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 올린 시간 : 2020년 02월 11일 13시 05분 30초

아프리카(76)
미츠페 라몬, 또 하나의 광야

이번 성지순례중 이스라엘 네게브의 끝자락에 있는 미츠페 라몬을 방문한 것은 수확 중의 큰 수확이었다. 아침 일찍 베들레헴 센터를 떠나 쉐펠라 지역과 브엘쉐바를 지나 이곳까지 왔은 때는 이미 늦은 오후였다. 아직도 해가 있슴에 감사하면서 뛰듯이 전망대에 올랐을 때 우리앞에 펼쳐진 것은 참으로 놀라운 광경이었다. 약 1억만년전 지각 침식과 변동으로 이루어졌다는 분화구는 800미터의 절벽에 40킬로나 길게 뻗어 있었다. 아! 광야는 끝도 없이 펼쳐져 태고로 이어지고 지평선은 마치 하늘에 닿은듯 지구끝까지 펼쳐져 있었다. 하마트면 나는 나도 몰래 '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로' 노래를 부를뻔 했다.

문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광야를 건넜다는 것이다. 도대체 이 광야를 어떻게 건널 수 있단 말인가? 이때쯤 이스라엘 백성은 지칠만도 하지 않았는가? 홍해를 건너 에담광야, 수르광야, 신광야, 그리고 천신만고끝에 여기 바란광야까지 온 것이 아닌가? 누가 이스라엘 백성이 불평했다고 돌을 던질 수 있는가? 40년동안 그들이 불평한 것은 성경에 다섯번 밖에 되지 않는다. 광야를 바라보는 순간, 이스라엘 백성의 불신앙을 탓했던 우리는 그들에 대한 연민과 존경의 마음으로 가득찼다. 그러나 성경이 보는 관점은 언제나 하나님의 표준이다. 민13-14장에 나타난 이스라엘의 정탐꾼을 하나님의 표준으로 보면 상당히 문제가 있다. 그들이 40일 정탐을 마치고 돌아와서 한 보고는 그들이 어깨에 메고온 포도송이와 달랐다.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말하면서 거기 성은 크고 거기 사는 사람들은 장대한 아낙자손이라고 했다. 그들은 시종일관 그들이 본 것만 이야기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면 하나님은 정탐을 말한 적이 없다. 다만 처음부터 정복을 말했을 뿐이다. 신8:1절이다. '여호아께서 너희 조상들에게 맹서하신 땅에 들어가 그것을 취하라'. 하나님은 한번도 그 땅을 알아보라거나 정탐하라고 말씀한 적이 없다. 그 땅은 이미 주어졌고 백성들은 들어가 취하면 될 일이었다. 그들의 잘못은 많은 설교자가 말한대로 돌아와서 잘못 보고한 것이 아니었다. 처음부터 정복을 위해 떠나지 않은 것이었다. 정탐을 위해 떠나는 한 부정적인 보고는 필연적인 것이었다.
 
이스라엘땅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한 성경학자가 이스라엘 땅을 네 가지로 말했다.

먼저 이스라엘 땅은 하나님의 선물(Gift)이다. 노력해서 얻은 땅이 아니라 선물로 주신 땅이다. 수고해서 얻은 땅이 아니라 은혜로 받은 땅이다.

이스라엘 땅은 또한 약속의 땅(Promise)이다. 그 땅은 이미 받았으나 완성되어가는 땅이다(already but not yet). 어제보다 오늘이, 오늘보다 내일이 좋은 땅이다. '가장 좋은 것은 이직 오지 않았다'(The best is not ahead).

이스라엘 땅은 또한 유혹(temptation)의 땅이기도 하다. 땅을 하나님의 소유로 여기지 않는 자에게 땅은 유혹이 될 수 있다. 바알이 그래서 망했다.

마지막으로 땅은 과제(task)로 주어졌다. 그 땅은 거기 머물기 위한 땅일 뿐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땅이다. 그 땅은 성취의 땅일 뿐 아니라 실현의 땅이다. 그 땅은 은혜로 받은 과거의 땅일 뿐 아니라 완성을 향한 미래의 땅이다.

'선물'로 받은 땅을 '과제'로 바꾼 사람이 있었다. 이스라엘의 초대 수상 벤 구리온이었다. 총리를 두번이나 역임(1948-1953, 1955-1963)한 벤 구리온은 총리에서 물러난 후 이 광야에 들어와 스스로 광야를 개간하며 살았다. 그는 '우리가 광야를 다스리지 못하면 광야가 우리를 다스릴 것'이라며 척박한 바란광야에 들어와 키부츠 '스데 보케르'(아침의 집)에 살다 죽었다. 그의 소박한 마지막 삶의 자취는 지도자의 마지막이 어떻해야 함을 보여주었다.

우리가 걸어야 할 광야는 어디인가? 이스라엘 백성이 38년을 방황한 광야의 현장에서 우리는 정탐을 위해 길을 갈 것인가? 정복을 위해 길을 갈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다. 땅은 이미 우리에게 주어졌다. 우리는 더이상 땅을 발명할 필요가 없다. 이미 우리에게 주신 땅을 발견하기만 하면 된다. 그 땅은 약속으로 주어졌으나 우리에게 또한 과제로 주어졌다. 그 땅이 스스로 유혹이 되지 않도록 우리는 매일 땅과 싸워야 한다. 땅은 사랑할 대상이 아니라 사용할 대상이며 땅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하나니이라고 믿어야 유혹에서 승리한다.

끝없이 펼쳐진 미츠페 라몬, 이스라엘의 광야를 보면서 나는 우리가 걸어갈 또 하나의 광야를 보았다.

아프리카(77)
모기와 생쥐

긴 방학을 마치고 쿠미로 돌아왔다. 작년 성탄절 남수단 난민캠프 팔라벡으로 부터 탄자니아 부코바, 게이타, 그리고 선교사님들 모시고 이스라엘까지 모두 한 달 반 가량을 외국에서 보냈다. 주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목회자와 현지인을 만나느라 우간다의 시골 쿠미를 거의 잊고 살았다. 그러다가 지난 2.3(월), 아내와 함께 다시 쿠미로 돌아왔는데 며칠 지나자 쿠미의 본색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우선 한 달 반 동안 전혀 모기 걱정 안하고 살다가 모기와의 싸움이 다시 시작된 것이다. 모기를 조금 멀리 내좇으려고 문밖에 튼튼한 모기장 하나를 설치하고 떠났는데 모기는 예외없이 돌아온 주인을 환영하려고 왱왱거렸다. 캄팔라에서, 부코바에서, 이스라엘에서 모기장없이 지냈던 것이 꿈만 같았다. 아내는 문만 열고 나가면 모기에 물린다면서 왜 모기가 나만 좋아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어제 저녁에는 침대에서 모기 한 마리를 잡았는데 잡고 보니 피가 홍곤했다.

그런데 며칠전에는 모처럼 모기 걱정 안하고 하루를 지낼 수 있었다. 이유는 모기보다 더 센 놈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생쥐다. 아내가 부억 일을 하다가 생쥐 한 마리가 부억뒤로 숨는 것을 보았다는 것이다. 확실하냐고 물었더니 자기의 눈이 내 눈보다 더 크다는 것이었다. 사방을 다 막았는데 어떻게 쥐가 들어 왔을까? 당장 쥐를 잡는 문제가 시급했다. 오랜 회의끝에 끈끈이 접착제가 가장 효과적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아내는 끈끈이 접착제를 준비했다. 그리고 생쥐가 나올만한 곳에 놓고 불을 끈채 끈질기게 기다렸다. 저녁 10시가 넘자 아내가 내 책상으로 뛰어왔다. 엄지 손기락을 쳐들더니 드디어 잡았다는 것이었다. 그 표정을 다른 사람이 안 본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영락없이 큰 것 한 건을 해낸 사람의 환희에 찬 모습이었다. 달려가 보았더니 생쥐 한 마리가 끈끈이에 붙어 헐떡거리고 있었다. 아내는 나에게 끈끈이 하나를 더 주면서 그 위를 덮으라는 것이었다. 분명 레위기법에는 걸리지 않을 일이었다. 나는 쥐를 끈끈이로 덮어 밖에 버렸다. 그날 우리는 생쥐에 집중하느라 모처럼 모기 걱정을 안하고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지금 한국에서는 한참 신종 코로라 때문에 고통을 겪는다고 한다. 멀리 살아서 그럴 일은 없지만 고난겪는 동포들에게 우리도 여기서 조금 고난을 겪으며 살고 있다고 전하고 싶다. 그래서 지구의 반대편에서 각자 잘 이겨내며 함께 승리하자고 말하고 싶다. 한국인은 코로라든 모기든 생쥐든 아프리카든 알라스카든 어디서나 잘 적응하며 살 수 있다. 그래서 조금만 함께 인내하자고 진심으로 위로드고 싶다. 그렇다.

우리는 자랑스런 한국인이다. 한국인은 할 수 있다. 한국 화이팅!

아프리카(78)
아름답기 때문에 사랑하는가?

이스라엘에서 돌아오자 다시 들길을 걷기 시작했다. 짪은 시간이지만 계절은 쉬지 않고 달리고 있었다. 무성하던 옥수수숲은 사라지고 그 자리엔 하얀 고구마꽃이 피고 있었다. 망고는 오랜 건기를 이겨내고 뾰족히 자신의 열매를 드러내고 있었다.

내가 사는 곳에 가장 가까운 곳에는 누가 살고 있을까? 평소 혹시 무심코 스쳐 갔을  사람들을 보기 위해 길을 나섰다. 첫번째 만난 사람은 돌깨는 사람이었다. 내가 사는 곳은 바위가 많다. 그래서 이름도 '모리카라'(바위의 마을)라고 부른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여기 저기서 돌깨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아마도 이 일은 힘든 극한 직업중의 하나일 것이다. 우리같으면 레미콘 공장에서 할 일을 사람이 일일히 손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얼마나 벌까? 아마 자식들 밥먹이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한참 가다 벽돌만들어 파는 가족을 만났다. 남의 땅을 빌려재래식으로 벽돌을 찍고 말려 남에게 파는 사람이다. 아버지를 도와 말없이 일하고 있는 아들들이 착해 보였다. 항상 걷는 길의 반환점을 지나자 곧 웅덩이가 나왔다. 비가 오면 오물과 함께 물이 고이는 곳이다. 사람들은 오늘도 변함없이 이곳에서 빨래하고 음식을 씻고 있었다. 도대체 그 더러운 물을 어떻게 사용할 수 있을까? 그 물에 옷을 담그고 비누를 풀고 그 비누물에 고구마를 씻고...그래도 문제없다는듯 사람들은 사진찍는 나를 보고 '요가'하고 인사한다.

돌아오는 길에 일부러 마을 사이로 걸어왔다. 어머니와 함께 밭을 매는 딸들, 그들이 든 농기구는 유일하게 괭이다. 그 옆에서는 어느새 더워진 태양 아래 힘들게 땅을 파고 있는 남자가 있었다. 정문 근처의 할아버지의 집이 마지막 집이었다. 이 할아버지는 암으로 다리를 절단한 채 지팡이를 집고 사는 데 오늘은 마당에서 낫으로 고구마 껍질을 벗기고 있었다.  이들이 내 주변에 가까이 사는 사람들이다.

새 학기가 시작되자 생각치 않은 일이 일어났다. 2학년 학생 몇 명이 학교를 오지 못한 것이다. 들어보니 우간다 학생 몇은 농사를 짓느라 못 온다고 하고 남수단 학생은 차비가 없어 못 온다고 한다. 결국 오긴 왔지만 아무래로 이들에게 공부는 버거운 것 같다. 새 학기 들어서 자립을 훈련시키기 위해 학비로 10만 실링(3만원 남짓)을 내기로 했는데 일주일이 지나도록 돈을 낸 학생은 단 한명뿐이다. 신입생중 외국에서 오기로 한 학생들도 늦어지고 있다. 비자 문제도 있지만 차비 문제가 가장 크다. 동아프리카 학생 누구도 우리 돈 10만원을 준비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하루 하루가 힘든 사람들, 과연 이들의 삶은 아름다운가? 그들의 구리빛 피부와 가난으로 깊히 패인 주름살은 아름다운가? 그들의 움막같은 집은 또 아름다운가? 그들의 상상을 초월한 가난은 아름다운가?

아프리카는 자연 빼고 아름다운 것이 거의 없다. 만일 아름답기 때문에 아프리카를 오려고 한다면 오지 말라고 말리고 싶다. 아프리가에 오려면 반드시 다른 이유 하나를 준비해야 한다. 그것은 사랑이다. 시람들은 아름답기 때문에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진실을 말하면 아름답기 때문에 사랑스러운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다. 사람들은 아름다운 것을 보려고 길을 떠나지만 세상 어디에도 본질적인 아름다움은 없다는 것을 깨닫고 집으로 돌아온다. 아름답기 때문이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아름답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그나마 고생스런 여행에 대한 보답이다. 아프리카는 아름답기 때문에 사랑스러운가? 사랑하기 때문에 아름다운가? 인생은 아름답기 때문에 살 가치가 있는가? 사랑하기 때문에 살만한가? 하나님도 우리가 아름답기 때문에 사랑하실까? 사랑하기 때문에 아름다울까?

나는 아직 슈바이처처럼 아프리카를 사랑하지 못한다. 성 프란치스코처럼은 더더욱 아니다. 그러나 나는 내가 사랑할 수 있을만큼 아프리카를 사랑한다. 그리고 작년보다 그 사랑이 조금 더 자란 것 같다. 우리는 왜 사는가?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유대인의 격언 하나를 묵상하자. 

'아름다운 것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사랑하는 것이 더 아름답다는 것이다'.

아프리카(79)
올리브: 고통중 희망

이스라엘의 식물중에 흔하다고 생각해서 그냥 지나치는 나무중의 하나가 올리브다. 올리브는 이스라엘의 곳곳, 특히 언덕이나 산등성이에, 비교적 높은 곳이면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 다행히 그 나무가 겟세마네 동산에 있어 예수님의 죽음과 함께 묵상되는 것은 그나마 다행한 일이다. 그러나 올리브는 생각보다 성경적 뿌리가 깊고 그 메시지와 은유는 깊은 묵상을 필요로 한다.

우선 올리브 기름처럼 이스라엘의 일상에 많이 사용되는 것은 없다. 우리가 아는대로 그것은 식품으로, 약품으로, 화장품으로, 향수로,  등잔의 기름으로 사용된다. 뿐 아니라 올리브는 성경시대에 왕, 제사장, 예언자등에게 기름으로 붓고 성소의 등잔, 봉헌제물등 거룩한 예배의 재료로도 쓰였다. 성전에서만 쓰인 것이 아니다. 광야 목자들이 가지고 있는 지팡이는 거의 올리브나무라고 보면 된다. 흔히들 목자가 들고 다니는 지팡이를 끝이 휜 막대기로 생각하는 데 그것은 다만 그림일 뿐 이스라엘의 실제 상황과는 다르다. 나는 다윗이 들고 다녔거나 예수님이 말씀하신 목자의 지팡이는 그림에 나오는 우아한 지팡이가 아니라 올리브 나무로 만든 둔탁한 막대기였다고 믿는다. 중요한 것은 이 나무 가지를  히브리어로 '네쩨르'(netzer)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성경은 이것을 '어린 감람나무'(시128:3)라고도 부른다. 이 '네체르'에서 예수님이 사신 '나사렛'이라는 이름이 나왔다. 올리브는 그것의 이름이 '나사렛'의 어원이 되는 순간 예수님의 사역과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된다.

1968년, 에루살렘 한 교외지역 도로공사에서 1세기의 관이 발굴되었는데 그 안에는 몇 개의 뼈들이 남아 있었다. 학자들이 조사해보니 그 뼈는 예수님 시대에 죽은 유대인 사형수의 발목뼈였고 그 뼈에 박힌 18센티의 대못은 포개진 두 발을 관통한 채 십자가 밖으로 나와 있었다. 그리고 거기 붙어 있던 나무조각을 조사했더니 그것은 놀랍게도 올리브 나무 조각이었다. 예수님이 죽은 십자가도 올리브 나무였을까? 1세기의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는 그의 책에 로마에 항전한 유대인들을 죽이기 위해 로마군인들이 감람산의 올리브나무들을 벌목했다는 기록을 남기고 있는데 그 기록이 맞다면 십자가의 가장 가능성 있는 나무는 올리브나무다. 또한 1세기의 뼈가 발견된 시기와 비슷한 때 갈릴리 믹달에서 1세기의 배가 발견되었는데 그 배의 상당부분도 올리브나무였슴이 밝혀졌다. 이상을 종합할 때 예수님은 세상을 살리기 위해 생명의 나무인 올리브 '네체르'로 나사렛에서 자라나시고 갈릴리에서 이 배를 타고 사역하시다가 겟세마네에서 올리브 기름을 짜듯 온 몸으로 기도하시고 마지막에 올리브 나무 십자가에 죽으셨다. 그리고 그가 마지막 승천하신 곳도 올리브산이었다.

문제는 이 나무가 이렇게 귀하게 쓰임받기 위해 수많은 수고와 고통의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다. 올리브 나무는 사철 푸른 나무로서 줄기의 굵기는 지름 1미터에 이르며 5-8미터까지 자란다. 이 나무는 따뜻한 지역에서 자라지만 그렇다고 이집트나 아프리카에서는 자라지 않는다. 그 이유는 이 나무가 자라는데 연평균 섭씨 15도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열대성 기후에서 자라되 어느 정도 추워야 나무가 자란다는 뜻이다. 처음부터 이 나무는 온실속에서 자라기를 거부한 것이다. 이 나무가 자라는 토양도 비옥한 옥토가 아니다. 산이든 언덕이든 어디나 잘 자라되 특히 척박한 곳에서 더 잘 자란다. 이스라엘의 평야 지대에서 올리브를 볼 수 없는 이유가 여기 있다. 그렇다고 열매를 쉽게맺는 것도 아니다. 적어도 5년 이상 긴 시간이 지나야 열매를 맺는다. 그 사이 농부는 최선을 다해 나무를 돌봐야 한다. 그나마 매년 열매를 맺히는 것도 아니다. 한 해 걸러 격년으로 맺힌다. 그렇게 해서 한번 척박한 곳에 뿌리를 내리면 많으면 2천년까지도 살 수 있다. 겟세마네에 있는 몇 나무들이 그 나무들이다. 그 나무들은 중국 제국이나 로마제국보다 오래 살아 그날 밤 주님께서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신 애절한 목소리를 기억할지 모른다.

한번 이스라엘에서 이 올리브 나무를 수확하여 기름짜는 과정을 보며 감동받은 적이 있다. 올리브의 수확은 한 여름이 지난 매년 9월에서 10월경에 이루어진다. 먼저 나무를 흔들거나 막대기로 나무를 툭툭 때려 올리브를 딴다. 올리브가 땅에 떨어지면 손으르 주어 물에 씻는다. 주어 담은 올리브를 틀에 올리고 꾹 누르면 우지직하고 소리를 내면서 연한 물같은 것이 나온다. 이스라엘의 텔 미크네에 가면 옛날 블레셋 사람들이 사용했던 올리브 틀이 그대로 있다. 압축용 통위에 짚으로 만든 바구니를 달고 돌로 만든 추를 달아 나무 막대기로 누른다. 그 무거운 돌이 연한 올리브를 누를 때 우두둑 깨지는 소리를 상상할 수 있는가? 깨지지 않으면 기름을 낼 수 없는 올리브, 열매는 이제 완전히 부숴져 그 이름다운 형체를 알아볼 수 없다. 올리브는 그렇게 자기를 깨트려 기름을 내고 자기는 누더기같은 과육이 된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올리브는 과육이 된채 또 다른 기름을 내기 돌위에 올라간다. 이미 깨뜨려진 자신의 찟겨진 몸에서 한 방울이라도 더 기름을 내기 위해 그는 마지막까지 자신을 부수고 또 부순다. 마지막엔 과육조차 사라져 아무 것도 남지 않을 때까지 자신을 깨뜨리고 깨뜨리는 올리브, 사람들의 식품에, 성소의 등잔에 남아 마지막까지 소멸되는 순간까지 올리브는 자기 죽음의 과정을 계속한다. 그리고 마지막 기름 한 방울 남아 연기의 재로 사라질 때 그는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벌인다(히브리어로 성전의 '향'을 '올라'라고 부른다. 실제로 이태리의 성자 베네딕트가 죽음의 순간이 오자 제자들에게 자기의 두 손을 하늘을 향해 벌여 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연약을 몸을 일으켜 두 팔을 높히 들고 하나님께 돌아갔다).

왜 나는 오늘 올리브 이야기를 길게 쓰는가? 오늘은 내가 아프리가 온지 1주년 되는 주간이다. 1년전 하나님은 미천한 나를 이곳에 보내셨다. 1년동안 하나님은 나에게 말로 다 할 수 없는 은혜를 베푸셨다. 그런데도 나는 아직도 내 몸을 다 드리지 못했다. 깨어지고 부셔져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깨어져야 하리
마지막 순간까지 깨어지고 또 깨어져야 하리

죽어야 하리
마지막 숨을 몰아쉬며 두 팔 벌여 하늘을 향해 설 때까지

주님이 뜻가운데 우리를 깨뜨리신다면
우리는 아프지만
깨어져야 하리 부서져야 하리
하나님이 쓰시기에 더 좋은 그릇 이 되도록
고통속에서 새 희망이 움트토록
우리는
깨어져야 하리

아프리카(80)
아,말라리아!

나는 지금 내 생애 처음으로 말라리아와 힘든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평소에 나는 내가 마징거제트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말라리아에 걸릴 사람은 아니라고 굳게 믿었다. 그러나 그것은 확실히 착각에 가까운 교만이었다.

지난 2월 초, 이스라엘에서 돌아올 때부터 몸이 무겁긴 했다. 그러나 그 정도는 피곤에서 오는 일상적인 삶의 무게라고 믿었다. 그런데 그 다음주부터 몸에 힘이 빠지고 말이 꼬이는 것을 느꼈다. 2.23(일)은 학교채플에서 설교하고 오후에는 또 모리카라 교회에서 또 설교했다. 다음날 강의를 시작하는데 어지럽기 시작했다. 간신히 오전 수업을 마치고 보건소로 달려가 검사를 받았는데 놀랍게도 말라리아 +3이 나왔다. +4가 최악인데 +3이라니. 그때부터 시작된 말라리아와의 싸움은 내 상식을 초월한 것이었다. 우선 독한 주사를 맞기 시작했는데 맞을 때마다 구토가 시작되었다. 선풍기 한대 없는 보건소 침대에 누어 4번의 주사에 하루 세번 4알의 알약과 진통제로 식사는 못하는데 구토는 계속되었다. 몸에서는 온통 식은 땀과 고열로 헛소리만 계속했다. 그나마 목요일부터 나는 아무 기억이 없다. 아내의 말에 의하면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못 듣고 말도 못하고 걷지도 못해서 강제로 쿠미에 있는 작은 병원으로 옮겼다고 한다. 이 병원 또한 선풍기도 없고 모기 창틀도 없는 곳으로 나는 여기서도 또 독한 주사를 4대를 더 맞았다고 한다. 사람을 몰라보는 인사불성의 상황, 그래도 아무 차도가 없자 사람들은 나를 캄팔라 큰 병원으로 이송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내가 기억하는 것은 2.29(토) 새벽 4시, 사람들의 부축을 받으며 비틀거린 채 차에 오른 것이었다.

7시간 걸려 도착한 캄팔라 병원은 베데스타 병원으로 한국 선교사들이 세운 병원이었다. 거의 기억이 없지만 아내의 이야기에 의하면 도착하자마자 의사가 주사를 놓고 체크하자 보통 사람의 간수치가 40이 정상인데 나는 700이 나왔다고 하고 거기에 장티푸스기까지 나타났다고 한다. 다행히 콩팥의 위험은 없었으나 간수치로만 보면 간경화나 뇌졸증의 위험이 큰 상황이라고 했다. 여전히 아무 말도 못듣고 말도 못하고 걷지도 못했다. 그 칠흙같은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아내의 투혼은 빛났다. 그래도 명색이 종합병원 병실인데 아내는 하루에도 14마리 이상의 모기를 잡아야 했다. 모기때문에 걸린 말라리아를 치료하려고 수도인 종합병원에 왔는데 거기서도 모기와 싸워야 했다니, 아내는 옆에서 대소변 가릴랴 먹어야 산다면서 온갖 음식을 만들어 먹이랴 나는 하나도 음식이 들어가지 않고 아내는 그래도 먹어야 산다며 입에다 음식을 집어 넣고 때아닌 음식 전쟁을 벌일 때 나는 자식 하나를 키운 이 땅의 어머니들의 수고가 얼마나 위대한가를 뼈져리게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지나간 한 주간, 하나님의 은혜와 함께 사람들의 친절과 헌신, 특히 아내의 눈물겨운 사랑으로 나는 지금 이만큼이라도 앉아 있게 되었다.

아직도 나는 보행이나 식사, 언어 기능등 여려가지로 불편하지만 광란의 대서양을 지나 멀리 희망봉을 막 바라보는 전환점을 지나고 있는 느낌이다. 지금 고국에서는 코로라때문에 전 국민이 고통가운데 있는데 나까지 걱정을 주나 싶어 심히 죄송하면서도 한편 작은 고난에 동참해 보니 코로라 때문에 고생하는 동포와 그 가족들에게 동병상린의 진심어린 위로와 격려를 마음으로 드리고 싶다. 고난받는 모든 동포들께 내가 사랑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렇게 위로드리고 싶다.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 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 장래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전7:14)