은 우주에 나 혼자 있다는 것이, 나라는 존재가 너무 작고 보잘 것 없는 존재라는 것이, 우주의 첫날부터 거기 있었던 영원한 존재앞에 몇 십년을 살다가는 작은 존재가 서 있다는 것이 뼈속깊이 깨달아졌다.

흥분된 가슴을 진정하고 다시 헛으로 왔는데 갑자기 말씀이 떠올랐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니...'(요1:14). 성경은 하나님이신 그 분이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고 했다. 그가 누군가? 하나님이 아닌가? 하나님이 누군가? 일월성신, 해와 달과 별을창조하신 분이 아닌가? 별 하나도 저렇게 크고 위대한데 그것을 지으신 분이 구유에 오셨다니. 내가 지금  누어 있는 이 헛도 초라하고 불편한데, 동물이 먹고 자는 구유에 하나님이 오시다니... 별과 헛, 하나님과 구유, 그 둘 사이에 얼마나 큰 간격이 존재하는지...그때부터 나는 마음이 편해지면서 쉽게 잠을 이룰 수 있었다.

그렇다.
성경 최고의 신비는 하나님이 사람이 되셨다는 것이다.
성경 최고의 은혜는 하나님이신 그 분이 구유에 오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일생에 받은 최고의 기적은 하나님이 나같이 낮고 천한 죄인에게 오셔서 영원히 함께 계신다는 것이다.
그렇다.
존 웨슬리가 임종시에 말한대로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것이다'.
임마누엘!

아프리카(67) 난민으로 오신 예수님

남수단 난민촌 파라벡(Palabek)까지 가는 길은 멀고도 멀었다. 운전수 조렘이 5시간 걸려 글루까지 운전하자 바나바 선교사가 바톤을 이어 3시간을 더 달렸다. 이윽고 팔라벡 난민촌 간판이 보이고 사람들이 올망 졸망 모여 있는 것이 보였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쌓인 작은 마을, 국경이 저 산 너머에 있는 데 떠밀려 고향을 떠난 사람들, 그들에게도 어김없이 성탄은 찾아왔다. 그들에게 성탄은 어떤 날일까?

성탄절 아침, 일찍 교회로 향하였다. 흙벽돌로 지은 작은 집이 나타났다. 좁고 작은 교회, 우리도 옛날에 이런 교회를 다녔을 것이다. 어릴 때 기억나는 교회 종은 커다란 포탄 탄피를 매달아 놓은 것이었다. 그때 그것이 무엇인가는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 와서 보니 우리도 지독히 가난한 시절이 있었던 것이다.

하나 둘씩 교회에 모이기 시작했다. 그래도 성탄절이라고 알록 달록 좋은 옷을 입고 온 사람들, 교회 입구에서 어린 소녀 성가대원들이 찬양으로 낯선 손님을 맞이 했다. 어제부터 와서 전도하고 준비한 신학생들의 얼굴도 보였다. 모두 양복을 입고 있었다. 1년 내내 티셔츠만 입고 있던 학생들, 1년 공부했다고 벌써 목사티가 나기 시작한 것이다. 드디어 예배가 시작되었다. 어린이는 신학생들이 맡아 마당으로 나가고 어른들만 교회안에 모였다. '기쁘다. 구주 오셨네'. 이 익숙한 노래를 아프리카 난민들과 함께 부르다니. 얼굴에 짓게 배인 고난의 흔적들, 기쁜 노래를 불러도 눈가의 주름과 움추린 어깨는 어쩔 수가 없었다. 드디어 몸 찬양이 시작되었다. 30분 이상 그렇게 뛰다보니 교회 바닥의 흙먼지가 뿌였게 일어나 교회안은 온통 먼지가 가득했다.

찬양이 끝나자 설교가 시작되었다. 마이크도 화면도 없는 뿌연 연기의 교회에서 막 설교를 시작하는데 벌써부터 목이 메이기 시작했다. 흙연기때문인가? 설교는 눅2:8-14을 본문으로 '난민으로 오신 예수님'이었다. 설교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예수님이 이 땅에 난민으로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난민이라니. 첫 마디가 다소 충격적이긴 했어도 이들의 주위를 끄는 데는 성공했다. 아니, 태어날 데가 없어 나귀가 먹고 자는 곳에 태어났으면 난민이 아닌가? 자신을 죽이려는 왕을 피하여 멀리 이집트로 도망갔으면 난민이 아닌가?(콥틱교회 전승에 의하면 예수님은 이집트 나일강을 따라 21번 거처를 옮기며 7년을 피해 다녔다고 한다). 평생 집도 없이 머리둘 곳도 없이 사셨으면 난민이 아닌가? 마지막에 노예들이나 죽는 십자가에 죽고 묻힐 무덤도 없었다면 난민이 아닌가?

예수님이 난민이라는 이야기는 사실 고고학자들이 처음 한 이야기다. 예수님이 어린 시절을 살았던 나사렛의 발굴은 1955년부터 시작되었다. 발굴 결과 나사렛은 인구 120명-150명의 작은 마을로 나타났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전통적인 유다지파의 땅인 이곳에 주후 6세기부터 2세기의 주거층이 나타나지 않은 것이다. 그 이전 시대(주전 900-600년) 시대의 주거는 발견되었다. 그런데 왜 사람의 발길이 뚝 끊긴 지역에 다시 사람들이 나타난 것일까? 학자들에 의하면 하스모니안 왕조의 바벨론유대인 역이민 정책때문이라고 한다. 바벨론에 남아 있던 유다지파들을 대거 고국에 돌아오게 한 것이다. 요셉의 선조도 그중의 하나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도 육신으로는 포로민의 후예로 오셨다는 것이다. 사9:1 말씀은 그래서 중요하다. '전에 고통을 당하는 자에게 흑암이 없으리로다. 이방의 갈릴리 영화롭게 하리로다'.

이 말씀속에 긴 역사가 담겨있다. 눅4:18은 이 사실에 근거 예수님의 위대한 사명을 선포한다. '이는 포로된 자들을 자유게 하려고 내게 성령을 부으시고'. 죄에 쫓겨 아버지 집을 잀은 난민들을 구하러 이 땅에 하나님이 난민으로 오신 사건, 그것이 성탄절이다. 그래서 이 날이 기쁘고 즐거운 날이다.

세상에서 가장 높은 분이 세상에서 가장 낮은 곳에 오셨다.
세상에서 가장 부요한 분이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에게 오셨다.
남수단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왜 우리는 가난한가?
자원이 없어서?
사람이 없어서?
평화가 없어서 가난하다.
분쟁과 갈등이 가난을 만들었다.
그런데 예수님이 평화를 위해 오셨다.
평화가 곧 빵이다.

가난은 경제의 문제가 아니라 평화의 문제이다.
평화의 주님이 오늘 여기 오셨다.
하나님이신 그 분이 난민이 되셔서 여기 오셨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의 평화요 밥이요 희망이다.
 
설교후 모두 일어나 아프리카 노래, 굼바야를 불렀다.

Gumvaya, my lord, gumvaya
Gumvaya, my lord, gumvaya
O, lord, gumvaya
 
여기 오소서, 내 주여
여기 오소서, 내 주여

우는 자위해 오소서
슬픈 자에게 오소서
없는 자에게 오소서

모든 사람들의 얼굴에 눈물이 그렁 그렁 고였다. 기쁨의 눈물이요 서러움의 눈물, 누구나 마음놓고 울 수 있어서 이번 성탄절은 너무 행복한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